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4장 다윗의 바른 해석
Tolle Rege/사무엘상
2011-07-08 17:19:01
사울은 블레셋을 좇다가 돌아오자 마자 다윗을 잡으러 간다. 사울은 삼천명을 거느리고 다윗이 있는 엔게디 광야로 간다. 온 이스라엘이 사울을 두려워 하여 다윗이 가는 곳 마다 그의 거처를 알려주므로 다윗은 숨을 곳이 없는 절박한 지경이다.여기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 기회는 여호와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신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고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한다.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었는데 이 행위도 다윗에게는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전혀 다른 해석의 문제를 만난다. 다윗의 부하들의 해석과 다윗의 해석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다윗의 부하들의 해석은 상황에 충실한 해석이었다. 다윗을 까닭없이 죽이려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은 하나님이 그를 다윗의 손에 넘긴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해석은 매우 원리적이었다,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사울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다윗은 눈에 보이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따라서 판단한 것이다. 다윗의 부하들이 자기 소견대로 행하였다면 다윗은 자기 소견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자기 소견대로 행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 보이는 상황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고 그 상황 자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히브러서는 믿음을 정의하길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으로 행한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동안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고 하나님이 뜻을 보이시면 즉시 순종하였다. 그는 자신이 억울하게 쫓겨 다니고 있지만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구하였던 것으로 보아서 다윗의 자기가 받는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에게 한 말 같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하여 사울에게 보복하시려니와 자신의 손으로는 왕을 해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베어낸 사울의 겉 옷자락을 내 보이며 자신에게 악이나 죄과가 없음을 증명하려고 하였다.자기는 결코 사울 왕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다윗이 궁극적으로 의지한 것은 이런 자신의 호소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시어자신의 사정을 살피고 억울함을 풀어주시며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시길 간구하였다.
다윗의 호소에 대한 사울의 반응은 그 후의 행동으로 보아서 일시적이었지만 그의 말에서 보듯이 사울은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 나라가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설 것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권력욕이란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게된다.
[추기] 2019-11-03 18:27:51
사무엘상 24-26장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는 중에 뒤를 보려고 굴에 들어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굴의 안쪽 깊은 곳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있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부하들은 드디어 하나님이 내가 너의 원수를 너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 하신 말씀이 이뤄질 바로 그 날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타일러 말한다. 내가 감히 손을 들어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치겠느냐? 주님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주시길 바란다. 왕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만 자르고 손을 대지 않는다. 이 일로 인해 사울은 다윗이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그의 손에서 굳게 될 것을 자신도 안다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욕에 이미 눈이 먼 사울은 다윗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윗이 사울을 살려준 일은 이번 만이 아니었다. 다윗을 추격하던 중 사울이 진에서 잠이 들었는데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진에 들어와도 모를 정도로 사울의 군사들이 잠에 빠져 있었다. 아비새는 이 상황을 보고 하나님이 오늘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었으니 당장 사울을 죽이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윗은 그 누구도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죽였다가는 벌을 면치 못한다고 만류한다. 다윗은 주님이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내게 금하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누가보더라고 두번이나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손을 들어 사울을 죽이는 일을 거부했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해석했지만 다윗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윗은 눈에 보이는 상황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았고 상황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이야기 중간에 나발 이야기가 끼어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듯이 나발 이야기가 중간에 끼어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나발 이야기가 그 중간에 놓인 것은 분명 다윗이 사울을 살려준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의도적인 배치로 보인다. 나발 사건은 다윗이 배은망덕한 나발을 죽여 복수하려다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설득으로 포기한다는 이야기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후회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란다고 말하며 나발에게 복수하는 일을 만류한다. 다윗은 그 말을 듣고 내가 오늘 사람을 죽이거나 나의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도록 지켜주었다고 감사하며 복수를 포기한다. 다윗은 나발에게 복수하는 일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합당하지 않음을 깨닫고 돌이킨다. 다윗의 이런 모습은 사울과 매우 대조적이다. 자기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과 반대로 다윗은 자기 권력을 사용하여 사사로운 복수를 하려던 일을 포기한다. 이렇게 사울을 살려주는 이야기 중간에 놓여진 나발 이야기는 권력을 사사로이 사용하는 사울과 그렇지 않은 다윗의 대조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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