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 아브라함의 믿음
Tolle Rege/갈라디아서
2013-09-19 15:37:38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을 눈 앞에 밝히 보고도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눈으로 보았다는 말이 아니라 바울은 다만 그들이 자신이 전한 선명한 십자가 복음을 들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행하신 하나님을 상기시키며 그들이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은 것인지 혹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이신칭의의 진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율법 준수를 주장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의지하는 구약을 가지고 그들의 주장이 오류임을 논증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울법이 없었고 당연히 율법의 행위로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이방인과 구별하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이다. 바울의 논지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말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의미가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언약의 백성이 된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이방인들도 언약의 백성이란 의미이다. 더 나아가 바울은 구약성경에 모든 이방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말한 것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라고 논증한다. 그레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 곧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바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 곧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으려는 자들은 모두 저주아래 있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율법의 모든 요구를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아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또 구약 성경에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을 제시하며 이것은 하나님앞에서 누구든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하는 것을 분명히 증거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를 위하여 곧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반대하는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거짓된 가르침인 것을 알게된다.
바울은 다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서 이신칭의의 논증을 이어간다. 바울은 "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창22:18)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서 아브라함의 씨는 바로 그리스도를 가르킨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특정한 후손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는다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약속을 사백삼삽년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유업,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복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서 난 것이다.
여기서 사백삼십년후에 생긴 율법은 시내산 언약에서 본격적으로 주어진 율법을 가리킬 것이다. 바울은 천하만민에게 미칠 하나님의 복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것이지 사백삼십년후에 생긴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님을 논증한다. 그렇다면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무엇인가? 바울은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약속하신 자손 곧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더하여 진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율법을 주신 목적이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죄아래 가두어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려 하신 것이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고 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하려고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약속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법은 복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까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것임을 알게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주장이 바울의 논증의 핵심인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이신칭의의 진리인데 이것은 바울이 아브라함의 역사를 가지고 논증하였듯이 신약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동일하다.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해석하는데 세례는 믿음의 표이므로 곧 그리스도와 연합의 실제적 근거는 믿음일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것이라고 비유한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하나"라는 표현은 문맥상 모두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으므로 차별이나 구별이 없이 동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것, 곧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한다. 여기서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 천하만민에게 미칠 복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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