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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시편

시편 136편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편 136편 여호와께 감사하라

Tolle Rege/시편

2013-12-11 15:19:57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그 분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이시다. 시인은 바로 그 분 여호와가 누구이신지를 선포하고 있다. 그 분은 선하신 분이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선하시고 인자하시단 말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자신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러하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선하시고 인자하시다는 표현은 단순히 신적인 속성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태도를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선포적 소개를하면서 그 분에게 이스라엘이 감사하라고 요구하면서 감사의 근거가 되는 그분의 이스라엘을 향한 언약적 행동을 기술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감사는 단순히 상대방의 선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상대방의 언약적 행동에 대한 언약적 반응으로서의 감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적 반응은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적인 것이다. 의무적 자발, 혹은 자발적 의무  비로 이것이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언약적 주고받음의 정체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고대의 수많은 부족신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분은 신들중에 신이시며 주들중에 주이신 하나님이신데 바로 이 분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시다. 무엇보다도 이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물위에 펴신 분이시며 큰 빛들을 지으신 이시며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분이시다, 바로 이 분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이시다. 그런데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면서 창조행위를 하신  그 분에게 감사하라고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그 분의 인자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담긴 사상은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인 인자의 표현이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간을 위하여 천지만물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다 지으시고 맨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시고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인간에게 주신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7일에는 모든 일을 마치시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천지창조의 목표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섭리의 행동은 모두 인간, 특별히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인간을 위한 것이었고 시인은 분명히 이런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후에 인간의 구체적인 역사속에서 일하셨는데 그 현저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난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천지창조의 목적과 동일하게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었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의 역사에 간섭하시며 그 역사를 통하여 섭리하신 것도 역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인간을 향한 그 인자하심의 표현이었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내신 계시도 역시 인간을 향한 인자하심의 표현이었다. 특별히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방식으로 그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설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제 시인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인자하심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을 언급하면서 그 인자하심에 감사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보이신 인자하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출애굽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는 단순히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이 지으신 인간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보이시는 인자하심의 역사인 것이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 악한 자에게 종노릇하는 처지에 있는 인간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심을 선포하는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간이 그렇게 죄와 악에 억압되어 있는 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이요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 것이다.  두번째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행동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시고 주신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앞선 출애굽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가나안 땅은 출애굽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감이 없는 출애굽은 무의미할 것이다. 물론   출애굽이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나안 땅이 출애굽의 역사를 능가하는 궁극적인 목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 실제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신 것일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계시하는 역사일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시부터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인간에게 주셨다. 그런데 인간이 그 권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이 잃어버린 바로 그 권세를 회복시키는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없이 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땅을 더럽힌 가나안 족속을 쫒아내시고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당연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 땅에서 살게하기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창조목적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가 온 인류의    해방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듯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은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땅을 다스리라는 창조목적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엇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 시편의 마지막 구절 "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2013.10.01 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