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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창세기

창세기 38장 유다

창세기 38장 유다

Tolle Rege/창세기

2011-05-18 18:27:51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기이하게 시작된다. 유다가 가나안 여인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는 것을 보면 이 즈음에 야곱의 아들들이 이미 상당히 가나안 족속에게 동화되어 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 다말도 아마 가나안 여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가나안 여인과 낳은 엘과 오난을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죽이신다. 유다가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말을 그에게 주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두 아들의 죽음이후에 셀라도 오난 처럼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해서 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마도 유다는 셀라에게 다말이 아닌 다른 여인을 아내로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유다가 다말에게 한 약속을 어기는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말의 행동은 매우 기발하고 적극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창녀로 위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로 부터 후손을 잇겠다는 기이한 발상이었다. 결국 다말의 이런 엉뚱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다말을 통하여 이어지게 된다. 이런 다말의 행동의 선악여부에 대하여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우인 베레스가 형인 세라를 밀쳐내고 먼저 나오게 됨으로 장자권을 인정받게 되는 흥미로운 출산이 다말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성경은 혹시 언약백성의 의식이 희박하여 이방여인과 동침하여 자손을 낳는 유다와   대조하여 적극적인 하나님의 언약백성 의식의 모습을 다말과 베레스를 통하여 암시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왜 유다에 대한 이 기록이 뜬금없이 요셉 이야기의 중간에 끼워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왜 성경은 유다얘기를 끼워넣고  그 다음에 다시 요셉의 얘기로 돌아갔는가 하는 점이다. 성경은 아마도 장차 요셉을 통하여 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들이 애굽으로 이주해야 하는 필요성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이렇게 눌러 살면 가나안 족속과의 혼인을 통하여 가나안에 동화되고  결국 언약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버릴 것이므로 애굽 이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이주후에 그들은 애굽인과 섞여 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굽인들은 목축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정하게 여겨 상관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목축에 적합한  고센 땅에서 고립된 삶을 통하여 언약백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번성할 수 있었단 것이다.

창세기 38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1:08:27


창세기 38장

요셉 이야기는 잠시 중단되고 유다에 관한 이야기기 등장한다. 그리고 39장에서 다시 요셉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왜 요셉 이야기의 중간에 뜬금없이 유다 이야기가 끼어든 것인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요셉 이야기는 야곱의 족보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야곱의 족보를 세우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서 요셉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동일한 목적으로 지금 유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 이야기는 지금 헤브론에 거주하고 있는 야곱의 가족들이 처한 현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삭과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아내를 취했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가나안 여인 중에서 아내를 취하고 있었고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야곱의 족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의 두 아들 엘과 오난을 죽이시고, 유대의 아내 가나안 여자도 죽게 하셨으며 결국 가나안 여자의 소생을 통해서 야곱의 족보를 세우지 않고 다말을 통해서 유다의 후사를 이어가게 하셨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가족을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옮기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은 비록 약속의 땅이었지만 적합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그곳에 머문다면 유다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가나안 족속에 동화되어 흡수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옮기시어 때가 찰 때가지 그들을 기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