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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0장 주안에서 자랑하라

고린도후서 10장 주안에서 자랑하라

Tolle Rege/고린도후서

2013-10-09 15:40:11


 

  고린도후서 10장 부터 바울의 어조가 앞장의 편지와는 다르게 엄하고 논쟁적으로 바뀐다는 이유로 신학자들은 여러가지 상상을 한다. 10-13장은 다른 편지라거나 고린도 교회의 상황 변화로 추가된 편지라거나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린도 후서가 교회에 전승된 그대로 하나의 연결된 편지로 읽으면 될 것이다.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있으면 담대하다고 바울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그의 근심을 반영하는 듯 하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떠나 있을 때 교회안에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이 일어나 교회를 요동케하는 일을 많이 당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런 자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강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싸우는 싸움이 단지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비록 육신에 행하지만 자신이 싸우는 싸움은 육신을 따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영적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싸움을 위한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 싸움은 먼저 교회 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이 무너지고 교회가 먼저 온전하게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다음에 교회밖의 대적들과의 싸움이 가능한 것이다. 내적 전쟁이 완성되어야 외적인 전쟁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내적 전쟁의 승리는 외적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 전쟁의 원리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 (하나님은)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은 교회의 복종이 온전해질 때까지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종말론 사상을 발견한다. 종말이란 그저 역사의 종말이거나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는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교회의 온전한 복종이 이루어지는 때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완성되는 때인 것이다.

 

  바울은 교회안에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이 외모만 보고 판단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한다면 사도인 자신은 더욱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바울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은 증거라는 주장인 것이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권세를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권세는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세우려고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자들은 바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대면하면 약하고 말도 시원하지 않다고 폄하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편지와 대면할 때 어조가 다른 것이 아니라 바울의 행동이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교회를 복음위에 든든히 세우려는 목적의 일관성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외모로 판단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바울은 책망하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는 자들과 견줄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자기의 척도로 자신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자들일 뿐이다. 다만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자신이 분수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이 주신 분수를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고린도에 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바울은 남이 수고한 것을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연히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수고로 세워졌으므로 바울의 자랑은 분수를 넘어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온 거짓선생들이야 말로 남이 수고한 것을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다. 다만 바울이 바라는 것은 고린도 교회가 믿음이 성장함으로써 고린도를 넘어 복음이 더욱 확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한다. 이는 자랑의 근거가 주님의 판단에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 스스로 칭찬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