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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태복음

마태복음 12장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마태복음 12장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Tolle Rege/마태복음

2012-04-22 17:58:02


  첫번째 논쟁은 안식일에 관한 것이었다. 바라새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바리새인들의 안식일 해석의 왜곡된 단면을 보여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구약의 두가지 사례를 들어서 그들의 율법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신다. 그것은 첫째는 다윗이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배가 고플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은 것과 둘째는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에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행하던 것이었다. 이 두가지 사례는 율법의 정신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임을 보여주며 동시에 율법의 정신은 내버리고 그 껍대기만 붙들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어서 인용하신 호세아서의 예언은 사람에 대한 자비가 없는 종교적 행위는 모두 율법의 정신을 범하는 것이며 위선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대목에서 자신에 대한 자계시를 주셨는데 그것은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며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율법 해석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신 것일 것이다. 이어진 사건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편 손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올무를 놓으려고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시며 즉각적으로 그 사람을 고쳐주시었다. 예수님과의 이런 안식일 논쟁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결국 예수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를 아시고 거기를 떠나셨으나 많은 사람들이 따르므로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그들의 병을 다 고치셨으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복음서 기자는 이사야서의 첫번째 종의 노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것은 예수를 이사야가 예언한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아이심을 고백한 것이었다.

 

  두번째 논쟁은 예수님의 이적에 관한 논쟁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이적 그 자체를 부인할 수 없게되자 이적의 출처에 대하여 시비를 걸었으니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찌 그의 나라가 서겠느내고 그들의 주장의 모순됨을 지적하시면서 예수님의 이적의 출처는 바로 성령의 능력임을 갈파하셨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 것은 곧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중대한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바리새인들의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악이 가득한 연고임을 지적하신다. 그런데 이런 이적을 보고 성령을 거역한 비라새인들 중에 몇이 표적 보여주기를 구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사건이야 말로 최대의 표적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추기] 2019-11-06 17:07:25

마태복음 12장

이제 예수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 사이에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된다. 예수는 그 충돌을 피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정면승부를 하신다. 그 충돌의 첫번째 단초는 안식일 계명을 지키는 문제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는 것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는 안식일을 범했다고 지적한 바리새인들이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무죄한 자를 정죄하였다고 비판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는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큰 자이며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엄청난 선언을 했는데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도발적인 선언이었을 것이다. 이제 바리새인들은 본격적으로 예수를 고발할 빌미를 만들려고 회당에 한 쪽 손마른 사람을 보이면서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옳은가라고 묻는다. 물론 그들은 예수가 그를 고쳐줄 것을 예상하고 올무룰 놓으려는 것이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을 보면 아마도 안식일에 짐승이 구덩이에 빠진 경우에는 건져내는 것이 당시에 허용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는 안식일에 양을 구해낼 수 있다면 양보다 더욱 귀한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냐고 말하며 즉시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신다. 두번의 안식일 논쟁에서 바리새인들은 여지없이 패배하였고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 일로 인해 바리새인들은 드디어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과연 천국은 이렇게 악한 자들에게 폭력적으로 침노를 당하고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천국을 빼앗는다.(11장12절) 그러나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랐고 예수는 그들의 병을 다 고치셨지만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신다.  그러면서 마태는 예수의 이런 말과 행동이 이사야 42장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이사야42장의 요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이방에 알게 하실 것이고 이방이 그 종의 이름을 바라게 된다는 예언이다. 그러니까 마태는 예수의 이런 행동과 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할 것이지만 아직은 그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예수가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한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어지는 축사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히 대조적이었다. 무리들은 다 놀라서 말하길 이런 권능을 행하는 이런 사람이야 말로 (비록 자신들의 전통적인 메시아관을 뛰어넘기는 하지만)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가 아니냐고 말했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낸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음을 보여주는 표적이라고 말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을 거역하는 자들이요 폭력으로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악한 것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신다. 이렇게 충분한 표적을 보였건만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은 여전히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38절)  표적을 보여주었으나 그들은 그 표적을 거절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다른 표적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표적을 보고도 거절하고 다른 표적을 구하는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신다. 이제 예수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할 것이다.(40절) 이방의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고, 남방 여왕은 멀리서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왔다. 예수가 자신이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이방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암묵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이어지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나갔다가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는 비유는 천국복음을 거절하는 이스라엘의 형편이 이전보다 더욱 심각해질  것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또한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도 결국은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진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천국복음을 이스라엘은 거절했고 이방은 그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누가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인가? 그래서 예수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한 것이다.(5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