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장 정죄와 저주의 포문
Tolle Rege/예레미야
2011-07-29 19:10:57
예레미야는 유다를 향한 정죄의 포문을 열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귀에 대고 크게 외치라고 하신다.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그들의 불의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따지는 것이다. 정죄와 그에 따른 저주가 반복된다. 저주의 선포에는 불순종으로 이미 멸망한 북조 이스라엘이 저주의 사례로서 인용되고 있다.
첫번째 정죄이다. 먼저 이스라엘의 죄악의 근본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신한 것이었다. 그래서 정죄의 포문이 열리면서 먼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얼마나 특별한 관계였던가를 먼저 회고한다. 애굽에서 나올때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는 마치 신혼의 사랑과도 같았고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첫 열매와도 같았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해치는 자는 다 물리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멀리하고 헛된 우상을 따라갔다. 이전에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찾지도 아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기름진 땅에서 먹으면서 그 땅을 더럽히고 역겨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제사장, 선지자, 왕들도 전부 여호와를 배반하고 바알을 부르고 무익한 것을 따랐다. 이런 짓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 민족들에게도 없는 일이다. 어느 나라가 자기의 신들을 다른 신으로 바꾼 일이 있는가?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무익한 우상과 바꾸어 버렸다. 이런 일은 하늘도 놀라고 두려워할 만한 일이다. 이스라엘에 범한 근본적인 악은 생수의 근원되신 여호와를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인 것이다.
정죄에 따른 저주의 선포이다. 북조 이스라엘이 종처럼 되어 앗수르에 끌려가고 그 성읍이 불타고 그 땅이 황폐하게 된 것이 어찌된 일인가 생가하여 보라 이는 여호와의 인도를 버리고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결국 유다의 악이 스스로 징계할 것이요 그들의 반역이 스스로 책망할 것이다. 하나님을 버림과 그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아야 한다.
두번째 정죄이다. 이스라엘의 배반이 짐승에 비유되고 있다. 멍에를 꺽고 결박을 끊으며 반항하둣이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암낙타가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 같고 들나귀가 발정하여 헐떡거리는 것이 그들의 우상 섬김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멸시하고 거절하며 아예 이방신을 사랑함으로그를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귀한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이방 포도 나무의 악한 가지가 된 것과 같으니 그들의 죄악은 아무리 잿물로 스스로 씻을 지라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두번째 정죄에 따른 저주의 선포이다. 북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붙들린 도둑처럼 수치를 당한 것을 보라. 그들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등을 돌리다가 환란을 당하여 다굽하에 구원을 구걸하던 것을 생각해 보라. 유다 성읍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환란 때 구원하겠느냐? 오히려 책망하는 선지자를 죽이고 여호와를 잊은지는 오래되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무죄하다고 하니 이제 심판이 임할 것이다. 애굽을 의지하고 앗수를 구하지만 그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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