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할례를 요구하심
Tolle Rege/창세기
2011-05-07 15:52:52
이스마엘을 낳고 무려 14년 만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신다. 그런데 첫 말씀이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흠없이(Blameless) 행하라" 는 것이었다.지금까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인 약속을 하셨지 아브람함에게 무엇을 요구하신 적이 없는데 이번엔 하나님은 아브람편에서 해야 할 것을 제시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신이라는 선언과 함께 주어진 것이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서 흠없이 행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앞의 선언과 뒤의 명령은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 내적관계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신이시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서 흠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전능이 이나라 언약적 표현이다. 즉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데 전능하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실 것이므로 아브람도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철저히 믿어야 한다는 제시인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즉 아브람이 철저히 믿어야만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식으로,,, 사람의 믿음에 하나님의 실행 여부가 달린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임을 우린 여기서 보개된다. 즉 하나님은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행하신다. 그러나 그 이행이 일반적이고 일방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리 그 약속을 믿는 사람, 곧 순종하는 자를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17장에서 하나님은 15장에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확증해 주신다. 그것은 역시 씨의 약속이고 또한 땅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내용은 정확하게 하나님나라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하나님은 씨의 번성을 약속하신 후 그 다음에 그 씨와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 언약의 당사자는 아브람만이 아니라 혹은 아브람을 대표로 세우는 언약이 아니라 아브람뿐만 아니라 아브람의 후손과도 세우는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언약의 내용이 계시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일관되게 강조되는 것이다., 그 언약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 이 언약선언 이후에 나오는 것이 땅의 약속이다 이러한 구조를 해석해 보면 우선 하나님은 씨의 번성을 약속하시고 번성된 씨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통해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 씨가 그 뜻에 순종하여 그 땅을 정복하는" 하나님나라의 형성 공식인 것이다.
17장은 아무래도 독특한 장인 것 같다. 하나님은 이제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당사자로서 행할 언약적 의무를 요구하신다. 그것이 바로 할례였다. 할례를 받는 것이 언약을 지키는 것이며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할례를 받지 않으면 그것은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백성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주어진다. 결국 할례는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에 대응하는 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에 상응하는 인간편의 언약적 행동으로서 요구되는 것이다. 이제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음을 확인하는 표징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할례의 대상자가 아브람과 그 자손만이 아니고 아브람의 집에 속한 모든 자 즉 집에서 생장한 자와 이방에서 돈으로 산 자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그들이 모두 하나님과 언약의 당사자로 인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 이것은 구약 초기부터 언약관계는 혈통적 차원을 넘어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추기 2011. 11. 12 토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는데 아브람에게는 열국의 아비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이 이름을 사래에게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사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씨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충만하게 이루어질 것을 예표하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하실 것을 다시 말씀하신 후 이 모든 것의 긍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온 땅을 치지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면서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은 그 백성의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다시금 보게된다. 그러므로 할례는 언약의 준수와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지 않는 것 곧 불순종은 언약의 배반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반응은 15장에서 보인 믿음의 태도가 아니라 불신앙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이 백세이고 사라는 구십세로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시고 그 이름도 이삭이라고 미리 지어주셨으며 사라가 이삭을 낳을 시기도 일년 후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떠나 올라가신 후 아브라함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집 사람 모두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시에 대한 즉각적인 믿음의 반응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무너진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것이다.
추기 2011. 11. 19
이스마엘 사건이후 침묵하신 하나님은 무려 13년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는데 이때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일종의 책망조인 것 같고 그것은 이스마엘 사건과 관련된 것 같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흠없이 행하라)" 는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발생한 이스마엘 사건에 대한 책망의 말씀일 것이다. 사라가 잉태할 조짐이 없음을 보고 사라 대신에 하갈을 택한 아브람의 행동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결여를 보여준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이스마엘 사건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흠이 있는 행동이 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생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며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과 신뢰를 아브라함에게 가르치시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일찌기 선악과 금령을 통하여 아담에게 가르치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다시금 상기시키신다. 그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신 피의 언약이었던 것이며 절대 불변하며 반드시 성취될 언약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언약은 이브라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대대 후손과도 세운 영원한 언약임을 말씀하시고 그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아브라함 대대후손의 하나님이 되실 것임을 천명하신다.
선악과 금령에 대한 아담의 실패가 아담만의 실패가 아니고 아담 대대후손의 실패이었던 것과 같은 원리로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 대대후손에게도 해당되는 영원한 언약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대대 후손에게 하신 언약은 아담의 실패로 인해 아담의 대대후손에게 미친 죄악의 문제를 하나님이 스스로 떠안고 해결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래서 이 언약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람과 대대후손의 하나님이 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약속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의 후손이 이 언약에 참여하기를 요구하시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남자는 다 할례를 받는 것이다. 표피를 베는 것 이것이 언약에 참여하는 상징적인 행동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쪼갠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가시며 피의 맹세를 하신 것처럼 아브람과 그의 후손편에서의 일종의 피의 맹세인 것이다. 그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히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피의 맹세를 하신 것이라면 할례는 아브람과 그의 후손이 영원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백성이 되겠다는 피의 맹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중에서 끊어질 것이니 이는 언약을 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추기 2011. 11. 20
아브람에게 13년만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은 역시 씨와 땅의 약속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15장에 나타난 언약의 내용이 씨와 땅의 약속이라면 17장에서는 그 언약의 내용이 아브람과 아브람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별도의 언약이 추가된 것이 아니라 씨와 땅의 약속이 지향하는 목적이 바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약의 내용을 말씀하신 후 아브람과 그 후손에게 대대로 언약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대대 후손과도 맺으시는 언약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브람과 그 후손이 지켜야 하는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이 하신 씨와 땅의 약속을 신뢰하는 일이고 궁극적으로는 여호와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고 순종일 것인데 이것이 없다면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결국 언약은 이루어지지 않게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언약이 무효가 되거나 인간의 믿음에 의존한다는 말은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을 지킴 곧 믿음으로 그 약속을 수납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인 자신이 피의 서약을 하신 것 처럼 그에 상응하는 피의 서약을 아브람과 그 후손에게 요구하신 것인데 그것이 바로 할례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표징이 되는 것이며 만일 할례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언약을 배반한 행위로 간주되어 언약백성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창세기 17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0:51:18
창세기 17장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브람이 99세 때에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의 의미는 아마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전능하신 분이시므로 아브람의 믿음도 하나님 앞에 완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듯하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약속을 굳게 붙드는 사람의 신실함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씨와 땅의 두가지 약속을 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여기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영원히 아브람과 아브람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동시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씨와 땅의 약속은 그 약속의 성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의 씨가 그 약속의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사람의 창조 목적과 일치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통해서 형성하실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 그리고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받을 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이고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에게 미칠 복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 및 그의 후손과 더불어 세우시려는 언약은 바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 언약에서 하나님 편에서의 일방적인 약속만이 나타났는데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언약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하나님 편에서만 약속을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사람도 약속을 지키라는 것인데 사람이 지켜야 할 약속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 편에서 지켜야할 언약의 표로서 할례를 명하셨다. 그러니까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및 그의 후손과 세우는 언약에 참여하는 언약의 표징으로서 그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렇게 하여 언약은 하나님 편에서의 약속과 사람 편에서의 믿음(약속에 대한)으로 매우 쌍방적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언약의 표징으로서 하필 할례라는 형식을 요구하신 것인가? 그것은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을 확증하시려고 친히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심으로써 피의 서약을 하신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15장에서 하나님이 피의 서약을 하신 것에 대응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도 할례라는 피흘리는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피의 서약에 대응하여 피의 서약으로 참여하라는 요구를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루어진 언약은 피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진 엄중한 피의 서약인 것이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 언약을 배반하면 생명을 잃게 될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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