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삭개오 사건
Tolle Rege/누가복음
2013-07-28 22:39:06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셨을 때 삭개오라 하는 사람을 만나셨다. 그가 세리장이요 부자라는 것을 보아 그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멸시받고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보고자 하여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갈 정도로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분명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린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아마도 그래서 큰 관심을 가진 듯하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시고 즉시 오늘 그의 집에 머물기로 작정하셨고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에게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선언하였다. 삭개오의 이런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에수님에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은 부자 관리의 태도와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삭개오가 세리장이고 부자라는 것은 그가 모은 부가 정당한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케한다. 그러므로 삭개오가 예수님에게 그런 선언을 한 것은 진정한 회개의 태도였고 재물을 포함한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 앞에 포기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진실된 태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하였다고 하시며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삭개오였지만 그가 회개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삭개오의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이 아니라 언약백성으로서 언약적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이다. 언약적 삶을 사는 일없이 언약백성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함을 삭개오는 보여준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어지는 열므나 비유는 삭개오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유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 그 종 열을 불러서 각가 은화를 맡기며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를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 귀인이 자신들의 왕됨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귀인은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왔고 은화를 맡긴 종들이 어떻게 장사하였는지 알아보았다. 대부분의 종들은 주인의 은화를 가지고 장사하여 이득을 남겼고 주인은 그들을 착한 종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런데 한 종은 장사하지 않고 은화를 그대로 싸두었다가 내놓았는데 주인은 이 종을 악한 종이라 책망하고 그가 가진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있는 종에게 주었다. 이 비유의 결론은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된 귀인은 왕됨을 거부하던 원수들을 끌어내어 죽였다. 이 비유는 삭개오가 자기의 재물에 대한 태도가 주인이 맡긴 은화를 주인의 뜻대로 사용한 착한 종의 모습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재물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주인이 맡긴 것이므로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며 삭개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 등징한 부자 관리의 경우는 주인의 재물을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은 악한 종에 해당할 것이다.열므나 비유는 사람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내적 외적인 자원들이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하나님나라의 사상을 보여준다.
이제 예루살렘에 가까운 벳바게와 베나니에 오셨을 때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준비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나귀새끼에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이적들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예수님의 에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였다. 아무도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장차 임할 비참한 멸망을 보시고 우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는 집인 하나님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책망하시며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쫒으셨다. 예수님은 날마다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셨고 백성들은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지도자들은 그를 죽이려고 꾀하였지만 백성을 두려워하여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예수님에 대하여 정당한 반응을 하는 삭개오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나라는 삭개오와 같은 자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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