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 이형일
2016-03-05 21:57:08
초기 기록론의 기원과 발전
1. 초기 기독론의 기원과 발전이란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류 역사 가운데 개입하여 들어오신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에 불과한 나사렛 예수가 언제 어떻게 신적이고 선재하는 아들로 경배를 받게 된 것인가? 라는 초기 기독론적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기독론은 흔히 조직신학의 한 분과로 취급되지만 사실 역사적 접근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초기 기독론이 기독론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지향한다면 조직신학의 기독론은 이미 발전되고 완성된 기독론을 교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초기 기독교는 분명히 예수를 신적, 선재적 존재로 믿고 묘사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런 기독론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6:16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을 초기 기독교가 예수의 신성을 인식하게 된 시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초기 기독론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메시아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관복음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미 초기 기독론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그러므로 베드로의 이 고백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에는 이미 신성에 대한 고백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초기 교회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안 것이 아니다.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는 제자들도 예수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 없었을 것이나 복음서가 씌여진 즈음에는 이미 기독론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복음서 기사들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의 삶의 정황과 복음서 저자의 삶의 정황을 구별해야만 초기 기독론에 대한 역사적 추적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점진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구별은 복음서 기사들의 역사성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시점의 이해와 그 사건을 기록한 저자의 이해 간에 차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기 기독론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
1. 구종교사학파(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의 선두주자인 빌헬름 부세는 그의 책 Kyrios Christos(1913)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신적 존재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선생과 예언자로 존경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예수를 이방 종교에서 섬기는 하나의 신으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초기 기독론을 유대교와 이방종교간의 종교 혼합의 결과로 본 것이다.
2. 존 힉스는 옥스포드와 버빙엄 대학의 성서신학 교수들과 종교학과 교수들의 심포지움 결과를 편집하여 1977년에 The Myth of God Incarnate 란 책을 발간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는 언제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운동이었다고 전제하면서 예수는 하나님의 경륜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이며 삼위일체의 제2위라는 후대의 기독교 교리는 우리를 향한 예수의 의미를 신화적 혹은 시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신성과 성육신을 부인했다. 이것은 전통적 신앙에 도전한 주장으로서 당시 영국에서 센세이셔날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3. 제임스 던은 그의 책 Christology in the Making: A New Testament Inquiry into the Origins of the Doctrine of the Incarnation,에서 예수의 기독론적 칭호들 및 예수의 성육신과 선재성의 배경이 될 만한 다양한 전승들을 자세히 검토한다. 거기서 그는 초기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에 대한 선례를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면서 따라서 기독론은 초기 기독교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주후 90년대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야 비로서 초기 교회의 기독론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바울서신이나 공관복음서 저자들도 예수의 신성을 알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제임스 던은 비교적 복음주의적인데 유독 기독론에서는 복음주의에서 받아들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모리스 케이시는 그의 책 From Jewish Prophet to Gentile God(1991)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공동체에서 축출되는 시점, 즉 요한 복음이 기록된 시점에 가서야 고 기독론이 형성되었다고 제임스 던과 유사하게 말한다. 그는 이 때 형성된 고기독론은 유대교의 한 예언자였던 예수가 이방의 신으로 꾸준한 격상된 결과라고 말하면서 구종교사학파의 주장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제임스 던과 케이시의 주장에는 구종교사학파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4. 20세기 마지막 4반세기 부터 새 종교사학파가 등장했는데 이들이 구종교사학파 처럼 기독론을 역사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에서 새 종교사학파라고 불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일 학파라가 보다는 다양한 성향의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새 종교학파는 제3의 역사적 예수탐구와 맞물려 기독교의 기원과 배경을 헬레니즘과의 혼합주의가 아니라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찾는 점이 특징이다. 새 종교학파의 선두 주자는 마틴 헹엘인데 그는 초기 기독론은 부활 이후 20년이내 기독교 초기에 빅뱅처럼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마틴 헹엘의 연구에 기초하여 래리 허타도는 그의 책 one God, one Lord; Early Christian Devotion and Ancient Jewish Monotheism(1988)에서 유대교의 중간적 존재들(의인화된 하나님의 속성, 고양된 족장들, 천사장들)에 대한 사변이 초기 기독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중간적 존재들이 묘사된 방식과 고양된 그리스도가 묘사된 방식 사이에 상당한 흥미로운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말하면서, 예수에 대한 경배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종교혼합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유대교 유일신 사상으로부터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난 획기적인 변이라고 주장한다.
5. 리처드 보컴은 그의 책 God Crucified: Monoteism and Christology in the New Testament(1988)에서 새 종교사학파는 지나치게 초기 기독론을 제2성전기 유대교의 전승과 관련시키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제2성전기 중간적 존재의 역할에 대한 이론을 반박하면서 제2성전기 유대교는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을 묘사하는 명확하고도 일관된 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하나님을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 엄격하게 구별했다고 말하면서 신적 정체성(Divine Identity) 이론을 제안했다. 그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이해할 때 신적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초점을 맞추어 신적 정체성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은 What is Divinity? 가 아니라 Who is God? 이었다고 주장한다. 보컴은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과 초기 기독교의 창의적인 구약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독교는 매우 초기부터 예수의 신성과 선재성을 고백한 고기독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초기 기독론의 형성
1. 그렇다면 초기 기독론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나? 일반적으로 초기 기독론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크게 두 견해로 나뉘는데 기독교 이전 제2성전 유대교에서 이미 유일신 사상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초기교회가 기독론을 발전시키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보는 견해와 다른 하나는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유일신 사상은 약화되지 않고 견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교회에서 기독론이 발전되었다는 견해이다.
2. 후자의 경우는 다시 두가지 견해로 나뉘는데 첫째는 제임스 던이나 모리스 케이시와 같이 유대교의 견고한 유일신 사상 때문에 초기 기독교가 예수의 신성을 받이들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주후 90년경 요한복음이 기록될 때에 이르러서야 초기 기독론이 형성되었다는 견해다. 던은 사도바울도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것 처럼 예수를 신적, 선재적 존재로 믿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케이시는 1세기 동안 꾸준히 격상된 예수의 지위는 유대 공동체의 유일신 사상으로 제약을 받아왔지만 요한공동체가 회당에서 축출된 이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예수의 신성과 성육신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 결과 유대교의 한 예언자였던 예수가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3. 둘째, 래리 허타도나 리처드 보컴은 제2성전기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은 견고했지만, 예수의 부활 후 매우 이른 시기에(적어도 공관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빅뱅과 같이 예수의 신성이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한다. 다만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가 종교적 체험을 통해 예수를 신적 존재로 경배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때 유대교의 "신적 대리인 전승"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에, 보컴은 신적 대리인 전승의 영향을 반대하면서 초기 기독교의 창의적인 구약 해석을 중시했다. 보컴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이해할 때 신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에 초점을 맞춘 신적 정체성을 통해 이해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는 예수를 유대교의 신적정체성에 포함된 분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초기 기독론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의 핵심 논증
1. 의인화된 하나님의 속성과 고양된 천사들과 선재적 메시아를 다루는 2,3장에서 저자는 과연 제2성전기 유대교의 전승 선례가 초기 기독론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검토한다. 여기서 대두되는 쟁점은 하나님의 속성의 의인화가 신의 현현과 임재에 대한 생생한 문학적 표현이냐 아니면 신의 위격이냐는 것인데, 저자는 하나님의 속성의 의인화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유일성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를 표현한 언어이지 신적 위격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2. 이어서 저자는 4장과 5장에서 역사적 예수가 초기 교회의 고기독론에 미친 영향을 검토한다. 이것은 예수는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에 대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중요한 호칭이 하나님이 아들인데, 그동안 신약학계의 주류는 이 호칭을 메시아인 예수가 하나님과 갖는 친밀한 관계를 표현한 용어로 간주해 왔다. 다시 말하면 이 호칭이 예수의 신적 자의식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신약학계의 일반적 견해는 초기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시점으로 보고 부활 이전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부활 이후에 초기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을 예수에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신약학계의 이런 주장은 구종교사학파의 잔재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신약학계의 이런 일반적 견해에 반대하면서 역사적 예수는 신적 자의식을 가졌고 그것은 초기 교회의 신앙고백이 복음서에 투영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복음서가 보여주는 예수의 자의식에 대한 이해가 초기 교회의 기독론 형성에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3. 그 다음으로 6장과 7장에서 저자는 초기 기독교가 두개의 메시아 시편(110편1절; 2편7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그들이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예수의 말씀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했다고 논증한다. 저자는 초기 교회의 메시아 시편 주해는 예수를 선재하는 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초기 교회는 구약의 전통적인 메시아 관련 본문들을 매우 새롭게 주해함으로써 기독론적으로 중요한 함의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110편은 초기 기독교가 예수의 부활을 하나님의 우편으로의 고양으로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동안 유대교에서 이 시편은 이스라엘 왕의 신적 통치를 상징적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초기 교회는 이것을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재해석했다.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이형일)
핵심논지
1. 초기 기독교가 인간 예수를 하나님과 대등한 신적 존재이자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한 선재적 존재라고 믿은 것은 불가사의 한 일이다. 구종교사학파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헬레니즘과 이방 종교의 영향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면 20세기의 마지막 25년간은 새 종교사학파가 제2성전기의 유대교 배경에서 그 기원을 찾고자 시도해왔다. 지금까지 초기 고기독론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론은 바울의 지혜기독론이었다. 바울의 기독론이 유대교의 지혜 전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성서학계의 정론에 가깝다. 바울의 기독론과 유대 지혜 전승의 연계성을 최초로 주장한 학자는 독일의 빈디쉬였고 이에 동조한 학자들이 데이비스, 슈바이처, 마틴 행엘, 김세윤, 제임스 던 등이다. 그러나 제임스 던의 경우 유대 지혜 전승이 바울의 기독론에 영향을 준 점은 인정하지만 바울의 지혜본문들이 그리스도의 선재나 신성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사역의 완전한 체현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학계 다수 의견에 이의를 제기했다. 바울의 기독론 배후에 유대 지혜전승이 존재하다는 것을 반대한 학자들도 있다. 바울의 지혜 기독론에 최초로 의구심을 보인 사람은 세르포였다. 콘젤만, 헤머튼 켈리, 판룬, 고든 피도 바울의 지혜기독론에 의구심을 표명했다. 학자들 다수는 바울의 기독론이 유대교의 지혜전승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보지만 바울이 과연 예수를 의인화된 하나님의 지혜와 동일시했는지에 관한 문제는 아직 쟁점으로 남아있다.
2. 최근에는 지혜전승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대리인 또는 중간적 존재에 관한 유대교 전승에 성서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20세기 초에 부세는 포로기 이후 천사장을 비롯한 중간적 존재들(intermediary beings)에 관한 사변의 영향으로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상당히 약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임스 던은 의인화된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한 언어 및 중간적 존재들에 관한 사변이 결코 유일신 사상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던은 바울이 지혜의 특성을 예수에게 부여했으며 부활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의 완전한 체현으로 표현한 것은 인정하지만 바울의 신학적 사고는 아직 유대교의 은유적 표현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던은 요한복음에 이르러서야 초기 기독교의 지혜사변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던은 선재 및 성육신 기독론을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을 요한복음의 저자로 본다. 케이시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바울 이전에 약화되지 않았다는 던의 견해에 동의한다. 다만 케이시는 예수가 신적 지위로 격상된 시점을 요한공동체가 기원후 70년 경 회당에서 축출되고 이방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갖게된 이후라고 주장한다. 케이시는 예수의 지위는 1세기 동안 꾸준히 격상되었지만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에 제약을 받아왔는데, 요한 공동체가 회당에서 축출되고 이방인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자 유일신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로서 예수의 신성과 성육신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던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 이방인 공동체에서 발전했다는 케이시의 주장에는 의구심을 갖는다. 하지만 던과 케이시 모두 초기 기독교의 고기독론이 기원후 70년대의 산물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이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바울이나 공관복음 저자들은 아직 예수를 하나님으로 숭배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3. 허타도는 유대교 유일신 사상이 유대교의 중간적 존재들에 대한 사변으로 약화되지 않았다는 던과 케이시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중간적 존재들에 대한 사변이 초기 기독교 고기독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교의 중간적 존재들에 대한 묘사 방식과 신약의 고양된 그리스도가 묘사된 방식 사이에 상당히 흥미로운 언어적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허타도는 예수에 대한 숭배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종교 혼합주의 산물이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일어난 유대교 유일신 사상의 획기적인 변이 또는 혁신이라고 말한다. 허타도는 유대교 안의 하나님의 대리인(divine agent) 전승을 포괄적으로 강조하면서 이런 전승의 영향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일신 사상을 재정의하면서 예수를 신적, 선재적 존재로 이해하는 길을 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허타도는 유일신 사상이 재정의된 시점에 관해서는 던이나 케이시와 다른 결론을 내린다. 그는 유일신 사상의 혁신이 이미 바울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예수를 숭배한 방식은 그가 예수를 신적 존재로 보았다는 증거이며,
도한 이것은 그의 기독론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관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보컴은 제2성전기 유대문헌들이 하나님과 다른 존재들을 엄격하게 구별했다고 주장하며, 유대교의 중간적 존재들이 초기 기독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허타도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보컴은 오히려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에 대한 이해가 신약의 고기독론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그는 초기 유대인들은 신성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즉 신적 본질이나 특성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초점을 맞춘 즉 신적 정체성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요약자 주: 아마도 보컴의 이 말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예수의 신성과 선재성을 제약하는 사상이 아니었다는 의미인 듯하다) 나아가 보컴은 초기 기독교가 시편 110:1과 이사야 40-55장 등의 구약본문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예수가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 안에 포함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4. 서로 간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던, 케이시, 허타도, 보컴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은 바로 1세기 유대교 유일신 사상이 초기 기독교의 출현 이전에 약화되거나 변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견고했다는 사실이다.물론 그들은 유대교 유일신 사상의 혁신이나 새로운 인식이 기독교 초창기에 일어났다고 보는 견해(허타도, 보컴)와 이런 변화가 기원후 70년 혹은 요한복음이 기록되기 이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던, 케이시)로 뚜렷하게 나뉜다. 던과 케이시의 해석방법론의 공통점은 신약에 어떤 개념이나 사상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신약의 저자들이 그런 사상을 전혀 믿지 않았거나 알지 못했다고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수의 성육신 사상이 당시에 이미 편만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그것을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 서신 대부분이 개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이미 믿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였다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바울 서신에 예수의 성육신이나 선재성이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서 바울이 그 사상을 몰랐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5. 초기 기독론의 발전에 관한 유대교적 선례를 찾으려는 새 종교사학파의 시도는 과거 초기 기독론의 기원을 헬레니즘적 이방 종교에서 찾으려던 구종교사학파의 시대착오적 견해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지만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연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초기 기독론의 발전을 설명하려는 자세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들중 일부는 마치 초기 기독론의 어떤 개념이 유대교 내에 존재했던 어떤 개념과 유사함을 입증해야만 초기 기독론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연구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초기 기독론에 대한 유대교의 선례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초기 기독론 형성을 위한)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역할과 공헌을 경시함으로써 초기 기독론의 기원에 관한 이해를 왜곡시킨 면이 없지 않다. 새 종교사학파의 여러 학자들이 신약의 고기독론의 기원을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찾으려던 것과는 달리, 던, 케이시, 보컴, 허타도 등은 모두 고기독론의 기원을 초기 기독교에서 찾고자 했다. 허타도가 제2성전기 유대교의 대리인 전승의 언어적 배경을 강조했지만, 그는 고기독론 형성의 궁극적인 계기는 종교적 체험을 통한 예수 숭배였다고 본다. 또한 보컴과 헹엘은 초기 기독교가 구약본문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고기독론 발전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본다.
6. 이 책의 저자인 이형일은 신약의 고기독론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자기 이해( 하나님 아들됨과 신적 사명)에 근거하여 두 편의 메시아 시편(시110:1과 시2:7)을 기독론적으로 주해함으로써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예수의 하나님 아들 자의식이 예수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해가 발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논증한다. 그런데 저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예수에 대한 이런 이해는 두 편의 메시아 시편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주해가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저자의 핵심 논지는 고기독론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예수의 자의식에 대한 이해와 메시아 시편에 대한 주해라는 두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초기 교회가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선재한 아들로 이해하게 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하여 주와 구주로서 하나님 우편에 문자적으로 앉으신 이가 누구인지를 알고자하는 열망이 수렴된 정점이었다고 말한다.
초기기독론 핵심주장- 이형일
2016-10-15 18:44:13
1. 초기 유대교에서 의인화된 하나님의 속성들(하나님의 지혜, 말씀, 이름)은 개별적으로 구분된 신의 위격으로 발전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한 이러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는 하나님의 개념을 양분화하거나 예수를 하나님과 대등한 신적, 선재적 존재로 보게한 실질적인 선례가 되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초월성이나 유일무이성을 약화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용한 언어를 제2성전기 유대인들에게 제공해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천사론이나 선재한 메시아 사상은 예수를 하나님과 대등한 신적이며 선재적인 존재로 인식시킬 만큼 초기 기독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 공관복음 본문들은 예수가 '아바' 사용을 비롯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는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예수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독특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마가복음 1:11에서의 수세 기사에서 시편2:7 이 인용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메시아이지, 메시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아님을 뒷받침한다. 여기서 '아들'은 단순히 메시아적 왕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승리를 약속하는 표현이 아니라 아버지인 하나님과의 독특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수반하는 칭호였다. 따라서 예수의 하나님 아들 자의식은 초기 고기독론의 형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초기 기독교가 예수를 선재한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예수의 자의식에 대한 공관복음의 증거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자신을 그의 아들로 이해하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독특하고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공관복음서는 예수는 자신의 신적 사명, 즉 하나님이 주신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자신의 사명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됨과 신적 사명에 대한 예수의 자기 이해 자체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선재한 신적 존재로 이해하는데 충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편110:1편과 2:7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주해가 중추적 역할을 하게된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들은 부활 이전에는 결코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예수가 자신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자들의 영적 무지가 그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자신에 대해 말한 것과 제자들이 실제로 이해한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 피상적으로 보면 예수가 자신에 대해 인식한 것(예수의 기독론)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헤 믿게된 것(초기 교회의 기독론) 사이에는 상당히 큰 간격이 있는 것 처럼 보이고, 그래서 학자들은 초기 교회의 기독론의 형성과 예수의 선재성의 기원을 예수 자신이 아닌 유대 전승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간격은 예수의 부활 이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시편110:1과 시2:7을 메시아적-기독론적으로 주해하는 과정을 통해 메워졌으며,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예수의 자기 진술들이 내포했던 그의 선재성에 대한 함의를 유추해냈다. 결국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시편에 대한 주해 과정에서 예수의 부활 및 그의 자기 계시 진술들에 비추어 그들이 이미 믿기 시작한 것을 확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하나님 우편에 즉위한 하나님의 선재하는 아들로 이해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5. 신약에서 시편110:1은 한결같이 하나님 우편으로의 고양을 의미하는 예수의 부활에 적용되었다. 기독교의 출현은 예수의 부활을 하나님 우편으로의 고양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이 초기 교회의 신앙고백의 일부였다는 것과 시편8:6 이 일찍이 시편110:1과 연계되었다는 사실은 초기 교회가 그리스도의 우주적 주되심을 인식한 시점이 매우 초기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시110:1을 하나님 우편으로의 고양에 대한 예언으로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관점에서 이미 주인 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새로운 신분의 부여가 아니라 기존 신분의 확증으로 해석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시편2:7을 예수 부활시에 결정적으로 성취된 그의 하나님 아들 됨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했다. 시편2:7에 대한 메시아적 주해의 가장 심오한 기독론적 함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예수는 지상에서 그리고 이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기존의 지위와 신분을 확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초기 교회는 부활 시에야 비로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이해했다는 주장은 폐기되어야 한다.
6. 결론적으로 초기 기독론은 중간적 존재에 대한 제2성전기 유대교의 사변들(의인화된 하나님의 속성들과 고양된 천사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아들 자의식 및 신적사명 자의식에 비추어 이루어진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편(시110:1; 시2:7)에 대한 창의적인 메시아적-기독론적 주해를 통해 형성되었다. 부활 사건이 남긴 충격과 그 결과 발생한, 예수가 실제로 하나님 우편에 앉이 있다는 신념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선재한 주와 하나님 아들로 이해하게 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가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선재한 아들로 이해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뢀하셔서 주와 구주로서 하나님 우편에 문자적으로 앉으신 이를 더 깊이 알고자 갈망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픔었던 열망의 정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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