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경/마태복음

마태복음 27장 십자가에 죽으심

마태복음 27장 십자가에 죽으심

Tolle Rege/마태복음

2012-07-01 00:47:45


  드디어 예수님은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진다. 빌라도의 첫번째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정치적 질문이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말이 옳다고 긍정하신다. 이전에 대제사장의 심문앞에서 예수님은 아무 변병도 아니하시고 침묵하셨지만 "네가 그리스도나?"는 결정적인 질문에 대하여는 침묵하지 않으신 것처럼 빌라도의  결정적인 질문에도 예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다. 이 심문 과정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셨는데 그것은 자신이 메시아이며 유대인의 왕임을 시인하신 것이다. 결국 유대인이 고대하던 메시아이며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유대인에 의하여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는 역설이 일어난 것이다. 유명한 죄수인   바라바는 오히려 풀려나고 무죄한 예수님은 이제 사형선고를 받는 아이러니는 죄인의 죄를 사하시려 대신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들에게 매를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희롱을 당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은 더이상 더 낮아질 수 없이 낮아지신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가? 십자가에 달려서도 그의 옷은 군병들의 제비뽑는 물건으로 취급을 당하고 지나가는 자들은 머리를 흔들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모욕하며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예수님을 욕하는 이 장면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지금 그렇게 쓰레기 취급을 당하시는 분이 바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는 희롱의 말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인간의 철저한 불신을 엿보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자신의 칭조목적을 이루시는 순간인 것을 누가 알았으리요?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앞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은 아들의 죽음앞에 눈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의 슬픔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절규는 자기 아들을 버리기 까지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로 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배반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과 분노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예수님이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실 때 성전의 지성소를 가린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된 사건은 하나님과 언약백성을 가로막았던 인간 죄악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어 이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전격적으로 열린 것을 의미한다. 또한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며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난 것은 그들을 지배하던 죽음의 권세가 이제 무너뜨려진 것을 의미할 것이다.

 

 

[추기] 2012. 12. 2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을까? 십자가의 죽음외에는 인간 역사를 고치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룰 다른 길이 없었을까?  우리는 다음의 두가지 관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필연적인 사건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이후로 인간에게 주어진 사망의 굴레이다. 원래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물론이고 인간의 다스림을 받는 피조세계에도 죽음이란 생소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사망의 권세에 놓이게 되었고 피조세계도 소멸의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회복되는데 인간을 비롯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을 그 권세로 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없이하셨다고 증거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없이하시고 모든 인간을 사망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인간과 똑같이 사망을 직접 체험하심으로 인간처럼 사람의 굴레속으로 들어가신 것이고 인간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예수님이 사람처럼 죽음을 체험하신 것 처럼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부활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죽으신 것이고 우리는 예수의 다사 사심을 살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외에 무엇이 인간을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킬 수 있겠는가?

 

  두번째로 예수님의 죽음은 언약적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고 그 결과는 오직 죽임뿐인 것이다. 언약을 배반한 당사자인 인간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언약적 공의를 따른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이 언약적  공의를 따른 언약적 죽음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언약적 공의가 충만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죽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 역시 충만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시어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언약적 자비)와 진리(언약적 공의)가 충만하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언야적 자비와 언약적 공의가 충만하게 드러난 언약적 죽음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외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더 충만하게 드러날 다른 길이 있겠는가?

 

[추기] 2019-11-06 17:14:41

마태복음 27장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을 때도 예수는 다른 고발에 대하서는 아무 대답도 안하시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긍정하신다. 대제사장의 심문이나 빌라도의 심문에서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죽음인 것을 밝히신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죄패를 써붙은 것은 예수의 죽음이 바로 그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인 것을 보여준다.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희롱하였으며(29절)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 지나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다(40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남은 구원하지만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조롱했다.(42-43절). 이 조롱의 말들은 예수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주장했으며 바로 그 주장때문에 그가 십자가에 달렸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예수는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고 이 사실은 예수가 제자들과 유월적 식사에서 하신 말, 즉 자기의 죽음이 언약적 죽음이며 많은 사람의 죄를 사하는 죽음인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