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2015-03-18 11:21:10
고대나 현대나 모든 인간의 심성에는 종교성이 있는데, 이런 점에서 인간을 종교적 동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시적인 형태의 원시종교가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초월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 특징이라면 고등종교는 당면한 문제 해결만이 아니라 삶의 총제적인 면에서 초월자와의 관계를 추구하고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종교란 이런 고등종교의 형태를 의미할 것인데 이것을 정의한다면 " 종교란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인식에 근거해서 세계관과 인생관을 정립하고 그 관점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한 이런 정의에는 세가지 요소가 나타나는데 첫째는 자연계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식, 둘째는 그 존재와 관련하여 우주와 역사와 삶에 대한 관점을 세우는 것, 그리고 셋째는 그런 관점에 근거해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에 적용하여 본다면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서 자신의 세계관을 세우며, 그런 세계관을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고등 종교가 가진 이런 세가지 요소에 근거하여 종교의 본질인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믿음의 시작은 당연히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 존재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믿음의 첫번째 요소이다. 믿음의 두번째 요소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서 자신의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을 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자, 섭리자, 심판자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의 삶의 의미나 목표를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세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자신이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수납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관점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관점에 따라서 살게 만든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단어는 "순종하다, 따르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믿음은 단순한 인정이나 동의가 아니라 믿음의 사실에 근거하여 생각을 바꾸며 그 생각에 따라서 삶을 영위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믿음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판별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자신이 믿는대로 실제로 행동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된다.
바울의 경우는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고 예수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그 후에 그는 자신이 이전에 추구하던 가차관과 삶의 목표가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버리고 예수를 통하여 주어진 새로운 계시를 따라서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을 정립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전에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했던 것을 그리스도때문에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하였다.(빌3:7-8) 그는 바뀐 가치관에 따라서 삶의 방향과 목표를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신의 사명을 실천하는 일에 매진하고 목숨을 바쳤다. 참된 믿음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생각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생각에 기초하여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믿음의 내용이 중요하다.
2015-03-18 11:46:25
믿음의 핵심이 실천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임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믿음의 내용에 대한 지성적 탐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거나 오히려 믿음을 훼손시킨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나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믿음과 지성, 실천과 이해를 대립적으로 생각한 것이고 믿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하나님의 생각을 내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거쳐서 신뢰의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확인했는데, 여기서 처음 두가지 요소는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에 관한 것이고 세번째 요소는 그런 지식에 근거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에서 출발하며 실천을 위한 방향 정립을 거쳐서 행동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배워서 안다. 즉 지성적인 배움을 통해 우리가 믿는 대상을 알게 된다. 이렇게 믿음은 무엇을 믿는냐는 믿음의 내용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행동이 중요하지만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아는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식이 없는 믿음은 맹목적 신념이나 자기 확신에 불과하다. 믿음은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에 대한 어떤 지적인 인식을 전제한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이 지식에서 출발해야 하고 이 지식에 근거해야 한다.1
그러나 아무 지식이나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지식이어야 한다. 바른 지식에 근거한 믿음이어야 바른 믿음이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을 믿는냐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믿음의 최종 단계인 신뢰와 실천은 자신의 삶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내용에 따라서 삶의 모양이 근본적으로 달라자는 것은 당연하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있느냐에 따라서 삶의 행태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사랑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부분적인 지식을 부분이라고 인정하면 괜찮은데 그 부분을 전부라고 주장하면 거짓이 된다. 그러므로 바른 신관이 중요하다. 바른 신관에서 바른 인간관과 바른 세계관이 나온다. 이처럼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는 것이 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계획하고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에게 기대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믿음이란 가짜 믿음, 헛된 믿음일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믿음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믿음의 내용은 어디서 얻는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시며 인간은 누구이고 또 세상은 무엇인지를 계시하여 주셨다. 그래서 기독교는 성경의 종교이며 기독교인은 성경의 사람들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신학작업이다. 그러므로 신학작업은 신학자나 목사의 전유뮬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성경에 충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예외없이 모든 신학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성경은 누구나 읽기만 하면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당연히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지성적인 노력을 통한 해석을 요구한다. 바른 신학작업을 통해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바른 지식이 바른 실천을 가져온다. 성경에 대한 지적인 탐구는 믿음의 내용을 알려주고 확신의 근거를 제공해 주며, 삶의 방향을 설정해 주고 행동의 동력을 제공해 준다. 믿음에서 지식의 요소가 경시되면 바르지 못한 것을 실천하게 되거나 혹은 아예 실천의 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는 가져오게 된다. 지성적인 노력은 실천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천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해준다. 분명한 영적 실체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삶은 깨달음과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주 1
그러나 이 지식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사변적이거나 사실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에 기반한 관계적 지식이다.
- 그러나 이 지식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사변적이거나 사실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에 기반한 관계적 지식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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