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위의 이원론
2011-12-31 11:06:29
현대 기독교의 고질적인 문제는 종교개혁의 왜곡된 유산으로 남겨진 믿음과 행위의 이원론 일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강조하면서 행위에 무관심한가 하면 행위를 강조하면서 믿음에 소홀한 경우가 그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행위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과 행위의 긴밀한 내적관계를 알지 못한채 행위를 믿음을 가진 자의 윤리적 결단이나 아니면 구원에 대한 감사로서의 보답적 반응정도로 이해함으로써 여전히 믿음과 행위의 이원론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우리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실체에 대하여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성경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내세우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믿음이란 매우 언약적 표현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씨와 땅의 약속을 주시며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고대 근동의 종주권 조약의 형식을 빌려 확인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건 피의 서약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할례를 명하셨는데 이 할례의 성격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서의 인간 편에서의 피의 서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그러므로 여기서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며 본질적으로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였다.
이렇게 보면 믿음이란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므로 믿음이란 말 자체가 매우 언약적인 표현인 셈이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며 나아가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니 믿음을 통하여 우린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맺게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구원이란 결국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믿음으로 회복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이런 언약적 성격을 이해한다면 우린 행위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을 발전시킬 준비가 된 셈이다. 먼저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언약적 표현인 것을 납득한다면 행위 역시 언약적 성격을 가진 것을 알아야 한다. 믿음과 행위의 이원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믿음과 행위의 긴밀한 내적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행위란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형성된 관계로 부터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관계로 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행위의 요구인 것이다. 그런 언약관계가 없었다면 그런 행위의 요구가 나올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는 십계명의 서언은 십계명의 수여자와 수납자의 관계를 먼저 규정한 것이고 나아가 십계명 자체가 그런 관계로 부터 발생한 관계법 즉 언약법인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십계명중의 가장 근본법으로 제 1계명이 제시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1계명의 요구는 언약 관계를 존중하고 그 관계를 파괴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약 관계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요구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결국 십계명의 정신은 하나님이 거룩하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도 거룩하라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요구라고 요약하셨을 것이다.
사실 인간 삶을 규율하는 모든 법도 관계로 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때문에 거기에 남편, 아내 부모 자식으로서의 행위가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만일 인간이 무인 고도에 홀로 지낸다면 그리고 그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없다면 거기에 삶을 규율한 어떤 법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맺음이며 행위란 그 관계로 부터 발생한 관계법이라고 본다면 믿음과 행위의 이원론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과 행위란 언약적 차원으로 보면 동일한 것이고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상호간에 역동적인 주고받음을 통하여 발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이 없는 행위를 말하지 않으며 행위가 없는 믿음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이 언약맺음이라면 행위는 언약맺음으로 부터 발생하는 언약법인 셈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통하여 맺어진 언약 관계는 언약법 준수를 통하여 유지 발전되는 것이고 만일 언약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그 언약관계는 위기에 처하거나 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믿음없는 행위가 허상이듯이 행위없는 믿음이란 그 자체가 비역사적이 되고 실체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성경에서 요구하는 행위란 단순한 윤리 도덕이 아니라 언약관계에 충실하라는 언약적 요구이고 언약법 준수의 요구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행위의 문제를 언약법적 차원에서 이해하게 될 때 믿음과 행위의 이원론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 없는 행위가 법지상주의로서의 율법주의라면 행위가 없는 믿음은 믿음지상주의로서의 반법주의가 될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맺음을 기뻐한다면 우리는 동일하게 관계로 부터 요구되는 행위도 기쁨으로 행해야 할 것이며 행위를 통하여 그 믿음을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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