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1장 아달랴의 죽음
Tolle Rege/열왕기하
2011-07-16 13:57:02
북조 이스라엘에서 아합의 집안이 심판을 받고 멸절한 기록 이후에 유다에 대한 기록으로 넘어가는데 이는 북 이스라엘에서 아합의 집안은 멸망을 당했지만 정작 유다에는 아합의 딸 아달랴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기록은 유다에 남은 아달랴가 죽임당함으로 아합집안에 대한 심판이 마무리되며 아합의 악한 영향이 유다에서 제거되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멸절하려고 하였다. 자기가 낳은 아들들은 이미 예후의 손에 죽었으므로 아달랴는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윗의 후손인 왕자들을 죽이려고 한 것 같다.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는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숨겨서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였고 요아스는 성전에 육년을 숨어있었다. 그 사이에 아달랴가 권력을잡고 나라를 다스렸는데 일곱째 해에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시야를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고 군대를 동원하여 아달랴를 축출하고 아달랴와 그를 따르던 자들을 모두 죽인다.
아달랴가 죽은 후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로 인하여 더럽혀진 유다 개혁에 착수한다. 그가 요시야를 왕으로 세울 때 율법책을 주었다는 것은 왕이 율법으로 따라 순종하고 다스려야 함을 보여준 것이다.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이 여호와와 언약을 갱신하도록 하고 왕과 백성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였다. 이 모든 언약은 결국 언약법적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과 그 백성이 여호와의 법에 순종할 것을 언약한 것이고 왕은 율법을 따라 백성을 다스릴 것을 언약한 것이다. 언약을 맺은 후 온 백성은 바알을 신당을 허물고 제단들과 우상을 깨뜨리며 바알의 제사장을 죽였다.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아합 집안에 대한 심판이 완성되었고 유다에 미친 아합의 악영향이 제거된 것이다.
그러나 아합이 유다에 미친 악영향은 근본적으로 제거되지 못하였고 이후 유다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열왕기의 기록은 그동안 이스라엘 중심으로 나타나다가 이후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가 내리막길로 나아가는 기록이 번갈아 나타나게 된다.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아들인 후 그 피는 유다왕조에 섞이게 되었고 유다왕조 또한 그 피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았듯이 여호사밧은 아합을 가까이 함으로 유다 역사의 물줄기를 잘못 돌려 놓은 것이다.
[추기] 2019-11-06 16:54:15
열왕기하 11-12장
아하시야가 죽자 아달랴는 다른 왕족들을 다 죽이고 유다의 왕권을 차지하고 무려 6년동안 다스렸다. 일시적으로나마 다윗의 왕권이 단절된 것이다. 다행히 어린 왕자 요아스가 살아남았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아달랴는 처형되고 요아스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왕권을 되찾았다.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했다. 그는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고 바알의 신전을 부수고 그 제사장을 죽였다. 아달랴가 다스리는 동안 남조 유다에도 바알 신전이 세워지고 바알을 숭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아스는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그의 가르침을 받아서 바르게 다스렸다. 요아스가 성전을 보수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아달랴가 성전을 부수고 성물까지 꺼내다가 바알에게 바쳤기 때문에 성전보수를 서둘러야만 했기 때문이다.(참고 역대하24장7절)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지도자들은 왕을 부추겨서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게 만들었다. 이는 여호야다가 아달랴의 악습을 개혁했지만 이미 유다 백성들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는 습관이 깊이 들어버렸음을 보여준다. 주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았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백성들을 책망하자 백성들은 그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왕으로 하여금 스가랴를 죽이게 만들었다.(역대하 24장 19-21절) 이어지는 시리아 군대의 침략은 유다백성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이었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을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으로 가져갔다. 시리아 군대가 요아스에게 심한 타격을 입히고 돌아간 후에 요아스의 신복들은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을 죽인 일에 반감을 품고 역모를 꾸며 요아스를 죽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먀샤가 유다의 왕을 이어감으로 다윗의 왕권은 끊어지지 않았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혼인동맹을 맺은 일로 인해 유다의 왕권은 끊어질 뻔 했고 아하시야에 이어 요아스도 죽임을 당하는, 유다에 일찍이 유래가 없던 일이 벌어졌다.
'구약성경 > 열왕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하 13장 엘리사의 죽음 (0) | 2023.03.22 |
---|---|
열왕기하 12장 요아스 개혁의 한계 (0) | 2023.03.22 |
열왕기하 10장 아합 집안의 멸망 (0) | 2023.03.22 |
열왕기하 9장 심판이 시작됨 (0) | 2023.03.22 |
열왕기하 8장 심판이 준비되다. (0) | 2023.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