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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20세기의 기독교

20세기의 기독교

2014-11-26 17:44:36


 

  19세기 선교시대 이후 기독교는 더이상 유럽 중심의 기독교가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기독교 안에는 다양한 운동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독교의 핵심 축은 이제 서양이 아니라 동양으로 변하고 있다. 20세기 기독교를 말할 때 우리는 1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전의 중요한 운동이 오순절 운동이라면 이후의 중요한 변화는 복음주의 운동인데 이 두가지 중요한 운동이 모두 미국에서 일어났다.

 

오순절 운동

 

  1차세계대전 이전의 기독교 역사에서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사건은 오순절 운동이다. 오순절 운동은 1900년 12월 캔사스시티에서 베델의 집이라는 healing house를 운영하던 감리교 목사가 기적적인 신유를 체험하면서 시작되었다. 원래 신유 운동은 할레대학 출신인 조지 뮬러가 1830년경 시작한 운동인데 여기에 영향을 받아 케직 사경회나 faith mission 윤동이 일어났고 무디의 지원하에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선교도 시작된다. 이 신유 운동으로 감리교내에서 성결운동이 일어나서  성결교단으로 분리되며 성결교단내에서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오순절 운동의 촉발은 방언 사건에서 시작되는데 방언을 하는 것을 성령 세례의 증거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원래 칼빈은 중생과 동시에 성화가 시작된다고 말하여 중생과 성화를 시간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반대하였는데 웨슬리는 중생과 성화를 시간적으로 분리하면서 기독인의 완전성결 교리를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성화에서 점진적 성화와 순간적 성화를 둘 다 인정했는데 웨슬리의 후대인 존 플레처는 성령세례가 곧 성화라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미 감리교는 점진적 성화를 인정하였는데 감리교내에 탈머라는 여성 평신도가 등장하여 중생 다음에 순각적인 성화론울 주장하였다. 그녀는 제단신학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제물이 제단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것으로 순간적으로 변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단에 우리가 헌신될 때 우리는 거룩한 존재로 순간적으로 변화된다고 주장하였다. 제단신학은 신자가 변화에 대한 느낌에 관계없이 성령세례를 받으면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이런 성령세례 윤동은 감리교 내에 확산되고 성결 증진을 위한 캠프집회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다. 성화란 곧 성령세례이고 이것이 죄에서 완전히 순각적으로 정결하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성령세례를 성화만 아니라 능력을 받는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한다. 성결운동은 원래 감리교안에 성령 갱신운동이었는데 나중에 중생-성결-신유- 재림이라는 4중 복음을 주장하며 성결교단으로 분리하게 된다.  성결운동은 중생 다음에 성령세례가 바로 성화라고 이해하고 방언이 바로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본 것이다. 감리교가 성화의 점진성과 순간성을 모두 인정한 반면 성결교는 중생이후에 성령 세례를 통한 순간 성화를 주장하였고 오순절 운동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성령세례가 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세대주의로 인한 종말론이 확산된 가운데 방언 현상이 터지자 사람들은 방언이 주의 재림이 임박한 증거이므로 당 시대에 세계복음화가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광범위한 해외선교운동이 일어난다. 방언을 선교장애물인 언어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진 것이라 해석한 것이다. 20세기 초의 중요한 선교 세력이 모두 오순절 교회가 된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원래 미국에서 오순절 운동은 하층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인데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상류층들이 주류를 이루는 성공회나 카톨릭에서도 오순절의 성령운동을 온건한 방식으로 수용하게 된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성령운동이 일어나면서 존 윔버를 중심으로 빈야드 운동이라 불리는 소위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 등장한다. 빈야드 운동에서는 거룩한 웃음(holy laughing) 현상이 집단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에 피터 와그너를 중심으로 신사도 운동이 일어나는데 그는 신사도운동을 오순절 운동(제1의 물결)이나 은사주의 운동(제2의 물결)과 구별하여 제3의 물결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실 이 세 가지는 강조점만 다를 뿐 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신사도 운동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다섯가지 직분(사도, 목사, 예언자, 전도자, 교사)중에서 사도와 예언자 직분의 회복을 주장하고 특히 예언자의 역할을 중시했는데 사실 이것은 이전에 오순절파가 했던 말이다.

 

  20세기에 출현하여 1950년 경에 최고로 성장한 오순절 운동은 가장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오순절파를 중심으로 한 은사주의 그룹은 6억이 넘는 기독교 최대의  세력을 이루고 있다.' 세속의 도시' 라는 책을 썻던 하비 콕스는 1994년에 '하늘에서 떨어진 불(Fire from heaven)'이란 책에서 개신교의 대부분이, 특히 아시아에서  Pentecostal적으로 변하였다고 지적한다. 개신교에선 교파와 상관없이 대형교회들은 예외없이 목회적 체험이 오순절식이 되어 전통적 교회들은 다 위축되는데 성장하는 교회는 전부 오순절 형태의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비콕스는 종교의 미래(The future of religion)란 책에서 기독교 역사의 1세대를 faith의 시대, 즉 삶이 동반된 따라감의 시대라면 2세대는 belief의 시대, 즉 도그마에 대한 지적 동의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오순절 운동은 faith의 시대인 1세대를  재생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다만 오순절 운동이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약자에 대한 관심과 함께 가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오순절적인 영적 열정과  민중신학적 관점의 창조적 만남을 제시하였다. 아무튼 20세 초에 갑자기 출연한 오순절 운동은 기독교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복음주의 운동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중요한 교회사적 사건은 복음주의 운동이다.  19세기에는 진화론이 출현하고 성서비평학에 기반한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였다. 독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발전한 시점은 독일의 통일시기와 비슷한데 이 때 헤겔의 변증법이 등장하였고 유럽에는 자연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이 일어났으며 아시와와 아프리카는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전근대적 문명을 일소하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인도한다는 명분하에 일어난 제국주의를 자유주의 신학이 뒷받침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긍정적 인간관을 가지고 인간의 무한 진보를 주장하였고 미국은 유럽의 자유쥬의 신학에 영향읋 받았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비평학을 가지고 성경의 권위에 의문을 제가하였는데 미국의 보수주의 신학교인 프린스턴 신학교는 이 문제에 도전하여 성경의 존엄성을 수호하고자 성서 무오설을 주장하였다. 여기에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합쳐서 근본주의가 등장한다. 그런데 1910년경 프린스턴 신학교가 성경비평학을 수용하자 그 반대자들이 그레샴 메이천을  중심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고 정통장로교회라는 교단으로 분리된다. 

 

  1925년에는 테네시주에서 유명한 원숭이 재판이 열린다.당시 미국에선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는데 과학교사 존 스콥스가 진화론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은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린 것이다. 이 재판에서 근본주의자는 이겼지만 당시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꽉 막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무식한 자들로 인식되고 이후 근본주의자들은 위축되게 된다. 근본주의의 몰락으로 신학교(seminary)와 대학교 신학과(divinity school)은 진보주의자들이 장악하고 대신 근본주의 자들은 교회성장과 목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고 새로운 유형의 학교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학교(bible school) 운동이다. 성경학교 출신들은 근본주의의 영향으로 다수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성서무오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중에 근본주의자들이 세운 대학이 Bob Johns UNIVERSITY 인데 빌리 그래함이 이 학교 출신이다.

 

  근본주의의 라이벌인 자유주의신학은 사회복음주의 운동(The Social Gospel Movement)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회 복음주의'라 일컫는 소셜 가스펠 운동은 리처드 엘리(Richard T. Ely), 워싱턴 글래덴(Washington Gladden), 월터 라우셴부시(Walter Rauschenbusch), 찰스 먼로 셸던(Charles Monroe Sheldon)이 주도했다. 미국은 남북전쟁이후 북부에 대규모 산업도시들이 형성되고 노동자 집단이 등장하는데 경기가 침체되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여 반곤과 범죄가 빈발하고 슬럼가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북부 도시들에 빈민층이 형성되면서 도시 빈민들을 대상으로 한 빈민선교 구제선교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 최대의 교파인 감리교는 노예제도 문제로 웨슬리안 감리교로 분리되고 회중석을 판매한 문제로 자유감리교회가 분리되었다. 분리된 이 두 교파가 중심이 되어 도시빈민 선교를 핬는데 이 시기에 구세군도 등장하였다.  원래 유럽의 기독교는 빈곤문제에 무관심하였지만 1948년에 막스의 공산당 선언이 환산되자 빈곤의 문제를 사회체제의 문제로 인식하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이 이것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사회복음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낙관적 인간론이 붕괴되고 인간안의 죄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인간론이 복원되었다. 1차 대전후 미국과 유럽은 지성적 반성을 하였고 낙관적 인간관에 근거한 지유주의 신학에 반발하였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바르트, 몰트만 ,니버 형제들의 주도로 등장한 신정통주의이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의 성서비평학을 수용하면서 인간 이해는 전통적 인간관을 가진 신학이다.    이 신학은 일종의 기됵교 현실주의를 반영한 것인데 나중에 라우센부쉬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사회복음주의 신학을 대체하고 근본주의 신학이 붕괴한 이후, 미국의 주류신학이 된다.

 

  1940년대 근본주의 1세대는 분리주의를 주장하며 실천적으로 세속학문을 거부하고 홈스클링을 하였는데 2세대들은 명문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고 빈곤, 여성, 인종, 환경문제를 회피해온 것을 반성하게 되며 빌리 그래함이나 오켄카 등이 중심이 되어 미국복음주의 협회를 구성하게 된다. 이들은 1세대 근본주의와 달리 사회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주장한다. 이들중의 하나인 칼 헨리는 복음주의의 불편한 진실이란 책에서 그동안 근본주의가 사회적 문제를 방관한 것을 비판하면서 영혼구원이나 개인구원이란 근본주의적 가치들을 중심에 유지하면서 적절한 사회개입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과거 프린스톤 전통을 재생할 목적으로 풀러 신학교를 설립한다. 풀러가 점점 진보화하자 빌리 그래함과 칼 헨리가 반발하여 창간한 잡지가 Christian Today인데 이는 진보적 잡지인 Christian Century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태생이 근본주의자인 밥존스 출신인 빌리 그래함은 부흥강사로 명성을 얻은 후에 뉴욕목회자협의회에서 주관하는 대집회 강사로 초청되는데 그 모임은 진보주의자도 있고 근본주의자도 있었던 모임이었다. 밥 존스(Bob Jones)가 '어떻게 자유주의자가 있는 모임에 갈 수 있냐'고 반대했지만, 빌리 그래함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거기서 승복하면 앞으로 근본주의자들의 모임에만 집회를 다니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나는 복음주의자다'라고 말하고 그 집회에 참여하며 밥 존스와 갈라지게 되는데 이것을 계기로 근본주의자 그룹이 밥 존스, 맥킨타이어, 무디 등의 근본주의 그룹과  빌리 그래함. 칼 헨리 등의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이렇게 빌리 그래함, 칼 헨리, 해롤드 오켄카같이 근본주의 2세대를 가리켜 신복음주의자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그냥 복음주의란 말로 통칭된다. 이들은 모두 근본주의 진영 출신들이다.

 

  그러다 1950~60년대를 맞았다. 당시 몽고메리에서 흑인인권운동( 1955년 흑인여성 로자 파크가 버스 안의 흑인 칸이 만석이 돼 백인 전용 칸에 앉아 '흑백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자, 일어난 버스 승차거부 운동이다)이 일어나고 베트남 전쟁(1955~1975)이 터졌다. 미국에서는 히피 문화가 일어나고 이민법이 바뀌어 이민의 문이 열리자 아시아에서 신흥종교가 들어와 복잡한 시대가 된다. 베트남 전쟁과 흑인인권운동이 일어날 때 신복음주의자 세대의 다음 세대인 베이비 부머(2차 대전 끝나고 태어난 아이들)는 반전운동과 인권운동을 경험한다. 이 때 복음주의 진영에서 등장한 사람들이 짐 월리스(Jim Wallis)나 로날드 사이언 같은사람들인데 이들은 사회문제에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복음주의 진영에 반감을 느껴서 전 세대보다 조금 더 진보적 인 입장을 갖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입장을 갖게 된다. 이들이 복음주의 좌파이다.  

 

  두번째 충격은 산모가 요구하면 임신 후 6개월까지는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는 낙태합법화가 1973년 미 대법원으로부터 인정됐다. 이것이 정치 참여를 백안시했던 근본주의자들이 '정치에 관심 갖지 않으면 신앙이 박살나겠다'하는 계기가 됐다. 또  60년대 이후 이민 쿼터로 묶어졌던 이민법을 풀게 되며, 그 이전에는 주로 유럽사람이 이민 왔는데 60년대부터는 불교, 힌두교를 아주 강하게 믿는 아시아권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전에는 기독교 교파안에 차이였는데 다른 종교가 떼거지로 들어오게 돼 이슬람, 불교도가 늘어나게 되니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이 큰 위기감을 갖게 된다. 70년대 이런 사건으로 제리 폴웰(Jerry Lamon Falwell)이라는 성서침례교회 목사는 설교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중심이 돼서 이런 생각으로는 도덕적 갱신을 기대할 수 없다며 미국의 영향력 있는 근본주의 목사들을 찾아다니며 연합해서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라는 근본주의자들의 정치 로비 단체를 만든다. 보수를 유도하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로 80년대 레이건에서 몰표를 줘서 대통령이 되게 한다. 이들을 복음주의 우파라고 한다.

 

미 공화당이 꿈꾸는 것이 기독교 우파가 꿈꾸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이들의 자녀 세대인 짐 월리스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은 70년대부터 복음주의 좌파, 진보적 복음주의로 민주당 쪽에 서게 된다. 이렇게 하여 미국의 복음주의 진영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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