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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역대기하

역대하 32장 히스기야의 승리와 한계

역대하 32장 히스기야의 승리와 한계

Tolle Rege/역대하

2011-12-18 20:09:18


 

  역대기 기자는 히스기야가 한 모든 일을 충성된 일이라고 요약하였다. "충성된"이라는 말 자체는 매우 언약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언약의 당사자로서 언약에 신실하게 행하였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언약의 다른 당사지인 하나님을 향하여 신실하였다는 뜻 일것 이다. 사실 히스기야가 한 일들의 목표는 결국 제사제도의 회복이었다. 그리고 제사제도야말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교제의 중심이었으며 그래서 제사제도를 회복하려는 히스기야의 행동을 역대기 기자는 충성된 일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히스기야가 이런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쳐들어 왔다. 앗수르는 당시 고대 근동의 최강자였으며 이미 북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이었는데 이제 유다를 침공하여 온 것이다. 사실 앗수르가 수년전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에 이어서 유다를 침공할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는 이 일에 충분히 대비를 하여야만 하였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왕이되자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앗수르의 침략에 대비하여 방비를 굳게하고 군사력을 기르는 일이 아니라 제사제도의 회복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히스기야의 역사의식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미 31장에서 보듯이 히스기야는 북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유월절을 함께 지키길 권유하면서 말하길  북조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여호와께서 멸망하도록 버려두신 것임을 지적하였다. 히스기야는 하나님나라 백성에게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이 달린 것이 아님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히스기야의 이러한 역사의식은 앗수르의 침략에 직면하여 백성들을 격려하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역력하게 나타난다. "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성하는 한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확신에 못지않는 확신이 앗수르에게도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들이 근동의 최강자로서 뭇 나라들을 멸망시킨 군사력에 대한  확신이었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지적한 그들과  함께하는 육신의 팔이었던 것이다. 앗수르는 자신들이 멸망시켜온 열방들의 신들이 그들의 땅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낼 수 없었듯이 그리고 북조 이스라엘도 동일한 최후를 맞이하였듯이 남조 유다도 예외가 아니라는 강한 자기확신이었다. 그래서 앗수르는 두려움이 없이 예루살렘의 하나님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사람들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것임이 나타났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의 지휘관들을 모두 죽이시므로 앗수르는 철군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철군후에 앗수르 왕은 자기나라에서 자식들의 배반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들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음을 역대기는 감추지 않고 있다. 그가 마음이 교만하여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히스기야가 한 일들은 히스기아의 초기 통치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인간 왕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궁극적 소망이 인간 왕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욍이신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