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
2015-01-26 11:19:25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 자신을 아는 지식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또한 자신에 대한 지식없이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출발은 하나님의 인간창조에서 시작된다. 성경의 첫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창조하셨다는 위대한 선언으로 시작되는데 하나님의 칭조의 절정은 인간 창조였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후에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만물 창조의 목적이 인간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인간이 그 속에서 살고 또한 일하는 삶의 자리로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렇다면 인간 창조의 목적은 무엇인가? 만물이 인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면 결국 인간 창조의 목적이 곧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 창조의 목적에 대하여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다른 만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니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릴 특별한 존재를 지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인 인간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설정되었고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 존재는 설명되지 않으며 그 의미를 찾을 길이 없게된다. 또한 인간을 떠나서는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수 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단순한 창조주기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 자기 형상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이 설명되지 않듯이 성경은 인간을 떠나서 하나님을 계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만물을 직접 다스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형상인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인 것이다.
성경의 모든 계시와 역사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이 근본적인 관계로 부터 출발하며 그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은 단순히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떨레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없이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을 통해서 창조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인간이며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 필연적인 관계속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관계는대단히 공적인 것이고 그 관계가 지향하는 목적은 바로 인간이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만물을 다스린다고 할 때 당연히 전제되는 것은 그 다스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 창조이후에 주어진 선악과 금령의 계시는 바로 이 사실을 보여준다. 선약과 금령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인 순종을 하여야 한다는 엄중한 교훈을 가르친 것이다. 결국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뜻대로 만물을 다스릴 때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과 사람간에는 처음부터 언약관계가 수립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언약 관계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어야 할 책임을 가진 공적인 관계인 것이다. 결국 이것이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삶의 목적이 되며 이것을 떠나서는 사람은 당연히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언약적 요구를 하시며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에 순종해야 할 언약적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사람사이에 이런 언약적 관계에서 언약적 요구와 언약적 의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성경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다양한 언약의 유형들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이 창조시부터 맺은 언약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바로 이 창조 언약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대표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 인류의 대표로서 세워진 민족인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약의 역사이며 바로 이 이스라엘의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시내산 언약에서 주어진 십계명을 비롯한 다양한 율법들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셨지만 언약의 상대방인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순종보다는 불순종의 역사가 압도적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언약의 역사에는 중대한 언약 원리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긍휼, 사랑)와 언약적 공의(진리, 정의)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비 혹은 공의로 나타난 것이다. 이 지비와 공의라는 언약의 양대 원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신실함은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여 사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언약적 의무를 잘 준행하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는 샬롬이 유지되고 발전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 관계는 위기에 처하고 심지어는 파괴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역사는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언약에 신실하다는 것은 언약적 의무를 잘 준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불순종하는 것은 곧 언약을 배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은 이스라엘의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자비와 공의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두가지 경우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한 죄악을 용서하심으로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부족한 순종을 용납하심으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도 두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벌하고 심판하심으로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순종에 대해 복과 상으로 갚아주심으로 나타난다.
성경에서 의로우신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의라고 말할 때 "의"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다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드리는 기도와 찬양 혹은 탄원의 근거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였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셨고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소망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와 공의였다.
또한 성경에서 의인 혹은 사람의 의에 대해 말할 때 "의"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결국 사람이 언약에 신실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의"라는 말은 언약 상대방을 향하여 자신의 언약적 의무를 다하는 언약적 신실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바울이 말할 때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와 공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두가지로 인상갚게 소개하는데 첫째는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인데 그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인데 그 속에 자비(은혜)와 공의(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자비(은혜)와 공의(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롤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율법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나타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아예 그 자비와 공의의 화신으로 오신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따라서 세상에 오신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의 화신임을 단적으로 증거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와 고의는 완전히 실현되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그리스도는 한 인격에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신 분으으로서 영원히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영원한 신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신인으로서 죽으셨고 신인으로 다시 살아나셨으며 신인으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신인으로서 다시 오실 것이니 그는 영원토록 신인으로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의 실체이며 언약의 화신이신 것이다.
이렇게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으로 연합되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뗄레야 뗄 수 없는 언약관계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언약적으로 연합되어 영원히 하나의 인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창조목적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히 하나가 되어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바로 구약에서 수없이 반복하여 말씀하신 바대로 하나님이 사람중에 행하여 사람의 하나님이 되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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