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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

2015-03-28 07:24:19


   한국 교회의 주류는 번영과 건강의 복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락을 위한 신이 되어버렸다. 교회는 세상의 영향을 깊이 받으면서 세속화되었다.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신자가 하는 행동들을 하나님에 대하서 그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결핍은 필연적으로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적인 신앙으로 이끈다. 이것은 사실상 우상 숭배로 가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알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고 기독교가 타락해 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데 영생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달렸다(요17:3)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호6:6)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우리가 가장 추구해야 할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고 가르치신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의 인격과 성품이 어떤지, 그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에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불가지론자들은 인간은 자연적인 영역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칸트는 신적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신은 사람의 지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므로 감각에 근거해서 신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행동의 깊이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노력하라고 요청한다. 성경은 우리가 지식과 능력이 뛰어나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그런 방식으로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보여주셔야만 알 수 있다. 이처럼 주도권은 하나님이 쥐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만큼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에 대해 아는 것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 상대방을 아는 것은 다르다. 사물을 아는 것은 사물에 대한 외적인 정보를 아는 것이지만 인격적인  상대방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렇게 앎에는 두 종류의 앎이 있는데 이것을 하나님에 대해 적용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이 알 수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신약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성경이나 종교적 행위 그리고 교리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과 비슷하며, 외적인 지식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과 생각을 알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반지성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신을 믿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정직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객관적으로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참된 지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세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단계는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얻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계획과 뜻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지식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속에서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다. 그분은 실체를 가진 인격이시고 구체적인 성품과 특성이 있는 존재이시며 어떤 것에 대한 선호가 분명하고 자신의 의지와 뜻에 따라 계획적으로 일을 추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어설프거나 잘못된 지식은 위험하다. 그것은 잘못된 하나님 상을 만들어 내고 우리를 우상숭배로 이끌기 때문이다. 두번째 단계는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다. 성경은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권한다.(시편34:8)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지식을 알지라도 삶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심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직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심을 충분히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개관적 지식은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속에서 실제로 체험되는 것이 중요하다.

 

  세번째 단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의 삶 속에서 순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과 인격적인 관계속에서 체험을 통한 앎은,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에 우리 자신을 전폭적으로 던지는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실제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한다(요일2:4)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그분의 속성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살아보기 전에는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순종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체험 그리고 실제적인 삶이라는 세요소를 다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하나님을 이렇게 전인격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자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책상머리에서 이론적으로 얻게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몸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 이해하지 못할 일들, 힘들고 번거로운 일드로 가득찬 우리의 일상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알고 이해하게 되는 체험의 현장이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잔실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이해하고 체험하여 살아있는 내 지식으로 만드는 현장이 되는 것이다. 삶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인생의 난관들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흥미진진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만나주신다고 약속하셨다.(렘29:12-14)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그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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