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오병이어의 기적
Tolle Rege/마태복음
2012-06-07 00:01:29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았지만 그 능력의 출처를 의심하며 배척하였다. 분봉왕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나 그 능력이 역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여기서 성경은 잠시 옥에 갇혀있던 세례요한의 죽음을 보고하는데 참으로 그 죽음은 어이가 없다. 예수님이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한 자라고 인정한, 신약시대를 연 위대한 선자자의 죽음치고는 허망하고 비참하기 짝이없다. 하나님이 세례요한을 그런 허망한 죽음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죄없는 세례 요한의 비참하고 허망한 죽음은 어쩌면 죄없으신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시고 비참하게 죽으실 죽음의 그 길을 예표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출생과 사역 그리고 죽음은 전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빈 들에 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런 이적을 행하신 것과 세례요한의 죽음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례요한은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기 사명을 다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는데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죽음은 곧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하나님니라의 본격적인 도래를 예고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죽음 직후에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나님나라의 본격적인 도래를 증거하는 표적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히 예수님이 모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을 먹이신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표적으로서의 기적인 것이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이 드러낸 하나님나라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먹을 것이 없는 빈들에서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분명히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신 구약 역사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약의 만나 역사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먹고 살던 이스라엘에게 인간 생존의 문제가 인간의 노동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임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듯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인간의 범죄이후 이마에 땀이 흘러 고생하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인간 생존의 문제가 하나님나라에서는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결코 먹는 문제에 매달려 고통스런 노동을 하게하신 것이 아니었고 이것은 순전히 인간의 범죄로 주어진 저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은 인간이 생존을 위한 고통에서 해방되고 창조목적을 따라사는 것이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의 실체임을 계시하는 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알리 없는 군중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세우려 했고 이들을 피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를 타고 건너가게 하시고 자신은 홀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기신 것이다. 이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신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단순히 물위를 걷는 신적인 권능의 나타남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는 나이다" 라고 하신 대답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사건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때 비로서 예수님을 향하여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추기] 2019-11-06 17:08:27
마태복음 14장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요한의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하고 예수께 아뢴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세례 요한은 옥에 갇힌 이후에도 제자들을 통해 예수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공생애를 시작하셨듯이 세례요한의 죽음은 이제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본격적인 단계로 돌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세례요한은 예수의 오실 길을 예비한 자로서 이제 자기 임무를 다 마치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세례 요한의 이런 퇴장은 예수의 본격적인 등장을 암시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례요한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오병이어의 이적은 이전의 이적과는 다른 차원의 이적이었다. 이전의 주된 이적이 병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는 이적이었다면 오병이어 이적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적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이적이나 오병이어 이적이나 공통점은 모두 그 이적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표적이었다. 예수가 보여준 표적들은 하나님나라는 단순히 영적이고 개인적이고 피안적인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이고 공동체적이며 현세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구약의 만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는 이스라엘의 먹고사는 문제는 오직 하나님에게 달려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듯이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로 인해 도래하는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 그 나라의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이적은 예수가 물위를 걷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했다. 지금까지 예수가 보여준 가르침이나 이적은 당시의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 아닌지 의혹을 했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세례 요한 조차도 이런 의심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물위를 걷는 예수를 보고 그들은 아마도 예수가 자신들의 메시아관을 압도하는 분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고백했던 것 같다. 비록 예수가 자신들의 메시아관과는 맞지 않았지만 메시아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 이적은 그들을 압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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