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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신명기

신명기 5장 십계명의 선포

신명기 5장 십계명의 선포

Tolle Rege/신명기

2011-06-20 00:12:51


   모세가 출애굽2세대를 모아놓고 본격적으로 법도와 규례를 선포하는데  첫 출발점은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이었다. 왜냐햐면 모든 법도와 규례는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모세는 호렙에서 세운 그 언약의 당사자가 바로 출애굽2세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조상들과 그 언약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있는 자들과 세우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호렙의 그 언약은 이스라엘의 세대와 관계없이 불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은 늘 현재적 성격을 가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기초 작업위에 모세는 호렙에서 언약을 맺었던 장면을 현 세대에게 현재적으로 적용하며 호렙에서 받았던 십계명을 선포하고 있다. 언약을 세웠다는 말 이후에 십계명이 이어지는 것은 십계명이 언약의 핵심적 요소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은 언약적 삶을 규율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언약적 삶과 언약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언약이 없는 언약적 삶이 없는 처럼 언약적 삶이 없는 언약도 없는 것이다. 이신칭의의 교리의 영향으로 언약적 삶을 경시하는 현대의 기독교는 이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모세는 십계명을 선포하면서 십계명은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것임을 계명 중간 중간에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신언공식의 등장은 비록 모세 자신이 이 계명을 선포하고 있지만 이 계명은 자신의 교훈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명령하신 신적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4계명을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한 제시가 출애굽기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 특이하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다는 것이 동기절로 주어진 반면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이 동기절로 주어진 점이다. 이것은 이미 출애굽기에서 4계명의 세부법을 통해서  법 정신이 해방과 자유인 것이 암시되었는데 이제 신명기에서는 4계명의 법정신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다. 특별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날이 임박한 출애굽2세대는 안식일 계명을 통하여 출애굽의 목적인 자유와 해방을 그곳에서 충만하게 누려야 할 것이었다. 모세는 십계명이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총회에 이르신 것이고 직접 두 돌판위에 써주신 신적권위를 가진 것임을 다시금 강조한 후 이어서 자신의 중보적 권위의 출처를 설명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에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여 모세를 통하여 듣기를 간청하였고 하나님이 이를 승인하셨으며  그래서 세부법은 모세를 통하여 백성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이후에 주어지는 모세의 교훈 역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신적인 권위를 가진 교훈임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신명기 5장

닥치고 성경/신명기

2019-10-23 21:57:27


신명기 5장

 이제 4장 44절부터 모세의 본격적인 고별 설교가 시작되고 이것은 28장 마지막까지 길게 이어진다. 모세는 자신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기에 출애굽2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행할 율법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 설교의 중심은 율법이고 증언이며 규례와 법도라고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모세가 율법을 선포하는 장소가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 그리고 바산 왕 옥의 땅을 빼앗은 요단 동편이라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지금 이스라엘 출애굽2세대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시점임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약속하시 않은 땅도 주셨다면 약속한 땅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모세 설교의 핵심은 가나안 땅에 어떻게 들어갈 것이냐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율법에 순종하는 언약적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온 이스라엘을 불러 이르길 자신이 지금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신이 지금 선포하는 율법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을 때 주어진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세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 지금 출애굽2세대의 조상들 즉 출애굽1세대와 세운 것이 아니라 오늘 살아있는 출애굽2세대와 맺은 것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 이스라엘의 어느 특정 세대와만 맺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오고 오는 모든 세대와도 맺은 언약임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모세는 그 언약을 상기하면서 출애굽2세대에게 그 언약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당시에 출애굽2세대는 대부분 어렸거나 태어나지 않았지만 모세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에 그들도 동참한 당사자들임을 말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시내산 언약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세는 바로 시내산 언약에서 주어졌던 십계명을 선포한다. 이것은 시내산 언약의 핵심이 바로 십계명임을 의미한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에서 나온 언약법이기에 그것은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 무엇인자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십계명은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는 말로 시작한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대표하는 선언이다. 출애굽 역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행동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먼저 선포되고 이어서 주어지는 십계명은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언약적 신실함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신실하시므로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십계명의 정신인 것이다. 

 

  처음 3가지 계명은 사실 하나의 계명을 구성한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신실함의 출발이며 토대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이어지는 여호와를 형상화하지 말라는 명령이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명령은 이 첫번째 계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라고 보여진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이방신들의 특징은 거의 예외없이 그 신을 형상화하며 자신들의 복을 구하기 위해 신들의 이름을 반복하여 불러대는 것이므로 이스라엘에게는 이방신을 섬기는 방식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금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안식일 계명은 그 조건절의 내용이 출애굽기와 다르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으므로 이스라엘도 안식해야 한다고 한 반면에 여기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므로 이스라엘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안식일 계명의 조건절의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마도 출애굽2세대가 출애굽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 그러니까 모세는 지금 출애굽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출애굽2세대에게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으로서 출애굽 사건을 안식일 계명의 조건절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출애굽기 16장에서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만나가 주어질 때이다. 이 때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고 그 대신 제6일에 갑절의 만나를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먹고사는 문제가 이스라엘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린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앙고백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년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죽어라고 일해야먄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던 고대 근동의 열악한 삶의 여건에서 일주일에 하루를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에 아마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안식일 계명은 단지 휴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안식일 계명의 조건절로 출애굽 사건이 언급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인도하여 내셨다면 당연히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1,2,3,4 계명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당한 반응으로서 요구되는 이스라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5,6,7,8,9,10 계명은 어떠한가? 그 계명들의 공통점은 언약 공동체 안의 이웃에 대한 신실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 윤리 이전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언약적 신실함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언약적 신실함이 곧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신실함과 동일한 차원에 있음을 의미한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듯이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신실함은 이웃을 향한 언약적 신실함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웃에 대해 신실하지 않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해 신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마지막 10계명에서는 탐심을 금하고 있는데 이것은 율법준수가 외적 행위 이전에 마음의 문제임을 시사하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시내산 언약과 언약법에 대한 모세의 선포는 언약법 준수에 대한 간곡한 당부로 마무리 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들어가서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가나안 땅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시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율법을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하신  도를 행해야만 그들이 살 것이요 복이 그들에게 있을 것이며 가나안에서 그들의 날이 길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