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속의 성령
2016-03-16 00:45:27
1. 교회사에서 성령은 성부나 성자에 비해 정당한 관심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성령의 주도적 역사 속에 교회가 탄생했지만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는 점점 더 헝식화되고 성령의 역동성은 빠르게 약화되었다. 이런 가운데 2세기 중엽에 최초의 성령운동이라고 할 몬타누스주의가 출현했다.몬타누스는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라는 두 여선지자들과 동역하면서 이제 성부와 성자의 시대는 지나고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교회의 형식화를 비판하고 철저한 금욕과 임박한 재림을 설교했다. 결국 몬타누스주의는 이단으로 정죄되고 그들이 예언했던 주의 재림이 실현되지 않으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몬타누스 이후 교회에서 성령운동은의혹과 감시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말았다. 12세기 시토회 소속의 피오레의 요아킴은 주변로 밀려났던 성령에 대한 곤심을 다시 교회사의 수면위로 부상시켰다. 요아킴은 인류역사를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구분하고 12세기 부터 성령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성령시대가 오면 불신자들과 신자들이 연합하고 보편젓인 사랑의 시대가 오고 교회의 교권구조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된다고 주장했다. 요아킴은 코마스 아퀴나스의 반대를 받았고 교황들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2. 서방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종교개혁자들의 주된 관심 역시 성령보다는 성자 예수에게 집중되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 루터는 주로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로 칼빈은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합시키는 역할로 이해했다. 이들에 반해 재세례파는 성령에 관심을 집중하여고 한스후트나 한스 뎅크는 성령의 계시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열정적으로 선포했다. 이들은 성령의 직통계시와 종말신앙을 강조했기 카톨릭은 물론이고 루터나 칼빈 진영으로부터도 혹독한 박해를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세기에 경건주의와 청교도 운동이 각각 독일과 영국에서 출현하면서 교회사에서 다시 성령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모두 독일의 루터파와 영국의 국교회가 인간본성의 변화 디샌 신분의 변화만 강조하는 이신칭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칭의 대신 중생을 강조하며 인간의 내적 변화를 추구했고 이 과정서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고 강조했다. 경건주의 운동은 18세기 영국에서 존 웨슬리에 의해, 청교도 운동은 18세기 미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그 절정에 달했다. 특히 웨슬리는 초대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몬타누스주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면서 성령운동에 포용적 태도를 보였다.
3. 마국에서는 19세기 제2차 대각성 운동 기간에 켄터키주 케인릿지에서 열린 부흥회애서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일어났고 참석한 사람들에게서 거룩한 히스테리 증상이 나타났다. 1830년대에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챨스 피니를 중심으로, 웨슬리안 진영에서는 피비 파머를 중심으로 성령운동이 일어나면서 성령세례를 강조했는데, 이 운도을 성결운동이라고 부른다. 1890년대에 침례교 목사린 벤저민 하딘 어워의 성결운동에서 강력한 성령 현상들이 나타났는데, 그는 성화 이후에 제3의 체험으로서 불세례를 강조했다. 그의 운동은 미국 중서부와 남부에 빠르게 확산되었고 후에 오순절 운동의 출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성결운동 내에서 성결과 함께 신유와 재림을 강조하는 급진파들이 출현했다. 이들른 성령세례를 통해 죄성의 제거를 강조하면서 소위 사중복음(중생-성결-신유-재림)을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운동과 종말론의 결합을 다시 목격하게 된다.
오순절 운동의 기원
2016-03-16 02:32:40
19세기의 다양한 성결운동과 20세기의 오순절 운동 사이의역사적 신학적 관계를 추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두 운동 간의 관계를 둘러싸고 대단히 복잡하고 치열한 논쟁이 학계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우동이 모두 넓은 의미에서 성결운동에 속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두 운동 간의 신학적 역사적 관계를 추적해 보는 것은 가능하고 또 의미있는 작업이다.
19세기의 다양한 성결운동들
1.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미국 감리교회에서 웨슬리의 근본적 가르침을 재천명하고 그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일종의 역적 각성운동이자 문화적 변혁운동이었다. 웨슬리는 칭화와 성화를 두 단계로 구분하고 성화가 현재 삶에서 즉각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장했는데 웨슬리의 이런 구원론은 이후 성결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지적 토대가 되었다. 이런 웨슬리의 신학과 더불어 후대 성결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존 플렛처다. 그는 세대개념을 도입하여 역사를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구분하고 이러한 역사구분을 개인의 구원과정과 연결시키는 독특한 신학작업을 전개했다. 그의 세대론은 종말과 성령을 연결시키는 독특한종말론을 낳았고 개인구원의 완성인 성화를 성령세례와 연결함으로써 웨슬리와 구별되는 성화론을 발전시켰다. 웨슬리와 플랫처의 이런 구원론은 19세기 감리교 평신도 여사역자인 포비팔머에 의해 새롭게 나타난다. 팔머가 주도하는 "성결증진을 위한 화요모임"은 성결운동이 감리교 영역을 넘어 미 전역의 부흥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팔머는 제단되신 그리스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성령세례에 의해 즉각적으로 성결케 될 수 있다는 소위 제단신학을 주장했다. 팔머의 주장은 성화의 점진성과 순간성을 모두 인정했던 웨슬리와 달리 성화의 순간성을 강조한 것이고 성화와 성령세례의 관계를 부정하던 웨슬리와 달리 성화를 성령세례와 연결한 존 플랫처의 견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팔머의 신학고사역이 19세기 초반 성결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이후 "전국성결연합회"로 대표되는 성결운동은 남북전쟁 이후 성결운동의 제도적 발전을 가능케 하였다.
2. 미국의 성결운동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은 개혁파 진영에서 일어난 성결운동이다. 개혁파 성결운동의 선두그룹은 오벌린 대학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위 "오벌린 완전주의"다. 유명한 부흥사 찰스 피니는 오벌린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피니는 회심한 신자들이 회심 이후에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 성화와 은총 안에서의 성장을 강조했다. 피니는 성화를 율법에 대한 철저한 복종으로 정의하고 이 은총은 성령세례를 통해 주어지며, 이것은 회심과 구분되는 신자들의 또 다른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피니의 이런 독특한 성결론은 보수적 칼빈주의나 웨슬리안과 차별점을 유지하면서 개혁파 진영에서 독특한 성결운동으로 발전한다.
오순절 운동과 신학의 문제
2016-07-17 00:22:51
본고에서는 20세기 이후 세계 성령운동의 다양한 현상 중에서 사회변혁과 관련된 현상에 주목하여 그 현상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오순절 운동이 방언으로 상징되는 열광적 예배 그리고 신비한 종교체험이 그 주된 제의적 특징이긴 하지만 이 이 운동이 당대의 심각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예민하고 순발력 있게 반응해 왔던 역사들은 흔히 간과되어 왔다. 특히 오순절 운동 초기 구성원들 대다수가 열악한 사회적 신분 및 환경에 처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오순절 운동은 비사회적, 비정치적 신앙운동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오순절운동 내에 진지하고 심각한 사회적 관심 및 구체적 참여의 현상들도 수없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오순절 운동을 비사회적, 타계적 운동으로 국한하는 것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피상적 이해가 아닐 수 없다.
1. 인종문제
오순절 운동의 대표적 교단들이 흑인교회와 백인교회로 분열된 현실, 초기 오순절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보여준 인종차별적 태도 그리고 남아공 오순절 교회들이 인종차별적 국가정책에 충실했던 경험들을 근거로 오순절 운동이 인종차별적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것은 오순절 운동에 대한 공정한 이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오순절 운동에는 초기부터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수많은 역사적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사 오순절 부흥운동을 주도하며 이 운동을 미국 전역과 세계로 확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흑인 목사였던 조셉 시무어였다. 시무어가 주도했던 아주사 부흥집회에서는 흑인과 백인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경계선이 무너졌으며 그 집회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참석하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시무어의 전기를 쓴 더글라스 넬슨은 아주사 거리집회에서 시무어 설교의 핵심은 방언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인종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현상은 오순절 운동의 탄생이 인종장벽을 허무는 것과 결합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인종차별의 벽이 무너진 적이 없는 미국사회에서 오순절 운동을 통해 인종차벽의 벽이 무너진 것은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인종차별적 문화 속에서 성장한 대다수의 백인들은 그런 오순절 체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오랜 편견을 쉽게 극복할 수 없었고 이후 오순절 운동은 인종의 차이에 따라 교단이 분열되는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 난관 속에서도 인종차별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오순절 운동 내에서 지속되었다. 오순절 운동에서 방언이나 신비체험보다 더 소중하고 의미있는 특징은 인종적 편견의 벽을 허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서 초기 오순절 운동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인종차별이란 거대한 벽이 무너졌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기독교 초기 운동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이 허물어지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소유권의 벽이 무너져 가난한 자가 없게 된 현상에 비견할만한 일로서 인간 사이의 모든 벽을 허무시는 성령의 일관된 역사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오순절 교단은 이러한 그들의 소중한 전통을 오늘날 되살리는 일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 빈곤의 문제
초기 오순절 운동의 주된 구성원들은 가난한 백인, 흑인들이었고 운동의 발생지역도 대부분 도시 빈민가나 가난한 시골마을들이었다. 한국 오순절 운동의 발상지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나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의 오순절 운동도 모두 도시빈민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오순절 운동을 가난한 자들의 분파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게 되었다., 비록 초기 오순절 운동의 구성원들이 가난했고 분파적 특성을 보였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난한 종교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으며 교회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사실 오순절 초기 운동에서 가난한 사회적 현실과 강력한 성령체험으로 인해 변혁적이고 역동적인 종말신앙이 출현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묵시적 종말론을 수용했고 그 결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되었다. 이 현상을 로버트 앤더슨은 이렇게 설명한다. “오순절 운동의 근원은 사회적 불만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종말의 비전은 사회질서에 대한 거부와 새롭고 보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천년왕국이 인간의 노력 없이 도래한다는 근본주의의 묵시적 종말론의 영향으로 그들 속에 전수된 급진적인 사회개혁의 열망은 사회적 소극성, 신비주의적 도피 그리고 보수적 순응주의로 변질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반동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빈곤문제를 사역의 핵심으로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오순절 교회들이 존재했고, 오순절 교단 내에서 빈곤문제에 대한 자기반성이나 각성들이 최근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바르게 반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발견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로 급진적인 사회변혁의 열망이 나타났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고 수용하는 바른 신학이 없이는 그 열망이란 동력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바른 반응을 통해서 인간 역사 가운데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3. 평화운동
일반적으로 오순절운동 초기의 지도자들은 평화주의에 근거하여 전쟁에 반대했다. 초기 오순절 운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한 프랭크 바틀맨은 성경을 근거로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피를 흘리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국가의 합법적인 전쟁도 합법적 살인에 불과하며 인간적 경제적 자원을 낭비하고 복음전파를 방해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순절 신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국가의 전쟁 수행에 참여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어서 1917년 ‘하나님의 성회‘는 시민의 의무는 충실히 수행하지만 전쟁과 무력에는 양심상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오순절 운동의 전통에는 평화주의에 대한 원칙이 확고히 존재했다. 그러나 초기 오순절 운동의 평화주의 및 반전사상은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전시상태의 미국에서 평화주의는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도피주의로 매도되었고 그 결과 메노나이트나 퀘이커주의는 심각한 비난과 박해를 받았다. 이런 사회적 압박 속에서 평화주의를 지지하던 오순절 교단들도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결국 이런 사회적 압력과 국가적 탄압이 강화되면서 오순절 교단들은 종전의 입장을 수정하고 적극적으로 전쟁을 지원하고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오순절 신자들은 평화주의로 인한 실존적 긴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실에 굴복하고 적응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메노나 퀘이커 같은 재세례파 운동이 사회적 국가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평화주의를 고수한 데 비해 오순절 운동은 압력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바른 반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발견하게 된다. 평화주의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평화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현실의 긴장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이 필요한데 오순절 신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고 그 결과 굴복했으며 자신들의 굴복을 합리화하기 위해 오히려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오순절 교회는 이런 부분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운동이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4. 여성문제
오순절 운동의 두 걸출한 지도자인 챨스 팔함과 윌리엄 시무어의 배후에 혹은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오순절 운동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들 가운데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팔함이 세운 오순절 신학이 구체적 경험에 바탕을 둔 신앙운동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아그네스 오스만이라는 여성에게 나타난 성령세례와 방언체험이 결합되어 나타난 사건이었다. 또한 윌리엄 시무어를 오순절 운동의 지도자로 세운 사람은 루시 페로우라는 여성이었으며 시무어의 오순절 사역에서 시무어와 함께 집회를 이끌던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 그의 아내 제니 무어였다. 이 외에도 에이미 샘플 맥퍼슨이라는 여성은 탁월한 설교와 신유은사를 기반으로 미대륙을 횡단하며 오순절 운동의 확산에 놀라운 사역을 전개했다. 한국에 오순절 복음을 전해준 사람도 메리 럼지라는 여성 선교사였고 한국 오순절 운동의 요람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설립에도 한국오순절 교회 최초의 목사인 최자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렇게 미국과 한국에서 오순절 운동이 크게 발전하는데 여성들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 것은 교회사에서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기독교 교회 역사에서 여성들은 교화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했고 남성들보다 열등한 성적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오순절 운동 안에서 여성들은 훨씬 자유로운 신앙체험과 사역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순절 운동은 여성의 역할을 증대하고 그 가치를 고양시키는데 교회사에서 그 어떤 운동이나 단체보다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오순절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면서도 성찬, 주례, 장례들의 목회적 역할은 금지하고 있으며 여성들에게 교단 내에서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직위를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것은 오순절 교회가 아직도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오순절 교회는 자신들의 소중한 전통들을 반영할 새로운 신학을 세워나가지 못하고 근본주의 신학에 의지함으로써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내의 여성 문제는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오순절 운동이 교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시험대일 것이다.
5. 신학의 문제
오순절 교회들은 대부분 근본주의 신학을 수용했고 스스로를 근본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체계를 갖춘 근본주의자 지도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대주의 영향으로 은사중지론을 신봉하던 근본주의자들에게 오순절 운동은 심각한 교리적 오류로 보였으며 정통근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순절 교회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이런 거부로 신학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 그룹과 오순절 교회 사이에는 단절이 있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근본주의 그룹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진보주의 그룹은 전국교회협의회(NAE)를 결성하고 오순절 주의자들을 포용하였다. 이 결과 오순절 교회들은 복음주의 진영의 주류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주의든 복음주의든 그들의 신학체계는 오순절 운동이 가진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를 수용하고 발전시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오순절 교회들이 복음주의 진영에 합류하게 됨으로 오순절 교단들 사이에 전국적 규모의 연합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오순절 운동의 외적인 확산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신학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반성으로 부재로 말미암아 오순절 운동은 그 역동성과 독특성을 상실해 온 것으로 보인다.
6. 결론적 고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오순절 운동을 묵시적 종말론과 열광적 성령운동에 몰두한 탈 역사적, 반사회적, 비정치적 성향의 분파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순절 운동의 전통 안에는 분명히 인종이나 성별이나 빈부격차로 인한 각종 차별을 반대하고 그 차별을 실제적으로 무너뜨렸던 소중한 역사와 경험이 있다. 이것은 오순절 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오순절 운동이 근본주의 신학을 수용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졌던 소중한 전통을 발전시키는데 큰 장애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인간에 대한 각종 사회적 차별을 반대하고 철폐하는 소중한 역사는 분명히 오순절 운동에 나타났던 성령의 강력한 역사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운동은 이런 성령의 역사를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신학을 정립하는 일을 소홀함으로써 그 소중한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순절 운동 안에 내재한 신학에 대한 반감이나 무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근본주의 신학은 그들을 이단 시비에서 자유롭게 하는데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오순절 운동이 가진 독특한 성격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훼손하거나 소멸하게 만들었다고 보인다. 은사적 특징이 강력하게 나타난 오순절 운동이 은사중지론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것은 아이러니이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오순절 신자들은 자신들이 초대교회 오순절 운동의 정신을 가장 온전히 계승하는 교회라고 믿고 있으며 20세기에 오순절 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그 증거로 제시하지만 최근의 오순절 교회들은 초대교회의 물질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형성으로 나가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그 경제체제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수혜자로서 변질되어 왔다. 성령이 물질 축복의 동력으로, 오순절 운동이 자본주의의 시민종교로 환원되는 것은 오순절 운동의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운동은 분명히 성령의 역동적 역사를 분명히 드러낸 운동이었고 그 성격은 초대교회의 오순절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와 일관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문제는 오순절 교회가 아직도 이런 성령의 역사를 포용하고 해석할만한 자체적인 신학을 갖지 못하고 아직도 근본주의 신학에 기대어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데 있다. 이는 마치 새 술을 헌 포도주 부대에 넣은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오순절 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인 운동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현대 오순절 운동이 세력 확장은 오순절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으로 성장하는데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근본주의적 신학으로 말미암아 오순절 운동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함으로 진보적 사회개혁의 세력이 아닌 전형적인 수구주의자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순절 운동이 자신과 사회에 비판적인 예언자 기능을 수행하고 21세기를 선도하는 교회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순절 운동의 전통을 회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신학을 정립하고 그런 인재를 키워나가는 일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오순절 운동이 성령을 통해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고 맘몬의 폭력에 저항하며 인간에 대한 각종 차별철폐에 전념한다면 오순절은 21세기 하나님나라 운동의 중심에 다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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