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사상의 핵심 : 낮아지신 하나님
2013-12-09 19:51:41
성경이 말하는 언약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성경은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신데 그렇게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다고 말한다. 물론 하나님과 사람이 동등한 언약의 상대는 아니지만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언약 양 당사자가 어느정도는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보면 지극히 낮아지신 것이고 사람 편에서 보면 지극히 높아진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언약을 말할 때 언약 양 당사자의 어느 한쪽의 낮아짐과 다른 한쪽의 높아짐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낮아지심" 사상은 성경에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다.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낮아지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조시부터 하나님은 낮아지심으로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셨다. 성경은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로 소개하면서 동시에 피조물인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우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함으로써 높읜읜하나님의 높으심과 동시에 낮아지신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관계하시기 위하여 인격적인 수준으로까지는 낮아지셨지만 그것은 오직 인간이라는 피조물에 국한된 것이지 다른 피조물에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다른 피조물에 관해서는 하나님은 오직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계실 뿐이지만 오직 인간에 관해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넘어선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유독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것은 바로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맺으시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아무리 자신을 낮추시더라도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언약 사상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피조물이라는 인간존재의 구별된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성경의 언약사상은 인간 존재의 독특성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톡특한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오직 인간과만 언약을 맺으시지 인간외의 다른 피조물과 언약을 맺으신 적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낮아지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스스로 겸손하시거나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되 특별히 자기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심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세계를 직접 다스리기 보다는 자기의 형상적 존재인 인간을 통하여 다스리게 하시길 기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통치권을 위임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통치권의 소유자는 인간이 아니라 엄연히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통치권은 인간에게 위임된 것일 뿐이지 소유권이 인간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치권은 당연히 통치권의 소유자인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하고 통치권을 위임받은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 통치권을 사용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창조목적이고 인간의 존재목적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인격적 관계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게 전달되고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하나님과 인간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소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이 주어진 것은 바로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려야 할 존재임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범죄한 인간에게 죽음이 선고된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그 존재 목적은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출발된 성경의 언약사상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최조의 언약인 아브라함 언약이다. 아브라함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 편에서 아브라함에게 씨와 땅을 약속하신 것이고 아브라함 편에서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신뢰하고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 아브라함 언약은 나중에 이스라엘이 출애굽이후 시내산 언약으로 발전하는데 그 때는 이미 씨의 약속이 성취되었고 땅의 약속의 성취만 남겨두고 있었다. 시내산 언약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에서 없던 십계명을 비롯한 엄청난 울법이 주어지는데 그 율법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장차 들어갈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말하면 약속을 땅을 다스릴 하나님의 뜻의 계시로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언약의 목적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게 하기 위한 것임을 발견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사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반영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들에게 선악과 금령을 주신 것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가나안 땅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며 그들에게 율법은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 금령을 거역한 아담에게 사망의 선고가 내려졌듯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길 거부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나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상실케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목적이 그러하듯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도 동일하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인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릴 책임이 있었듯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을 다스릴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임을 떠나서 인간 존재의 목적이나 이스라엘 역사의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아담도 실패하였고 이스라엘도 실패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것인가? 인간은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인간이 실패한다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위임하신 통치권을 회수하여 직접 다스리시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엄연히 인간을 톻하여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며 실패한 인간을 다시 새롭게하여 창조목적을 이루게 하신다. 실패한 아담의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을 준비하셨듯이 실패한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준비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순종하는 인간이 순종하며 무능한 인간이 유능해지고 실패한 인간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성경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인간이 되신 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 하나님의 낮아지심" 의 극치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셨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조롱당하고 수치스런 죽임을 당하기 까지 낮아지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에서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지상에 계실 때만 잠시 인간이 되셨던 것이 아니라 부활하실 때도, 승천하실 때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지금도 그리고 장차 다시오실 때도 영원히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시다. 그러니까 성육신 사건은 인간의 죄를 당당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히 인간이 되시기를 작정하신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목적을 영원히 이루시기 위하여 인간의 수준으로 영원히 낮아지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타락했던 인간의 영원한 높아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낮아지심으로 인간은 높아진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창조로 시작되었고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구체화되었던 성경의 언약사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역사 가운에 등장하신 그리스도는 인간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려고 낮아지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낮아지시되 아예 인간되시고 영원히 인간이 되시기까지 낮아지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가 되시었다. 여기서 중보자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언약관계를 전제한 것으로서 그 관계를 영원히 유지시키는 분이란 의미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시므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영원한 중보자가 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랗다면 언약에서 중보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중보자되심은 단순히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중보역할을 하신 것이 아니라 언약의 당사자가 되신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대표하신 것이고 사람 편에서는 그리스도는 사람을 대표하신 방식으로 중보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죽음은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를 대신 받고 죽으신 것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그의 죽음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증명한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공의와 사랑이 충만하게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적 공의와 사랑의 화신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지금도 그러하시고 영원히 그러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 관계는 회복되었으니 성경은 이 언약을 영원한 언약 혹 화평의 언약 그리고 새 언약이라고 부른다. 이 언약을 통하여 새롭게된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준비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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