시편의 메시지
2014-11-28 16:46:57
히브리어로 시편은 찬양을 뜻하는 "테힐림"인데 이 명사는 찬양하다라는 "힐랄"동사에서 온 것이며 시편에만 등장하는 "할렐루야"는 이 "할랄" 동사의 2인칭 명령형이다. 또한 시편 2권의 마지막인 72편 20절에는 시편의 내용을 일러 "다윗의 기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라고 말할 수 있다. 찬양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라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요 탄식이다. 이것이 시편의 성격이고 특징이다.
시편은 5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권의 마지막에는 송축과 아멘이 나타나며 5권의 마지막인 150편은 통채로 송축과 아멘으로서 시편 전체의 영광송 역할을 하고있다. 시편의 이런 짜임새는 의도적인 배열로서 아마도 오경의 구조를 모방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시편은 주전 5세기 이후에 이런 구조를 가졌을 것이고 주로 제2성전기에 예배 찬송시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2세기 쿰란 문서에는 시편의 1-3권은 현재의 모습과 동일하나 4-5권은 아직 제 모습을 못 갖춘 것으로 보아서 시편은 5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현재의 모습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로 제2성전기에 시편의 편집 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인데 여러 시들을 선택하고 배열한 그 원칙이 무엇인가하는 점이 시편 연구의 핵심이 된다.
시편에는 표제들이 달려있고 70인경에는 모든 시에 표제들이 달려있지만 유독 1, 2편에만 표제어가 없는데 이는 1, 2편이 시편 전체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시편 1,2편은 시편 전체의 결론으로서 앞머리에 온 듯하다. 시편 1, 2편은 '복이 있다'는 말로 인클루지오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1편이 토라에 대한 시라면 2편은 메시야에 대한 시이다. 토라시는 율법을 따라 사는 삶의 중요성을 메시야시는 토라를 지키면서 오실 왕에 대한 기대를 노래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라 없는 제2성전기의 유대인들의 핵심적인 2대 기둥이 토라와 메시아였음을 반영한 것이다.
메시아시는 2편, 그리고 2권 마지막인 72편, 3권 마지막인 89편에 나타나는데 89편에서 인간 왕의 실패를 고백한 이후에 4권인 90-105편에는 왕에 대한 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4권에서 말하는 왕의 노래는 야훼가 왕이 되시어 통치하신다는 것 곧 하나님의 나라가 주제인데 이는 인간 왕은 실패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신다는 메시아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4권의 주된 논지는 "야훼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4권의 93,95-99편은 흔히 야훼 즉위시편으로 불리는데 시편의 최종적인 형태에서 신학적 중심부가 된 것이 바로 이 즉위시들이다. 달리 말해 시편의 중심되는 신학적 주장은 "야훼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5권은 당연히 찬송시가 되며 할렐루야 시편이 전부 5권에 들어있게 된 것이다. 결국 실질적으로 시편은 야훼의 왕되심을 명백하게 선언하는 145편으로 마무리되며 146-150편은 하나님이 왕되심에 대한 최종적인 송영인 셈이다.
이런 관점은 의미심장한 역사적 차원을 담고 있다. 시편집을 오늘날 형태로 최종 편집한 포로후기 유대인 공동체들은 나라를 상실하고 왕권을 잃어버린 신학적 위기속에서 인간 왕권 대신에 야훼의 왕권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은 단순히 다윗왕국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새로운 왕으로서 야훼의 통치를 이룰 메시야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시편의 주제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는 것이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기대하는 것이며 신약의 마리아의 찬가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시편의 기대가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찬양의 최대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 곧 하나님나라이다.
그러니까 1-3권이 인간 왕의 실패로 끝나는 탄식이라면 4권은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한 것이고 5권은 할렐루야로 대표되는 영광송인 셈이다. 특히 주의 나라와 통치를 노래하는 시편 145편 직후 146-150편에서 할렐루야를 노래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시편은 전체적으로 탄식에서 찬양의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다. 특히 시편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신정론 시편인 73편은 부르짖음에서 시작하여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결론을 맺고 있다. 주목할 것은 탄식 역시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에서 탄식의 기도가 차지하는 역할은 간과될 수 없다. 시편의 탄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기초로 한다. 체념하고 포기한다면 탄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탄식은 불평으로 표현된 찬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탄식에서 찬양으로 넘어가는 73편은 시편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경첩과 같은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