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2015-01-30 14:31:33
로마서에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유명한 선포가 나오는데 그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뒤따라 나오는 말이 하박국서를 인용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의인의 믿음이 매우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언급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의인의 믿음은 무슨 관계인지 생각하지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미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동의하듯이 성경에서 말하는 "의"라는 개념은 개인의 도덕적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이다. 그러니까 의롭다는 것은 관계를 맺은 상대방에 대하여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부모와 자식이란 관계에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무가 생기게 되는데 그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면 그것이 바로 의로운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의의 개념이다. 그러니까 성경의 의의 개념은 한마디로 언약적 혹은 관계적 신실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났다 혹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복음으로 나타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온천하에 미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그러니까 이 기쁜 소식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것이란 의미이다. 이 말을 좀 더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나온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란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을 죄의 저주에서 해방시킨 것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이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계를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언약적 책임을 반드시 감당하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차매 자기 아들을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신 것이고 그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세상을 고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란 곧 하나님의 언약적 혹은 관계적 신실함이기 때문에 그것은 관계 상대방을 향하여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언약 상대방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성경의 계시는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적 상대방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언약 상대방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사람을 향하여 어떻게 나타나는가? 첫째는 언약적 자비(사랑, 은혜)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언약 상대방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의무에 실패하였을 때, 즉 불순종하였을 때 그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또한 언약적 자비는 사람이 언약적 의무를 수행하였지만 그것이 부족하였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용납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언약적 공의( 진리, 정의)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언약 상대방인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 그 죄악을 징벌하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징벌과 심판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언약 상대방인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게 하려는 징벌과 심판이다. 또한 언약적 공의는 사람이 언약적 의무를 잘 수행하였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보상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는 사람을 향한 언약적 신실하심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왜 바울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는지 그 의미를 선명하게 발견하게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곧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것이란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란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사건이란 말인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그 영광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이어지는 구절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며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증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와 진리가 바로 앞에서 말한 언약적 자비와 언약적 공의와 동일한 말이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충만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사건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와 언약적 공의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나온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죄를 미워하시고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진리였으며 동시에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마찬가지로 의로운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였으며 동시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였다. 이렇게 복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의인의 믿음은 무슨 관계인지 생각할 차례가 되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의 역사로 나타났으며,또 장차 그분의 다시 오심과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행동이고 따라서 복음은 반드시 사람의 신실한 반응 혹은 대답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믿음이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신실하신 하나님의 다가오심 혹은 말 건네심에 대한 사람의 신실한 반응이고 대답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것은 사람은 복음을 믿음으로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신실하게 반응함으로 생명을 얻게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을 향한 언약적 신실하심이듯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언약적 신실함이다.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 이것이 사람의 의이고 그래서 믿는 자를 의롭다 혹은 의로운 자 곧 의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2016-01-16 23:48:02
로마서에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유명한 선포가 나오는데 그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뒤따라 나오는 말이 하박국서를 인용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의인의 믿음이 매우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언급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의인의 믿음은 무슨 관계인지 생각하지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미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동의하듯이 성경에서 말하는 "의"라는 개념은 개인의 도덕적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이다. 그러니까 의롭다는 것은 관계를 맺은 상대방에 대하여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부모와 자식이란 관계에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무가 생기게 되는데 그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면 그것이 바로 의로운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의의 개념이다. 그러니까 성경의 의의 개념은 한마디로 언약적 혹은 관계적 신실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났다 혹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복음으로 나타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온천하에 미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그러니까 이 기쁜 소식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것이란 의미이다. 이 말을 좀 더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나온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란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을 죄의 저주에서 해방시킨 것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이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계를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언약적 책임을 반드시 감당하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차매 자기 아들을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신 것이고 그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세상을 고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란 곧 하나님의 언약적 혹은 관계적 신실함이기 때문에 그것은 관계 상대방을 향하여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언약 상대방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시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성경의 계시는 사람이 처움부터 하나님의 언약적 상대방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언약 상대방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사람을 향하여 어떻게 나타나는가? 첫째는 언약적 자비(사랑, 은혜)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언약 상대방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의무에 실패하였을 때, 즉 불순종하였을 때 그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또한 언약적 자비는 사람이 언약적 의무를 수행하였지만 그것이 부족하였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용납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언약적 공의( 진리, 정의)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언약 상대방인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 그 죄악을 징벌하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징벌과 심판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언약 상대방인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게 하려는 징벌과 심판이다. 또한 언약적 공의는 사람이 언약적 의무를 잘 수행하였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보상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는 사람을 향한 언약적 신실하심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왜 바울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는지 그 의미를 선명하게 발견하게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곧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것이란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란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난 사건이란 말인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그 영광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이어지는 구절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며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증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와 진리가 바로 앞에서 말한 언약적 자비와 언약적 공의와 동일한 말이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충만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사건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와 언약적 공의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나온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죄를 미워하시고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진리였으며 동시에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마찬가지로 의로운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였으며 동시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였다. 이렇게 복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의인의 믿음은 무슨 관계인지 생각할 차례가 되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의 역사로 나타났으며,또 장차 그분의 다시 오심과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행동이고 따라서 복음은 반드시 사람의 신실한 반응 혹은 대답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믿음이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신실하신 하나님의 다가오심 혹은 말 건네심에 대한 사람의 신실한 반응이고 대답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것은 사람은 복음을 믿음으로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신실하게 반응함으로 생명을 얻게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을 향한 언약적 신실하심이듯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언약적 신실함이다.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 이것이 사람의 의이고 그래서 믿는 자를 의롭다 혹은 의로운 자 곧 의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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