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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시편

시편 69편 하나님이여 구원하소서

 

시편 69편 하나님이여 구원하소서

Tolle Rege/시편

2013-11-26 17:37:25


  물들이 목에까지 차오르고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이 빠진 시인은 이제 깊은 물로 들어가며 큰 물에 휩쓸리고 있다. 그가 처한 상황은 의지할 것이라곤 전혀 없는 절박한 상화이며 목숨은 경각에 달렸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목이 마르고 눈이 쇠하도록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그런데 시인이 자기의 어리석음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당하는고통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것인 듯 하다. 시인은 자신이 당하는 이런 고난으로 말미암아 주를 바라는자 들 , 주를 찾는 자들이 수치나 욕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아마도 공동체의 지도자였을 것이고 공동체를 대표하는 자신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공동체 전체가 수치를 당할까 두려워 한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는 공동체의 수치는 곧 하나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는다고 말한 것은 시인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로 부터 온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당하는 고난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그 고난은 하나님이 시인에게 주시는 징계의 고난이다. 동시에 그 고난은 주를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고난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시인은 징계하시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고난을 받게 하신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지만 대적들에게 잘못한 것은 없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이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며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었다"고 하였다.대적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므로 경건한 시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시인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나에게 미쳤다" 는 말은 이것을 보여준다. 이 고난을 통하여 시인의 잘못은 교정되지만 대적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악한 자의 악행을 사용하시어 자기 백성을  고치시며 그 후에 그 악인을 벌하시는 분이시다.

 

  시인은 곡하고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진실된 회개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형제들도 이런 시인을 이해하지 못하며 도리어 욕이되고 말거리가 되었다. 성문에 앉은 자들은 비난하고 독주에 취한 자들은 조롱하였다. 가까운 자든 먼 자든 아무도 시인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자가 없었다. 하나님은 시인을 대적의 공격가운데 두었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자의 조롱가운데 두신 것이다.

 

  이제 시인이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시인에게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시며 자기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받으실 때를 틈타서 기도하기로 작정하였다. 징계를 받는 시인이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그분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이시다. 여호와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응답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을 대적의 손에서 건지실 뿐만 아니라 인자하심과 긍휼로 자기에게 돌아오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적의 압제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인에게 돌아오시는 것이며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며 시인의 영혼에게 가까이 하시는 것이다.

 

  대적들의 비방으로 시인의 마음은 상하고 근심이 충만하나 시인을 불쌍히 여기는 자도 긍휼히 여기는 자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인이 당하는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시인의 대적들도 다 하나님 앞에 있는 자들이다. 즉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이 대적들을  심판하시기를 구한다. 그들은 주께서 징계하신 자를 핍박하였고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조롱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며 정죄하실 것이다.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2013. 10. 20  19:28

 

  신약 성경은 이 의로운 고난자의 부르짖음을 그리스도의 수난의 예표로 해석하고 있다. 시 22편을 제외하고 신약에서 이 시보다 더 많이 인용된 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