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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하나님나라와 교회

하나님나라와 교회

2011-10-14 00:27:49


  우리는 먼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를 명백히 하고 이 논의를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는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란 성경적 정의에 근거하여 볼 때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들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즉 교회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려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하나님나라 그 자체일 수 없으며 단지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세가지 요소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성경적 정의에 근거하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세가지 요소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곧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일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이 세가지 요소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런 자신의 위치를 망각할 때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교회가 스스로를 하나님나라라고 과장한다든지 교회의 목적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것이라는 사명을 망각한다면 교회는 이미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느 시대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연구하여 순종하며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을 그 뜻대로 다스리는 일이 교회의 사명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차적인 사명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그 뜻대로 다스리는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이런 일을 감당할 하나님나라의 씨들을 길러내고 훈련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전통적으로 내려온 지역교회 구조는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지극히 부족한 구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산업화 사회를 넘어 개인화가 극대화된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서로 삶을 함께 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현실속에서 주일에 잠깐 스치듯이 얼굴을 대하고 끝날 수 밖에 없는 지역교회의 구조는 점점 더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사는 것에 더이상 적합한 구조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지역교회도 말이 지역교회이지  그 지역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 뿐  그 지역 사회와 긴밀한 관계속에 있는 것도 아닌 상황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는 전통적인 지역교회 구조에서 탈피하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교회구조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모든 사람은 세가지 영역속에 속하여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지역과 일터 그리고 가정 혹은 혈연사회일 것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이 세가지 유형의 영역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교회구조를 찾아야 할 것이고 그래야만 교회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인간 삶의 전 영역으로 침투하여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역교회 구조는 공간적으로도 지역사회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무능하다. 사실 말이 지역교회이지 장소적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역교회일 뿐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유대도 없이 고립된 섬 처럼 떠있는 지역교회일 뿐이다. 더구나 시간적으로는 지극히 개인화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주일에 잠깐 모이는 것 외에는 사실상 모이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지역교회에서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훈련되고 형성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교회의 삼중구조를 생각하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첫째는 전통적으로 이어내려온 지역교회 구조를 유지하되 이제는 공간적인 의미의 지역교회가 아닌 지역사회를 하나님나라로 만드는 일에 그 사명을 둔 명실상부한 지역교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지역교회가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유대관계속에서 지역의 모든 삶에 참여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뜻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지역교회의 구성원은 무엇보다도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먼 타 지역에서 담임목사 한 사람을 보고 찾아나오는 지역교회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삶을 함게 하는 지역민들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그 지역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 서는 지역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두번째는 일터교회인데 사람은 누구나 경제활동을 위하여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인간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 일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터에서 이루는 교회인 일터교회는 일상의 바쁨속에 모이기 힘든 현대 사회속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주어진 영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하루 9시간 이상을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대하면서 싫든 좋든 함께 지내지 않을 수 없는 일터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최적의 장소일 것이며 더구나 치열한 삶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므로 종교적인 위선과 형식을 촤소화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좁게는 가정교회 넓게는 혈연교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터에서 지내는 시간 다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시하고 시공간을 함께 하는 가장 친밀한 관계가 가정 내지 혈연 공동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역 역시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 곳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인간 삶의 3대 영역인 지역, 일터, 가정(혈연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며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을 감당한다면  교회는 인간 삶의 실제와 유리된 이원론적 구조를 탈피하여 본격적으로 인간 삶의 현장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교회의 삼중구조는 서로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은 이중에 어느 교회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사람이 동시에 이 삼중 교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람이 주중의 업무시간에는 일터교회의 구성원이요 가정에 돌아오면 가정교회의 회원이며 주말에는 지역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교회는 지역교회의 구성원이 속한 수많은 일터교회와 가정교회와 협력하여야 할 것이며 일터교회 역시 일터교회의 구성원이 속한 수많은 지역교회및 가정교회와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가정교회 역시 가정의 구성원들이 속한 다양한 일터교회와 혹은 지역교회와 협력하여 함께 하나님나라를 지역과 일터와 가정에서 이루는데 동역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나라와 교회

2015-04-08 23:19:30


   교회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의 에클레시아이다. 에클레시아는 구약의 카할에서 그 성서적 기원을 찾울 수 있는데 카할은 모임 혹은 모이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이 히브리 카할을 70인역에서 에클레시아로 변역한 것인데 에클레시아는 밖으로(에크) 불러냄(클레시스)의 뜻을 담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의 집회나 공동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태복음 15:24은 예수의 사역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일차적인 선교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의미이지 이방인은 배제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예수는 사역의 대상에서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고 지역도 제한하지 않았다. 복음서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 선포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제자는 열두 제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열두 제자들 외에도 예수를 따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복음서는 이들을 제자라고 부른다.(마5:1,3,10 : 눅6:20-23)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지상 사역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이상 그의 사역의 목표도 주어진 역사 상황 가운데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백성들, 곧 교회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고 먼저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열두 제자들의 토대 위에 참 이스라엘 곧 교회를 세우실 의도를 밝히셨다.(마16:18)

  예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16:18)라고 하셨을 때  "세우다" 는 동사의 의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렘12:16: 18:9, 24:6, 31:4, 42:10, 암9:11)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 교회를 세운다고 선언하신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응하는 참 이스라엘을 세운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내 교회"라는 명시적 표현은 교회의 주인이 마땅히 그리스도이심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토대인 "이 반석"은 베드로가 열두 제자의 대표격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기 때문에 이 반석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의 믿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믿음이 고백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되 제자들의 믿음의 고백이라는 기초위에 세우시는 것이다. 또한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표현은 앞으로 세울 것이라는 미래의 사건을 암시한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교회가 아직 세워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때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나라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게할더스 보스는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했지만 피터 쿠즈믹은 중세 가톨릭교회가 범했던 심각한 실수가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동일시한 것이고 그래서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곧 교회의 통치로 왜곡되었다고 말한다. 교회가 하나님나라는 동일하다는 주장과 교회와 하나님나라는 별개라는 주장은 모두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 교회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ㅁ 백성들이다. 하지만 하나님나라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능동적인 통치 혹은 하나님이 왕권을  행사하며 다스리시는 나라이지 그 나라의 백성들과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나라에 속한 공동체이지 하나님나라 자체는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와 동일하지 않으며 교회보다 선행되고 더 포괄적이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또한 구별되어야 한다.  예수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나라는 사람들에게 반응하도록 도전하였고 그 도전에 반응한 제자들은 메시아이신 예수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렇게 메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된 메시아 공동체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었고 그들로 참 이스라엘인 교회가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이 세상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나라로 말미암은 필연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나라는 그 나라의 백성을 창조한다.

 

  그 다음에 생각할 것은 하나님나라와 관계속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세우거나 하나님나라 자체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증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증거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열두제자들과 70인 제자들에게 주신 임무에 의하여 설명된다. 교회의 증언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유발하고 그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하여 하나님나라로 들어오게 한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능력을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로서 역할을 한다. 1

 

 

각주 1

증인이나 도구라는 개념보다는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구현하고 드러내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실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

  1. 증인이나 도구라는 개념보다는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구현하고 드러내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실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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