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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태복음

마태복음 28장 다시 살아나심

마태복음 28장 다시 살아나심

Tolle Rege/마태복음

2012-07-01 01:59:29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죽음과 함께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말하실 때마다 다시 사실 것도 함께 계시하셨던 것이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간 것은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기억하였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라고 말한 것은 이를 입증한다. 천사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더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음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천사는 예수님이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라고 말하였다. 드디어 열한 제자는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였다. 여기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이란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후 영광스런 모습을 미리 보여주셨던 변화산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예고하신 대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항상 함께 말씀하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부활을 전제한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날 수 없는 죽음이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흘린 피였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진정 죄 사함이 이루어졌다면 죄의 결과의 사망의 권세도 무너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 분의 죽음으로 죄사함이 이루어졌고 죄의 결과인 사망의 권세도 무너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구속행위는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부활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만 강조하고 부활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행위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시각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과 함께 동시에 강조되어야 한다. 어쩌면 부활 사건이 없는 십자가 사건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죄사함의 목적이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이듯이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은 부활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아무 소망이 없을 것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죄사함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죄사함의 모든 결과로 부터의 해방과 자유가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죄사함만 얘기하고 죄의 권세로 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얘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진정한 죄사함이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땅을 새롭게 하는 수단이었듯이 죄사함의 목적은 죄사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모든 결과로 더러워진 이 땅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는 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이 구원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이루는 하나님나라가 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이 부활후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 소위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 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셰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는 말씀은 일견 당연한 듯 하면서 사실 의문이 드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미 가지신 분이시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그분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더구나 이어지는 "그러므로... 하라" 는 명령은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세와 제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어떤 관계가 있음을 분명히 의미하는 것 아닌가? 이런 문맥을 숙고해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받으신 권세는 예수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즉 예수님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려 흘리신 피였듯이 에수님의 부활 역시 많은 사람들을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얻게 하려 하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세는 예수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효력이 적용되는 자들에게도 주어진 권세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인데 이것은 원래 첫 창조시에 아담에게 주어졌던 권세였다. 그렇다면 여기 "그러므로... 하라" 는 명령은 이런 권세가 제자들에게 주어졌으니 이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다스리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 명령은 창세기에 아담에게 주어졌던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는 창조시의 명령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은 단순히 종교 전파의 명령이 아니라 창조시에 아담에게 하셨던 명령, 즉 아담이 범죄함으로 실패했던 그 사명을 이제 다시 명령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예수의 부활로 죄의 권세에서 해방된 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고 아담이 실패했던 그 사명을 다시 행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이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사명이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것이었듯이 여기서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명령 역시 동일한 것이었다. 그 명령은 오직 하나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나라의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먼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며 두번 째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순종하는 삶을 살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그리고 그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긍극적인 목적인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기 까지 제자들과 항상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추기]  2012. 7.4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는 말씀은 일견 당연한 듯 하면서 사실 의문이 드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미 가지신 분이시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그분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고백하는 바 예수님은 신인이시며 성육신 하신 이후로 영원히 신인으로 계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세는 성육신 하신 신인에게 주어진 권세인 것이다. 즉 이 권세는 신인으로 오셔서 신인으로 죽으시고 신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권세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분에게 주어진 권세인 것이라는 의미는 예수님이 사람을 대표하여 이 권세를 받으셨다는 말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란 하늘과 땅으로 통칭되는 만물을 다스리는 왕적 권세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 권세는 사실 첫 사람 아담에제 주어졌던 권세인 것이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이 권세를 잃어버렸고 이제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잃어버린 권세를 되찾으신 것으로 보야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 그러므로" 로 이어지는 명령과 예수님이 받으신 권세와의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이 받으신 권세는 예수님이 사람을 대표하여 받으신 권세이므로 이 권세는 이제 제자들에게도 주어진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제자들이 예수님이 받으신 권세를 발휘하기 위하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어쩻든 예수님이 받으신 권세에 제자들도 동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권세를 받으셨다고 선언하시고 나서 "그러므로 너희도 이 권세를 가지고" 나아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관련하여 우리가 또 생각할 문제는 예수님이 받으신 권세 즉 인간에게 회복된 권세는 첫 사람 아담이 받았던 권세와 동일하게 하나님으로 부터 위임된 권세라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적으로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권세를 위임받은 자이고 그러므로 인간은 그 권세를 사용하는데 반드시 권세를 위임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선악과 금령은 바로 이 점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은 순종하는 일에 실패하였고 결국 위임된 권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인이신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을 통하여 아담이 잃어버린 권세를 다시 위임받으셨고 그 권세를 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되찾으신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 일이 남아있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창조목적을 이루는 일이다. 우리는 창조목적을 떠나서 하나님나라를 생각할 수 없고 예수님이 얻으신 권세를 떠나서 성령의 역사를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추기] 2019-11-06 17:14:41

마태복음 28장

예수 부활의 첫 증인들이 여자들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당시에 여자들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천사는 여자들에게 예수는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며 갈릴리에서 그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7절) 여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무서운 일이었고 동시에 크게 기쁜 일이었다(8절) 왜 예수는 제자들을 갈리라로 가서 자신을 만나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예수는 죽기 직전에 살아난 후에 갈릴리로 가실 것을 예고하셨다(26장 32절)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난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18-20절)은 소위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선교명령으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예수가 그 나라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왕의 명령인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는 자신의 이 명령이 하나님나라 왕으로서 하시는 명령임을 분명히 하신다.(18절) 부활한 예수는 그는 이제 하늘과 땅은 모든 권세를 가진 왕이시다. 그는 이제 단지 이스라엘만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메시아 왕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제 예수는 이스라엘의 왕이실 뿐 아니라 이방인의 왕도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제자들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야 한다. 예수가 그들을 제자로 삼았듯이 그들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야 한다(19절). 예수가 그들을 제자로 삼은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세운 것이었듯이 이제 제자들이 모든 민족에게 예수가  왕이심을 선포하고 왕이신 예수에게 순종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을 상징하는 예식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니 세례는 종교예식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어 그 나라 왕이신 예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표시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자들은 모든 민족에게 왕이신 예수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20절) 이제 왕이신 예수는 그 나라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계시며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구약의 오랜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