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장 깨어 있으라는 교훈
Tolle Rege/마태복음
2012-06-28 23:14:05
제자들이 왜 성전건물을 가리켜 보이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변방인 갈릴리에 살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전의 완전한 파괴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던지신다. 왜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즉시 일어난 성전청결 사건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짐작케 한다. 그것은 성전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임재라는 본래적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라는 것을 보여주고 결국 성전파괴의 언급은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성전파괴에 대한 말을 듣고 그 일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의 끝에 일어날 일 징조라고 짐작을 한 것이다. 제자들의 이런 다소 엉뚱한 반응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의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말세가 도래하기 전에 나타나는 현저한 징조 두가지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자자들의 미혹 그리고 전쟁, 기근,지진과 같은 재난인데 이 가운데 믿는 자들이 환란을 당하고 미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환란이후에 해와 달이 어두어지고 별들이 떨어지는 등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며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으로 오실 것이며 천사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이렇게 예수님은 말세의 현저한 징조들을 가르치시셨으나 이 말세의 도래는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인자가 오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제자들이 기대하는 말세의 도래는 상당한 역사가 흐른 후에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결국 예수님의 교훈의 핵심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깨어있는다는 의미는 말세를 준비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나누어 주는 충성스런 종의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추기] 2019-11-06 17:13:25
마태복음 24장
그 동안 성전에 대한 심판은 암시만 되었지만 이제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제 예수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성전이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2절) 제자들은 이런 일이 세상 끝에 임할 징조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 때 어떤 징조가 일어날 것인지를 물었다.(3절) 예수는 여러가지 징조에 대해 말하면서(5-12절) 끝까지 견지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한다.(13절) 그러나 그 끝은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올 것이다.(14절) 이 말은 세상의 끝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 장구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어지는 징조들에 대한 경고(15-28절)은 그 때가 임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그 때에 임할 징조는 우주의 질서가 흔들리는 대 개벽으로 설명되기도 한다.(29-31절) 성전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은 주후 70년에 이미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종말에 대한 예수의 이런 묘사는 일차적으로 주후70년 예루살렘 멸망시에 일어났으며 먼 훗날의 세상의 종말은 아직 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임한 종말과 아직 임하지 않은 종말 사이를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런 종말에 대해 이야기한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종말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34-35절) 그러나 그 종말의 때는 아무도 모른다.(36절)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예수가 제제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44절)
마태복음 25장
여기에 등장하는 세가지 비유는 모두 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의 의미를 밝혀주는 비유로 보인다. 첫번째로 열처녀 비유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기다리라는 것이다.(13절) 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깨어서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중요한 통찰을 보여준다. 두번째 달란트 비유는 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현재의 삶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임을 보여준다. 달란트를 종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떠난 종들이 해야할 일은 단지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왔을 때 주인이 기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주인이 다시 오는 날, 곧 종말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과 염소의 비유는 작은 자가 큰 자가 되는 하나님나라의 질서임을 다시금 보여준다. 작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 그것이 바로 인자에게 선을 행한 것으로 간주된다. 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작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종말을 준비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이 세상에 우리가 매일 만나는 작은 자들에게 선을 헹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 비유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진리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종말을 이야기하고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살 것을 자세히 가르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예수가 제자들을 떠날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예수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고 제자들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하나님나라가 완성되는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의 맥락(마태복음 24-25장)
2016-01-16 23:22:44
제자들이 왜 성전건물을 가리켜 보이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변방인 갈릴리에 살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전의 완전한 파괴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던지신다. 왜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즉시 일어난 성전청결 사건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짐작케 한다. 그것은 성전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임재라는 본래적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라는 것을 보여주고 결국 성전파괴의 언급은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성전파괴에 대한 말을 듣고 그 일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의 끝에 일어날 일 징조라고 짐작을 한 것이다. 제자들의 이런 다소 엉뚱한 반응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의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말세가 도래하기 전에 나타나는 현저한 징조 두가지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자자들의 미혹 그리고 전쟁, 기근,지진과 같은 재난인데 이 가운데 믿는 자들이 환란을 당하고 미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환란이후에 해와 달이 어두어지고 별들이 떨어지는 등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며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으로 오실 것이며 천사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이렇게 예수님은 말세의 현저한 징조들을 가르치시셨으나 이 말세의 도래는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인자가 오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제자들이 기대하는 말세의 도래는 상당한 역사가 흐른 후에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결국 예수님의 교훈의 핵심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깨어있는다는 의미는 말세를 준비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나누어 주는 충성스런 종의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어지는 세가지 비유는 앞에서 말씀하신 핵심 교훈에 대한 설명으로 주어진다. 앞에서 예수님은 말세에 대하여 가르치시려던 것이 아니라 말세를 대비하여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치셨음이 이어지는 세가지 비유를 통하여 명백해진다. 예수님의 깨어있으라, 혹은 준비하고 있으라는 가르침의 내용은 이 세가지 비유를 통하여 더욱 풍성하고 명백하게 계시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비유는 소위 열처녀 비유인데, 그 비유의 핵심은 지혜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하였다는 것이다. 미련한 처녀들이나 지혜로운 처녀들이나 전부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은 동일하지만 기름을 준비한 여부에 따라서 신랑을 만나기도 하고 혹 못 만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비유의 핵심은 신랑이 오는 것은 확실하지만 언제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번째 달란트 비유는 주인에게 받았던 달란트를 가지고 그에 상응한 결과를 낸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하여 주인의 심판이 있다는 것인데 이 비유는 말세를 준비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여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가르키고 있다. 세번째 양과 염소의 비유는 말세를 대비한 현재의 삶의 핵심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결국 이 세가지 비유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의미는 말세를 준비하며 깨어있는 삶이란 현재적 삶에서의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 다시 말하면 순종을 통하여 이 땅과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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