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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사사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사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2018-10-25 19:36:41


   사사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절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이스라엘이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 이다. 또한 사사기의 기자는 이 말로써 사사기의 끝을 맺고 있다.  아마도 사사기 기자는 사사시대의 모든 문제를 이 한 구절로 요약하여 결론내리는 듯 하다. 그렇다면 사사기는 사사들의 영웅담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일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이 맞다면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고발이며 이스라엘의 실패에 대한 진단의 기록인 셈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문자 그대로는 사사 시대는 왕정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이므로 "이스라엘에 인간 왕이 없으므로" 라는 뜻이 된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학자들은 사사기의 기자가 왕정 시대의 도래를 희망하고 있으며 사사기가 기록된 시대는 왕정시대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사기 18장의 단 지파 이야기에 보면 단 지파가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살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사사기는 왕정 시대가 끝난 포로시기거나 혹은 포로에서 돌아온 시기일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사사기의 기자는 왕정 시대의 실패와 그로 인한 비참한 포로기를 이미 알고 있던 사람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이 구절에서 왕이 없다는 말이 문자적으로 인간 왕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기는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왕정의 실패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마치 왕이 등장하면 사사 시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은 하나의 유비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사사기 기자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유비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니까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시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의 왕되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의미가 된다.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의도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시며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주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려 하심이었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신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섬겨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 공간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가나안 땅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는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실 수는 없는 일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견져내셨다. 또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 공간이 필요하기에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니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순종하는 일이고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사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던 바로 그때에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다고 고발한다. 이는 하나님이 없었다는 의미이지 않다. 하나님은 계셨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구체적인 일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기에 자기 소견을 따라 행하게 된다. 그 반대로 자기 소견을 따라 행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긴다는 말은 그 앞에서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함을 의미하며 자기 소견을 따라 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사사 시대의 모든 문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은데 있고, 자기들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데 있다. 이것이 사사기 기자의 진단이며 고발이다. 사실 이는 사사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이스라엘의 문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신데 반해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고질적인 문제는 이스라엘 역사를 넘어 기독교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문제였고 이 문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실 이 문제는 인류 역사의 출발점에서 부터 대두된 문제다. 선악과 이야기의 본질은 바로 이 문제였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금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선악과 자체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는 자기들이 보기에 그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보였고 결국 그 열매를 먹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견에 좋은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런 명령을 주신 것은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시려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시며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들임을 가르쳐주려 하심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한 것은 곧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한 일이 된다. 그러니 사사시대에만 이스라엘에 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에게 왕이 없었던 셈이다. 사사시대 이스라엘의 고통의 원인이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자기 소견대로 행한 것이었듯이 인간 역사의 모든 비극의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노릇하려고 한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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