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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열왕기하의 내러티브

열왕기하의 내러티브

2019-04-20 23:50:28


열왕기하 1-3장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지만 그는 고작 두 해 동안만 왕위에 있었다.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는데 사절단을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내어 자기 병이 나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게 하였다. 주님은 엘리야를 보내 아하시야의 사절단을 막아서서 이렇게 책망하게 하셨다.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다니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그리고 아하시야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선포되었다. 아하시야의 이런 행동은 당시의 이스라엘이 얼마나 멀리 하나님을 떠난 상태인지를 잘 보여준다. 주님이 이렇게 엘리야를 보내어 그들을 책망하고 이하시야를 심판하시는 이유는 주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은 주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주님은 그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 두셨을 것이다. 이어서 엘리야가 떠나고 그 뒤를 이어 엘리사가 예언사역을 계승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아합 이후에도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언약적 자비를 아직 거두지 않고 계심을 보여준다. 주님은 엘리야를 뒤이어 예언사역을 충실하게 감당할 엘리사를 준비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어둡고 악한 시대에 주님은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위대한 예언자를 보내셨고 이들의 탁월한 예언사역을 통해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려는 언약적 자비를 나타나셨다. 엘라야와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놀라운 이적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주님의 능력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심을 분명하게 보고 경험하였다. 아하시야가 죽은 후 아합의 아들 요람이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렸다. 그는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 아합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합이 만든 바알의 우상들을 철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역사상 어느 누구도 여로보암의 죄악에서 벗어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여로보암의 죄악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구덩이에 빠뜨린 엄청난 죄악이었다. 그는 북조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었던 만큼 그가 저지른 죄악은 이스라엘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무서운 죄악이었다.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였으므로 요람은 모압과 전쟁을 준비하면서 여호사밧에게 함께 모압을 치러 올라가자고 제안을 한다. 이번에도 여호사밧은 아합 때와 마찬가지로 흔쾌하게 허락을 하는데 아마도 여호사밧은 북조 이스라엘과 평화로운 관계를 도모한 최초의 유다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이런 평화외교는 그 의도 자체는 선했는지 모르지만 북조와 한 배를 타는데 까지 분별없이 나감으로써 이후 남조 유다에 엄처난 해악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에돔의 광야 길로 행군하던 남북조 연합군은 마실 물이 떨어져 싸우기도 전에 광야에서 전멸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엘리사의 도움으로 그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모압과의 전쟁에서도 크게 승리하게 된다. 엘리사를 통해 일어난 이 큰 기적은 주님이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기회를 주며 자비를 베풀고 계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열왕기하 4-7장

  엘리사가 놀라운 이적을 헹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빚을 못갚아 두 아들이 노예로 팔려가게 된 가난한 과부를 도운 일,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준 일, 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보리빵 스무개로 먹인 일 등이 그것인데, 이런 일들은 주님의 능력이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심을 분명하게 보여준 일들이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 들었을 것이다. 결국 그런 일들은 주님이 참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부인할 수 없게 드러내는 계시적 사건이었다. 이어서 시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고침을 받는 이야기기 등장한다.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를 찾았는데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번 씻으면 몸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크게 화를 내지만 그의 부하들의 설득으로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번 몸을 씻고 몸이 깨끗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이적을 체험한 나아만은 비록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지만 자신이 부득이 자기 상전이 섬기는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이 자신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많은 이적을 체험한 이스라엘보다 나아만은 더 회개에 가까운 겸비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주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이방인도 그렇게 겸손하게 태도를 바꾸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은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이적을 체험하고도 회개하지 않는다. 다시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서도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주님의 능력으로 시리아 군대는 눈이 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물러간다. 다시 또 시리아가 쳐들어 왔는데, 이번에는 포위를 당하여 사마리아 성 안에는 먹거리가 떨어져 사람들이 자기 아이를 잡어먹을 정도의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다. 이때에도 엘리야는 시리아 군대가 병거소리와 군마 소리와 큰 군대가 쳐들어 오는 소리를 듣게 하심으로 놀라서 도망가게 만든다. 엘리사를 통해 두번이나 이스라엘을 시리아의 침략으로 부터 구원하신 주님의 능력을 온 이스라엘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히 보고 체험하였다. 이는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이스라엘로 하여금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언약적 자비가 아닐 수 없다. 

 

열왕기하 8-10장

 이제 주님의 자비의 시간은 지나갔고 본격적인 심판이 시작된다. 주님이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대로 시리아왕 벤하닷이 죽고 하사엘이 시리아왕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엘리사는 장치 하사엘이 이스라엘에게 저지를 악한 일을 내다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다에는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여호람이 왕이 되었는데 그는 아합 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아합가문이 한대로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은 아합의 딸을 자기 아들 여호람과 결혼을 시킴으로 아예 북조 이스라엘과 한 배를 타고 만 것이다. 여호사밧은 북조 이스라엘과 평화를 추구한 왕이었는데 그는 아마도 아예 북조와 혼인관계를 맺음으로 그 평화관계를 더 견고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남조 유다에도 잇달아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어서 예후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오므리 왕조를 끝장내고 만다. 엘리사는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 한 사람을 시켜 예후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주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음을 전하라고 명한다. 주님은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면서 아합의 가문을 진멸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이 만들라고 명하신다. 예후는 즉시 반란을 일으켜 요람을 활로 쏘아 죽이고 이세벨 역시  잔혹하게 죽인다. 이어서 예후는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아합의 아들 일흔명을 모두 죽이고 이스르엘에 남아있는 아합 가문에 속한 자들을 모두 쳐죽였으며 또 아합 가문의 관리들과 친지들과 제사장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그리고 예후는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있는 아합의 지지자들을 모두 죽였는데,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아가 예후는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불러모아 죽이고 바알의 우상들을 모두 깨뜨리고 바알의 신전을 헐어서 변소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예후는 오므리 왕조를 모두 진멸하고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로부터 쓸어 내었다. 여로보암 이후 처음으로 주님이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이 예후였다. 예후에게 여로보암으로 인해 구렁텅이에 빠진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과연 예후는 오므리 왕조의 누적된 죄악을 제거하고 바알종교를 이스라엘에서 쓸어버리는 과감한 개혁을 하였다. 그러나 예후는 베델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를 섬겨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여로보암의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지는 못했다.그러나 주님은 예후가 주님이 명하신 일을 바르게 잘 처리함을 인정하시고 예후의 가문이 사 대 자손까지 이스라엘 왕위를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후는 사마리아에서 28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예후는 요람을 문병왔던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인 후에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이미 살해된 유다 아하시와 왕의 친족들을 만나게 되는데, 마흔두명이나 되는 그들을 한 사람도 살리지 않고 죽였다. 유다왕 아하시야가 죽임을 당하고 그의 친족이 모두 몰살을 당한 일은 주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을 넘어 아합과 관련된 유다에도 내렸음을 보여준다. 아합과 혼인관계를 맺은 여호사밧의 실책으로 인해 유다의 왕권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의 종 다윗을 생각하셔서 다윗과 그의 자손들에게서 왕조의 등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신다.

 

열왕기하 11-12장

  아하시야가 죽자 아달랴는 다른 왕족들을 다 죽이고 유다의 왕권을 차지하고 무려 6년동안 다스렸다. 일시적으로나마 다윗의 왕권이 단절된 것이다. 다행히 어린 왕자 요아스가 살아남았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아달랴는 처형되고 요아스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왕권을 되찾았다.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했다. 그는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고 바알의 신전을 부수고 그 제사장을 죽였다. 아달랴가 다스리는 동안 남조 유다에도 바알 신전이 세워지고 바알을 숭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아스는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그의 가르침을 받아서 바르게 다스렸다. 요아스가 성전을 보수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아달랴가 성전을 부수고 성물까지 꺼내다가 바알에게 바쳤기 때문에 성전보수를 서둘러야만 했기 때문이다.(참고 역대하24장7절)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지도자들은 왕을 부추겨서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게 만들었다. 이는 여호야다가 아달랴의 악습을 개혁했지만 이미 유다 백성들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는 습관이 깊이 들어버렸음을 보여준다. 주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았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백성들을 책망하자 백성들은 그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왕으로 하여금 스가랴를 죽이게 만들었다.(역대하 24장 19-21절) 이어지는 시리아 군대의 침략은 유다백성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이었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을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으로 가져갔다. 시리아 군대가 요아스에게 심한 타격을 입히고 돌아간 후에 요아스의 신복들은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을 죽인 일에 반감을 품고 역모를 꾸며 요아스를 죽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먀샤가 유다의 왕을 이어감으로 다윗의 왕권은 끊어지지 않았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혼인동맹을 맺은 일로 인해 유다의 왕권은 끊어질 뻔 했고 아하시야에 이어 요아스도 죽임을 당하는, 유다에 일찍이 유래가 없던 일이 벌어졌다.

 

열왕기하 13장

 북조에서는 예후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사라미아를 17년 동안 다스렸다. 그도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주님은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시리아의 하사엘 왕의 손에 넘기셨고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억압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여호아하스가 주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니 주님은 이스라엘에 구원자를 보내어 시리아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장막에서 편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았고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도 그냥 세워두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주님은 한편으로는 심판을 행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비를 베푸시는데 이 두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주님의 행동은 모두 주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나온 것이다. 주님은 늘 이스라엘을 향하여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한편으로 심판도 행하시고 다른 한편으로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이렇게 주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시지만 이스라엘은 번번히 언약을 떠나 주님을 배반했다. 여호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스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16년동안 다스렸다. 이렇게 주님은 예후 가문에게 기회를 주시고 여로보암의 죄악에서 돌이킬 시간을 허락하셨지만 여호아스 역시 주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모든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고 그 길을 그대로 걸었다. 드디어 엘리사가 죽고 주님은 엘리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푸심으로 시리아에게 세번이나 승리하게 하셨다. 그래서 여호아스는 세 번이나 벤하닷을 쳐서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도로 되찾았다. 엘리사의 죽음은 이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주님의 자비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님은 아합 시대 이후로 위대한 두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내시어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은 바알이 아니고 여호와이심을 강력하게 증거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돌이키지 않음으로 주님이 주신 은혜의 시간을 다 놓쳐버리고 말았다. 엘리야의 뒤를 이어 엘리사가 준비되었지만 이제 엘리사의 뒤를 이을 위대한 예언자는 더이상 준비되지 않는다. 

 

열왕기하 14장

 남조 유다에서는 요아스의 뒤를 이어 아마샤가 유다 왕이 되어 에루살렘에서 29년동안 다스렸다. 여전히 산당은 제거되지 않고 백성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고 있었다. 아마사가 유다왕으로 다스릴 때 북조의 여호와스 왕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역대하 25장에 의하면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을 앞두고 은 백달란트를 주고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용감한 군인 십만 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예언자가 아마샤의 행위가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므로  전쟁에서 반드시 패할 것을 경고하자 아마샤는 마지못해 에브라임에서 온 군인들을 돌려보낸다. 그런데 불만을 품은 북 이스라엘 군인들은 아마샤가 에돔과 전쟁을 하러 나간 사이에 유다의 여러 마을을 약탈하고 사람을 삼천명이나 죽이고 물건도 많이 탈취했다. 아마도 아마샤는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한 듯하다. 전쟁의 결과 유다 군대는 대패하였고 아마샤는 사로잡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창고에 있는 금과 은과 모든 그릇도 약탈당했다.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했지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아마샤가 북 이스라엘에게 크게 패하고 사로잡히기까지 하다가 결국 반란이 일어나 죽임을 당한 이유가 무엇일까? 역대하 25장에 의하면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일 자손의 신상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모시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했다. 이 일로 주님은 크게 진노하여 예언자를 보내어 책망하셨지만 아마샤는 듣지 않았다. 결국 아마샤에게 일어난 일들은 이로 인한 주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한다. 이리하여 아하시야, 요아스에 이어 아마사까지 유다 왕 3대가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찌기 남왕국에서는 없던 일들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죽임을 당한 이 세 명의 유다왕들의 공통점은 악행을 행하고 우상을 섬겼다는 점인데 이는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혼인동맹을 맺음으로 바알을 섬기는 악습에 유다가 물들었음 보여준다. 여호사밧으로 인해 유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열왕기하 15장

 북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41년을 다스렸다. 여로보암도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본받았다. 이 당시에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국경을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하는 위세를 떨쳤다. 이는 주님이 이스라엘의 고난이 너무 심하여 매인 사람이나 자유로운 사람이나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아 이스라엘을 돕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셨기에 여로보암을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주님은 아직은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버리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기에 여전히 예후 가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점점 은혜의 시간은 지나가고 심판이 임박하고 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스가랴가 왕이 되었지만 그는 고작 여섯 달 동안만 다스렸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역모를 꾀하여 백성들 앞에서 스가랴를 죽이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예후 가문은 종말을 맞이하고 예후 가문에게 주어졌던 기회도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후 이스라엘은 급속하게 멸망을 향해 치닫게된다. 샬룸이 왕이 되고 한 달만에 므나헴이 살룸을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10년동안 다스렸다. 므나헴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일생동안 떠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본받았다.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올라왔을 때, 므나헴은 은 천달란트를 바치고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었다.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고작 두 해가 지나자, 그의 부관인 베가가 왕을 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20년 동안 다스렸다. 베가 역시 주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본받았다. 베가 왕 시대에 앗시리아가 다시 쳐들어와 이스라엘의 북쪽 지방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앗시리아로 사로잡아 갔다.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이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다.

 

열왕기하 16장

  반란으로 아마샤가 죽임을 당한 후에 유다 온 백성은 아사랴(역대하: 웃시야)를 왕으로 세워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뒤를 잇게 하였다. (열왕기하14장 21절) 북조 이스라엘과는 달리 남조 유다에서는 반란이 일어나도 다윗의 왕권이 그의 후손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물론 주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아사랴는 예루살렘에서 무려 52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다스렸다. 물론 산당은 여전히 제거되지 못했고 백성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했다.(열왕기하 15장4절) 그런데 주님께서 아마샤 왕을 치심으로 그는 죽을 때까지 나병환자가 가 되어 격리된 궁에서 살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렸다. 역대하 26장에 의하면 웃사야 왕은 힘이 세어지면서 교만하게 되더니 드디어 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분향단에다가 분향을 하려고 그리로 들어간 것이다. 제사장들이 왕을 막았지만 웃시야는 제사장들에게 화를 내었고 이로 인해 주님이 치심으로 나병에 걸리게 되었다. 요담은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다스렸는데 여전히 산당은 제거되지 못하고 백성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하였다. 요담의 뒤를 이어 아하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6년을 다스렸는데 아하스는 이스라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러갔고 심지어 자기 아들을 불로 지나가게 하는 이방의 악한 행습을 본받았다. 시라아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오자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드글랏베레셀 왕에게 전령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아하스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뭋 창고에서 금과 은을 모두 꺼내어 앗시리아 왕에게 선물로 보냈다. 앗시리아의 도움으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공격을 모면한 아하스는 앗시리아 왕을 만나려고 다메섹으로 갔다. 거기서 아하스 왕은 다메섹에 있는 앗시리아 신전의 제단을 보고 그것을 본떠 제단을 만들어 주님의 성전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주님의 성전에 있던 놋제단을 치우고 새 제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아마도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강력한 힘이 그들이 섬기는 신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앗시리아의 제단을 본떠 성전의 제단을 바꾸었을 것이다.

 

열왕기하 17장

  북 이스라엘이 마지막 왕 호세아는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9년을 다스렸는데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왕이 쳐들어 오자 호세아는 그에게 항복하고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 호세아 왕이 이집트에 사절을 보내어 앗시리아를 배반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자 살만에셀 왕은 호세아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앗시리아 왕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시리아로 끌고가서 앗시리아의 여러 성읍에 이주시켰다. 이로써 드디어 북조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그 백성들은 주님이 주신 땅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멸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열왕기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길게 기술하고 있다. "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며, 또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면전에서 내쫒으신 이방 나라들의 관습과, 이스라엘 역대 왕들이 잘못한 것을, 그들이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이신 하나님을 거역하여 온 성읍 안에 그들 스스로 산당을 세웠으며 주님이 내쫒으신 이방나라들 처럼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여 주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악한 일을 하였으며 주님이 그들에게 금하신 우상숭배를 하였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여러 예언자와 선견자를 보내어 충고하시고 그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에게 준 모든 율법에 따라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끝네 듣지 않았고 주님이신 그들의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던 그들의 조상들처럼 완고하였다. 그리고 주님의 율례와 주님이 조상들과 세우신 언약과 그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을 거절하고 헛된 것에 미혹되었으며 주님이 본받지 말라고 명하신 이방나라들을 본받았다. 또 그들은 주님의 명령을 내버리고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세우고 하늘에 별들에게 절하며 바알을 섬겼다. 그들은 또한 자기 자녀들을 불로 지나가게 하고 복술을 하고 주문도 외우며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내쫒으시고, 그들을 징계하여 침략자들의 손에 넘겨 주셔서, 마침내는 그들을 주님의 면전에서 내쫒기까지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을 사마리아에서 쫒아낸 앗시리아 왕은 앗시리아 성읍의 주민들을 데려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에 살게하였다. 제사장 한 명이 남아서 그들에게 주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들은 주님을 공경하기도 하면서도 제각기 자기들의 신들을 만들어 섬겼다. 그들 가운데 주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들은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주하여 온 민족들은 한편으로는 주님을 경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어만든 우상을 섬겼다. 

 

열왕기하 18-19장

 히스기야는 유다 왕 가운데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고 평가될 만큼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수행했다. 그는 남조 유다의 고질병이었던 산당을 헐어버렸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리고 모세가 만든 구리뱀도 부수어 버렸다. 열왕기 기자는 히스기야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며 주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한 왕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히스가야는 앗시리아가 북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을 보았지만 앗시리아 왕에게 반기를 들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앗시리야가 북조를 멸망시킨지 8년 후에 남조 유다를 침략할 때 발생했다. 히스기야 왕 제 14년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요새화된 유다의 모든 성읍을 공격했다.그러자 히스기야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창고에 있는 금은을 산헤립에게 뇌물로 바쳐 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히스기야의 뇌물을 받고도 물러가지 않고 유다의 항복을 요구하였다. 항복하는 길외에는 피할 길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신하들을 예언자 이사야에게 보내어 남조 유다가 구원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이사야는 주님이 앗시리아 군대를 돌아가게 할 것이니 두려워말라고 하였다. 이사야로 부터 주님의 대답을 들은 히스기야는 크게 힘을 얻었고 성전에 들어가 주님이 유다를 앗사리아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셔서 세상의 모든 나라가 오직 주님만이 홀로 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달라고 간곡하게 기도하였다. 주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앗시리아가 유다의 도성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공격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 밤에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명울 쳐죽었고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니느웨 도성으로 돌아가서 자기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주님이 이렇게 유다를 구원하신 일을 히스기야의 믿음을 보아서가 아니라 앗수르가 모욕한 주님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종 다윗을 보아서 그렇게 하셨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열왕기하 20장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 여기서 그 무렵이 언제인지를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기록된 순서대로 본다면 그 무렵은 주님이 유다를 구원하심으로 앗시리아가 물러간 이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맥을 잘 살펴보면 그런 해석은 부자연스럽다.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을 때 이사야 에언자가 와서 히스기야에게 그 병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이는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징계로 인한 것임을 암시한다. 히스기야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에게 긴곡히 기도하였고 주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히스기야를 고쳐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주님은 히스기야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켜주실 것이며 히스기야와 에루살렘 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여, 이 도성을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든 시기는 아직 앗시리아가 물러가지 않고 유다가 앗사리아의 위협 가운데 있을 때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때는 아마도 히스기야가 앗시리아 왕에게 뇌물을 바쳐서 위기를 벗아나려고 하다고 실패한 때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든 이유는 히스기야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뇌물을 보내 앗시리아를 물러가게 하려고 한 행동에 대한 주님의 징계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주님은  남조 유다를 앗시리아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약속이 히스기야의 믿음을 보아서가 아니라 주님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종 다윗을 보아서 이 도성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왕이 친서와 예물을 히스기야에게 보내왔다. 바벨론이 이렇게 한 것은 앗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남조 유다와의 군사적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히스기야 역시 바벨론과의 군사 협력이 앗사리아의 위협에 대처하는데 필요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크게 환영하고 궁궐과 나라 안에 있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보여주었다. 죽을 병에서 나음을 받았지만 히스기야는 여전히 주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바벨론과의 군사 협력을 의지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스기야는 앗시리아가 공격하기 전에는 주님만 의지했지만 , 정작 앗시리아의 엄청난 공격에 직면하자 주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뇌물이나 바벨론과의 군사 협력을 의지하여 앗시리아의 위협에 대처하려고 했다. 결국 이사야를 통해 남조 유다의 멸망이 예언되었다. 히스기야라는 위대한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남조 유다의 멸망이 그의 불신앙으로 인해 예고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일은 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고도 히스기야는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들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유다의 멸망이 예고되었던 일은 주님이 히스기야를 징계하고 불신앙에서 돌이키게 하시려던 것이었는데, 그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열왕기하 21장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의 멸망이 예고되었다면 므낫세 시대에 유다의 멸망은 확정되고 말았다. 역대 어느 유다 왕보다도 악명이 높은 므낫세로 인해 이제 유다의 멸망은 돌아킬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으며 아합이 한 것처럼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별을 숭배하고 섬겼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손수 새겨 만든 아세라 목상을 성전 안에 세웠다. 이리하여 므낫세는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의 면전에서 멸망시킨 그 이방 민족들보다 더 악한 일을 하도록 백성을 인도하였다. 이런 므낫세가 무려 쉰다섯 해동안이나 유다를 다스렸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므낫세를 이어 아몬이 예루살렘에서 두 해동안 다스렸는데 그 역시 아버지 므낫세처럼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고 주 하나님을 잊고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아몬 왕의 신하들이 그를 반역하고 궁 안에 있는 왕을 죽이고 아몬의 뒤를 이어서 그의 아들 요시아를 왕으로 삼았다. 

 

열왕기하 22-23장

 요시아는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그는 쇠락한 유다를 회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 왕이었다. 먼저 그는 므낫세와 아몬이 다스린 오랜 기간동안에 훼손된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었고 왕은 그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는 애통하여 자기의 옷을 찢었다. 원래 유다의 왕은 이 율법책을 가까이 두고 늘 읽으며 그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야 했는데 그동안 율법책은 성전 구석에서 먼지에 쌓여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요시아는 자기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지키도록 규정된 이 기록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주님이 유다에게 크게 진노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여 선지자 훌다는 그 책에 기록된대로 주님이 유다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다만 그 재앙이 요시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리지 않고 유예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유다에 재앙이 내릴 것이란 예언들 듣고도 요시아는 개혁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님의 언약적 자비하심을 기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시아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소집하고 성전으로 올라가 성전에서 발견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크게 읽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게 하였다. 그리고 왕은 주님을 따를 것과 온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주님 앞에서 세웠고 온 백성도 그 언약에 동참했다. 그리고 요시아는 성전 안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별을 섬기려고 만든 기구들을 모두 꺼내어 불태웠고 또 산당들을 모두 허물고 산당에서 분향하려고 임명한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내쫒았다. 나아가 요시아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베델에 만든 제단과 산당도 허물고 아세라 목상을 불태웠으며 여로보암 시대에 그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들의 뼈를 무덤에서 꺼내어 제단위에 모아놓고 불태움으로써 한때 하나님의 사람이 이 일을 두고 예언한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였다. 이어서 요시아는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준비하였는데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로부터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도 이와 같은 유월절을 지킨 일은 없었다. 열왕기 기자는 이와 같이 마음을 기울이고 힘을 다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주님께로 돌아간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주님은 유다에 쏟으시려는 그 불타는 진노를 거두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므낫세가 주님을 너무나도 격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외면하듯이 유다를 외면하실 것이며 예루살렘 성과 성전도 모두 버리겠다고 작정하셨다. 요시아의 개혁만으로는 유다의 오래 누적된 죄악을 씻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요시아는 앗시리아를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 쪽으로 올라온 이집트의 바로 느고 왕을 맞아 싸우려고 므깃도로 올라갔으나 바로 느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열왕기하 24-25장

 요아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다. 요시아가 애굽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유다는 애굽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끌고가 죽이고 대신 요시아의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애굽식으로 여호야김으로 바꾸게 하였다. 여호야김은 바로의 요구대로 그에게 금과 은을 주려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여호야김은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다. 앗시리아를 대신하여 바벨론이 신흥 강국으로 등장했고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해에 드디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 왔으니 이제 유다의 멸망이 임박하게 되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에게 항복하여 그의 신하가 되어 세 해 동안 그를 섬겼으나 세 해가 지나자 돌아서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하였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을 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다시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했다. 여호야긴은 항복했고 바벨론 왕은 그를 사로잡아 갔다. 느부갓네살은 성전 안에 있는 보물과 왕궁 안에 있는 보물들을 모두 탈취하여 갔으며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용사와 기술자들을 사로잡아 갔다. 바빌론 왕이 여호야긴의 삼촌 맛다니야를 여호야긴 대신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시드기야로 고치게 하였다. 이로써 유다는 실제적으로 멸망하고 여호야긴은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되고 말았다. 바벨론 왕이 세운 시드기야가 바벨론에게 반기를 들었으므로 시드기야 왕 제 구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 도성을 포위하여 시드기야 왕 제 십일년까지 포위하였다. 결국 바벨론은 시드기야를 잡아 두 눈을 빼고 쇠사슬로 묶어서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주님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은 불타고 예루살렘 사면 성벽은 무너졌으며 도성 안에 남은 백성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갔다. 열왕기서의 마지막 대목에서 여호야긴 이야기가 잠시 등장하는 것은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에게 주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여 자비를 베푸셨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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