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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태복음

마태복음 20장 이어진 하나님나라 교훈

마태복음 20장 이어진 하나님나라 교훈

Tolle Rege/마태복음

2012-06-19 23:10:13


  이어지는 포도원 품군의 비유는 앞에서  일어난 세가지 사건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나라의 교훈을 비유로 다시한번 계시하여 주신 것이다. 포도원 비유에서 먼저온 자들이 자기 판단으로 나중에 온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집 주인을 원망하였듯이 앞의 19장에서 등장한 바리새인들, 어린아이를 멸시한 자들, 그리고 부자청년은 모두 자기의 전제를 가지고 자기 뜻을 내세움으로 결국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하나님나라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포도원 비유는 잘 보여준다.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시면서 제자들에게 세번째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나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세베데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청원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계시에 대한 매우 왜곡된 반응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두번째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후에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나라에 대한 제자들의 오해를 반영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는 누군가가 권력을 차지하고 위세를 부리는 그런 나라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나라에서는 집권자들은 사람을 임의로 주관하고 위세를 부리지만 하나님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자이며 종이되는 자가 으뜸이 된다는 하나님나라의 교훈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난과 죽음은 바로 자신이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어지는 맹인 치유사건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제자들의 영적 소경 상태를 고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보게될 것을 예표하는 사건인 것이다.

 

[추기]  2013. 2. 7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계시적 비유이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는 이와 같으니 라고 하시며 이 비유를 하셨다. 이 비유의 결론은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성격이라고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론의 배경을 이루는 이야기에서 먼저된자는 포도원에 먼저 일하러 들어온 품꾼일 것이고 나중된 자는 뒤늦게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온 품꾼을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온 품군이 나중되었다는 것이고 나중에  일하러 들어온 품꾼은 먼저되었다는 말이된다. 그러면 왜 먼저 일하러 들어온 자가 나중이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나중에 들어온 자들에게 자기들과 동일한 품삯을 주는 주인을 원망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원망의 이유는 자신들이 적게 받아서가 아니라 늦게 온자들이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이유없이 남을 질시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은 천국에서 낮은 자, 아니면 천국에 합당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온 자들은 한 데나라온의 품삯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하였고 자신들도 그런 품삯을 받을 걸로 기대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그들에게 먼저 온 자들과 동일하게 대해주는 자비를 베풀었다. 일찍온 자들은 바로 자비를 베푼 포도원 주인을 원망한 것이다. 늦게 온 자들이 먼저 된 것은 포도원 주인의 자비 때문이고 먼저 온 자들이 나중된 것은 자신들의 악함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이 낮아지는 나라이고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알고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베풀어지는 나라이다.    천국에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예수님이 세우시는 천국의 성격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을 모르고 스스로 된 줄로 아는 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에 있는 소경이다. 소경은 차라리 자기가 소경인 줄 알고 간절히 보기를 원하지만 영적인 소경은 자기가본다고 착각하고 교만하게 남을 판단하는 자들이다.

 

[추기] 2019-11-06 17:11:38

마태복음 20장

이어지는 포도원 품꾼 비유는 19장의 결론(30절)을 설명하는 비유다. 이 비유는 경제 정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말하려는 것이다. 먼저 온 품꾼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하는 대접을 받았고 나중온 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것이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이 비유에서 먼저온 자들은  자신이 당당히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고 나중온 자들은 자신들이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19장에서 예수에게 질문한 바리새인, 부자청년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쫒았다고 생각한 베드로는 자신들이 당당힌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먼저 온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서 이런 자들은 나중될 것이다. 그런데 19장에는 나중 된 자로서 먼저될 자가 잠깐 등장했는데 그것이 13-14절에 나타났던 어린 아이들 이야기다.,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을 의미하고 그러니까 이들은 나중된 자들이다. 이미 예수는 18장에서도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했고(18장 3절) 여기서도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말한다.(20장 14절) 19장에는 어린 아이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앞 뒤로 바리새인 이야기와 부자청년 이야기가 배치되었는데 이는 나중된 자를 먼저 된 자들이 두르고 있는 구조로서 천국은 나중된  자들의 것이라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시고(17절) 세 번째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르신다. 처음에 이 말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반발했고(16장 22절) 두번째는 근심하였다. 그런데 세번째는 아예 무관심과 동문서답이었다. 이제 제자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임박한 예수가 곧 왕권을 얻을 것을 기대했고 자신들도 함께 권세를 누릴 것이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들 중 누가 더 높은 권세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분쟁하였다.(24절) 이 상황에서 예수는 다시금 천국의 중요한 성격 하나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천국에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놀라운 진리였다. 이것은 단지 역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천국의 질서 자체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집권자들은 군림하고 지배하고 권세를 부리지만(25절) 그 나라의 왕은 자기 백성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준다.(28절)  섬김을 받는 왕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왕, 자기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주는 왕, 이것이 하나님나라 왕이신 예수가 그 나라를 다스라는 통치방식이었다.  20장은 맹인 두 사람이 눈을 뜨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맹인들이 예수에게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친 것은 당연히 눈을 뜨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짐짓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묻고(32절) 그들이 눈 뜨기를 원한다는 대답을 듣고 그들을 고쳐주었다. 이 맹인 이야기는 죽음과 부활을 세번째로 이르신 예수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예수의 제자들이 영적 맹인임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에피소드로 보인다. 영적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눈 뜨기를 원치않는 예수의 제자들의 모습과 자신들이 맹인임을 알고 눈뜨기를 간절히 원하는 여리고의 두 맹인들의 모습이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