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장 이신칭의
Tolle Rege/갈라디아서
2013-09-19 15:14:11
바울은 십사년 후에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에루살렘에 올라갔던 일을 언급한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 가운데 전파하는 복음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제시하였다. 이 때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인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바울은 할례가 이슈가 된 것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바울이 거짓 형제들이라 지칭한 자들은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인 것 같다. 바울은 이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자유를 빼앗고 종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이라고 지적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대항하여 디도에게 할례를 억지로 받지 않게 하였다는 것이고 이는 복음의 진리를 고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은 베드로가 유대인에게 복음전함을 맡은 것과 동일하다고 인정하였음을 말한다. 즉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바울에게 역사하사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과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도 자신과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다고 말한다.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고 예루살렘의 사도들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지만 나중에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자신의 이방인 사도됨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 동일한 것이며 다만 그 대상이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다를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더 나아가 자신이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한 일을 공개한다. 그것은 베드로가 안디옥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식탁교제를 하다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의식하여 식탁에서 떠난 일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과 함께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던 바나바까지도 베드로의 위선에 미혹되었다고 말한다.
앞에서 대두된 할례나 이방인과의 식탁교제 금지는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대표적인 표지였다. 베드로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의식해서 이방인 식탁교제를 그만두었고 바나바도 그리한 것으로 보아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이 당시에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간에 율법 준수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신학적 혼란과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이 일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서 바르게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모든 자 앞에서 베드로의 위선을 책망하였다고 공개한다. 바울은 이 일은 베드로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답게 살지 않고 이방인 처럼 살려고 한 것이며 또한 이방인을 억지로 유대인처럼 살게 하려 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바울은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탁교제를 그만둔 것이 유대인답게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려고 한 것이라고 책망하였는데 이 말은 좀 뜻 밖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행동은 유대교의 율법을 따라서 유대인인 답게 살려고한 것이인데 그 반대로 이야기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바울의 논리를 따르면 이방인과 식탁교제를 하는 것이 유대인답게 사는 것이라는 말이된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이 말은 유대인의 본분이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인데 베드로가 그 일을 두려워하니 유대인답게 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이런 말은 유대인 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바울이 이런 일을 공개하는 것은 베드로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것도 아나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는 것도 아니며 오직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세우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이어서 바울의 그 유명하고도 위대한 선언이 등장한다. 그것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진리의 선포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기치로 내세워진 "이신칭의" 의 진리였다.
이 위대한 진리를 선포한 후에 바울은 본격적으로 율법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이는 그리스도를 죄를 짓게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만일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스스로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으려 한다면 그렇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하여 살려함이라고 선언한다. 이 말을 바울은 다시 부연 설명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고 이는 곧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신약성경 > 갈라디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라디아서 6장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라 (0) | 2023.04.20 |
---|---|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을 따라 행하라 (0) | 2023.04.20 |
갈라디아서 4장 율법이란 무엇인가? (0) | 2023.04.20 |
갈라디아서 3장 아브라함의 믿음 (0) | 2023.04.20 |
갈라디아서 1장 다른 복음은 없다. (0) | 2023.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