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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2014-06-03 18:18:39


  성경이 말하는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물론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명백하다. 성경의 교회의 개념은 신약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구약에서 출발하므로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생각할 때 우리는 구약에서 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구약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교회란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일 것이다. 그러니까 구약적 맥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약적 의미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란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의 씨중에서 야곱의 후손들을 택하여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구약적 경륜의 교회를 만드신 것이다. 이렇게 교회의 창조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지,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들과 미리 상의하시고 협력하신 것이 아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경우, 그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교회란 가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도 아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나자 마자 이미 가정의 구성원이 되듯이, 구약의 교회도 동일한 것이다. 이렇게 구약적 맥락에서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천부적인 것이지,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약적 교회는 어떠한가? 신약적 교회의 출발은 물론 구약적 교회이다. 왜냐하면 신약적 교회를 태동시킨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모두 구약 교회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약의 교회는 구약적 교회의 토대위에 , 그 밀접한 연관성 속에 서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적 교회에서 그 구성원이 되는 것이 구성원의 선택과 관계없이 천부적이었는데 신약적 교회는 어떠한가? 우리는 신약적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혈통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알고 있고 그렇다면 신약적 교회는 구약적 교회와는 달리 천부적이거나 자연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오직 택하신 자에게만 이 선물을 주신다는 성경의 증거는 신약 교회 역시 구약교회와 동일하게 그 구성원의 되는 것이 본질상 천부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교회의 본질은 동일하다. 교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만드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사람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지 않다. 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원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리적인 교회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 교회는 원리적 교회와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이다. 현실적 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섞여있고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교회도 원리적 교회의 토대위에 서 있기 때문에 현실교회를 규율하는 근본 원리는 원리적 교회와 동일할 수 밖에 없다. 이 말은 현실교회에서 알곡과 가리지를 분별하려는 노력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교회의 구성원됨이 천부적인 것을 인정하고 현실적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 공동체 없는 원리적 공동체는 결국 비역사화되고 추상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결국 때가 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가정의 구성원이 한 식구라는 혈연의식 때문에 서로 희생하며 공동체를 이루려 하듯이 교회도 우리는 주어진 현실 공동체속에서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진실된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진력하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것 자체가 교회의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저 인간 공동체를 이루라고 교회를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이루는 이런저런 공동체와 다를 것이 없다. 단지 공유점이 신앙이라는 것만 다를 뿐, 세상 사람들도 공유점을 가지고 여려가지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때문이다. 그러니끼 교회는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 공동체와 달라지는 것이다. 세상 공동체는 사람의 뜻, 그 구성원의 공유된 욕망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지만 교회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교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마다로 그것은 교회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저 교회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교회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자면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경륜적 도구가 되는 것이고 교회 편에서 보자면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회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교회에 의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자기 뜻을 이루시기를 기뻐하셨고 작정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신 것 만이 아니라 교회를 보존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는 보존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며 존재이유이고 교회를 세상의 공동체와 구별하는 준거점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먼저 우리는 신약교회의 출발점인 구약 교회를 생각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구약 교회를 만드신 목적은 한마디로 말하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시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 땅을 가나안 족속들에게 빼앗아서 이스라엘에게 주신다는 의미인데 왜 그렇게 하시려고 한 것일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가나안 족속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아니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그 땅을 차지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땅이 그들의 죄악으로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쫒아내고 이스라엘에게 주셔서  그 땅을 새롭게 하시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족속의 더러운 짓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율법에 전적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그 땅은 새롭게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주신 땅을 다스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가나안 땅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구약의 교회를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으며 첫사람 아담에게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는데, 그 권세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전제되어 있고 선악과 금령은 그것을 보여준다.  요약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 창조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땅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을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곳에서 이루라고 하신 것이고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이루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약적 교회의 사명이라면 이 사명은 구약적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창조목적, 곧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의 사명과 목적도 동일하게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를 이루는 방식은 구약과 동일하다. 다만 공간이 가나안 땅이라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며 하나님나라를 이룰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모든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는 차원이 달라졌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과 역사를 다스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것이 바로 창조목적이며 이것이 구약 교회의 사명이었고 또한 구약 교회를 이어받은 신약의 교회의 목적이고 사명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사명을 교회에 맡기셨고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길 기뻐하신다. 비로 이 목적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고 우리 죄를 사하심으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진실된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일이 우리가 힘써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그런 현실 공동체가 없이는 역사 가운데 하나님나라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2014-11-22 16:52:39


  교회의 기원은 구약의 시내산 언약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의 총회에서 찾아야 한다. 여기서 총회는 히브리어로 "카할"인데 그 총회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는다. 신약에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를 톹하여 새로운 사람들과 새 언약을 맺으신다. 이렇게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치하는 새 이스라엘이 되는데, 이 새 언약의 공동체, 새 이스라엘이 바로 교회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카할"을 칠십인경에서는 "에클레시아"로 번역하였고 이것이 바로 교회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은 모든 백성들을 포함한다. 이것을 우주적 교회 혹은 보편적 교회(universal church)라고 부른다. 보편교회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서 역사적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 지역교회(local church)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런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경적 정의에 의하면 교회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부름받은 사람들 즉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은 어떤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로 교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개개인이 교회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루는 공동체가 교회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형제자매들의 밀접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분열된 것을 하나로 만들고 파괴된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한데 모아서 온 우주의 평화를 만드는 선도적 공동체로 만드신 것이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교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에 각종 필요한 은사를 주셨다.

 

  성경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라고 말하는데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매우 복합적이 유기체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고 궁극적인 리더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의사결정이나 행동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다른 어떤 활동보다 성경을 알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교회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머리됨을 인정하는 교회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분별한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가 명하신 것을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행할 뿐이다. 그것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몸된 교회가 할 일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입양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셨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이 교회에 주어진 것이다.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만찬은 교회의 구성원이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공동식사이다. 우리가 서로 영적인 가족이 되었다면 실제 삶에서도 가족다운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형성된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가족다운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성취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길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는 모델하우스와 같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와 그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의미한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신 하나님나라 선포를 통하여 탄생하였다. 하나님나라는 그 나라를 드러낼 백성을 창조하는데 그것이 교회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현재 미리 보여주는 종말론적 공동체인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이 세상의 풍조를 본받지 않는 것이다.(롬12:2) 이 시대의 풍조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부와 권력의 추구이다. 그것은 구약 바알신앙의 핵심인 풍요와 다산의 현대판 버전이다. 하나님이 중시하시는 가치는 부와 권력이 아니라 정의, 공평, 평화, 약자보호 같은 것이다. 이렇게 살면 교회는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 사람들은 세상의 나그네와 거류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삶은 세상과 달라야 한다. 지금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이 "다름"을 성실했다. 그래서 더더욱 교회의 본질을 다시 회복하고 참된 교회를 맏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교회의 위대함을 웅변적으로 증거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속에서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만드신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예수님인 이 땅에서 자신의 일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다른 어떤 모임이나 조직도 만들지 않으셨고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남기셨을 뿐인데 이것이 바로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공동체이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나님의 고귀한 희생으로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고 위임받은 공동체이다. 예수님이 시작하신 그 일을 이어받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다.

 

  로마 가톨릭은 교회의 기초가 베드로라는 개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베드로의 사도권을 계승하는 로마 주교가 교회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기초는 베드로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베드로의 바른 신앙 고백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교회의 정체성의 핵심은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나아가 그리스도가 가르친 진리의 말씀이 교회의 행동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성경의 원칙에 입각해서 세워지고 운영되지 않는 교회는 스스로 기초를 허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란 말은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소유권과 리더십은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목회세습의 기저에는 교회는 자기 소유뮬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렇다면 참된 교회가 가진 특성은 무엇인가? 첫째는 통일성(ONENESS)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하나됨에 대한 분명힌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됨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이다. 둘째는 거룩성(HOLINESS)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세상에서 구별된 공동체이다. 교회는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샛째는 보편성(CATHOLICITY)이다. 참된 우주적 공동체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포괄적인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도 모든 사람을 포괄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도성(APOSTOLICITY)이다. 사도성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치뫄 사도들의 신앙과 증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바르게 믿고 힘써 실천할 때 교회는 사도의 전통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참된 특성을 가진 교회야 말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사명

2014-11-22 18:18:30


 

  교회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모이게 하신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우리 인간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려고 부르신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본질,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받아 하나님나라의 복음으로 변화되어 세상으로 파송받은 공동체라는데서 부터 교회의 사명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다음 네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여 성장시키는 일이다. 교회는 서로 가르치고 도우면서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성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성장은 전인격적이다.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령까지 자라가는 것이 우리의 성장 목표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장은 공동체에서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 공동체로 보내시고 배우고 훈련받게 하신다.

 

  둘째는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다. 신약성경은 교회 지체들의 바른 관계를 권면하면서 서로 사랑하라. 서로 받으라, 서로 발을 씻기라, 서로 용서하라, 사로 짐을 지라, 서로 종노릇하라... 등등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이는 교회 구성원간의 상호 관계를 바르게 이루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명령을 잘 지키기 위해서 교회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예배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함께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코이노니아란 말은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각자의 참된 성장도 가능하고 교회의 사명도 함께 협력하여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하우스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맛보게 하는 모델하우스이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이 바로 교회가 대안 공동체, 대안 사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공동체 형성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도 공동체 형성을 포기할 자유는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셋째는 교회는 문화명령을 수행하는 하나님나라의 전진기지이다.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 비전이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고 보여주어야 하는 동시에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어 하나님나라가 편만하게 확장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하나님의 원리가 인정되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교회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 일은 방대한 일이므로 지역교회나 특별한 단체가 서로 협력하면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문화명령과 관련되어 특별히 사람을섬기는 사역이 중요하다.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 섬김 사역은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사회봉사(social service)이다. 이 일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는 사회활동(social activity)이다. 사회봉사로 부터 사회활동의 필연성이 나온다. 교회는 세상 모든 질서가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기초위에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왜곡되고 불의한 구조를 분별하고 개선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앞에 바로 세워지기를 원하는 교회라면 이 사명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섬김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교회가 이 사역을 이어받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교회를 세상으로 파송하신 것이다.

 

  네째는 복음 전파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는 증거 공동체이다. 부활 후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교회에 복음 전파의 대사명을 주셨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서 그가 전한 하나님나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러니 이 증거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하는 증거이다.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핵심적인 사명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유일한 사역은 아니다. 교회는 주님이 맡겨주신 다양한 사명을 모두 감당하여야 한다. 이 다양한 사명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므로 어느 한가지만 잘한다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육이 부족하면 복음전도도 잘 할 수 없게 되고 세상을 섬기는 일도 약화된다. 복음저도가 약화되면 교회는 위축되고 문제가 발생하고 성장을 멈추게 된다. 또 섬기는 사역을 잠 감당하지 못하면 복음 전도도 막힌다. 교화가 사명에 충실할 때 교회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게 되며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해주신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교회가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참된 비결이다.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성도들에게 은사, 곧 영적 선물(spiritual gift)을 주신다. 성경은 다양한 은사의 목록들을 열거한다.성령의 은사는 한두 가지로 제한되지 않는다. 성경에 열거되지 않은 은사들도 얼마든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은사에는 초자연적 은사도 있고 자연적 은사들도 있는데 은사가 초자연적이냐 자연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은사들을 사용하는 목적과 태도가 중요하다. 어떤 은사를 누구에게 주는가는 성령의 주권으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은사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은사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모든 은사가 동일하게 가치가 있고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다. 다양한 은사들이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다. 은사를 주시는 첫번째 목적은 성도의 성장이다. 은사를 받은 사람이 은사를 활용하여 교회를 섬길 때 자신도 성장하고 교회도 유익을 얻게된다. 그러나 은사를 받았다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성숙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은사를 오해하고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다. 고란도 교회느 이런 사례를 잘 보여준다. 영적 성숙은 은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잘 사용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데 있다. 은사의 더 근본적인 목적은 개인의 유익보다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각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들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좋으며 필요한 은사가 채워지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사를 받는 것보다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은사가 제대로 사용되지 않을 때 그 은사는 오히려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초자연적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 은사를 가지고 자기를 높이거나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또한 은사를 받고도 자신의 은사를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는 사람도 있다. 은사는 하나님의 서선물이므로 감사해야 하며 감사의 진정한 방법은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다양한 은사를 주시므로 교회는 은사를 중심으로 사역해야 한다. 특히 교회 일꾼을 세우는데 은사를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길이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은사와 무관하게 일을 맡겨서는 안된다.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사역에 필요한 은사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은사를 가진 사람을 찾고 검증하여 직분을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2014-12-13 20:43:49


  성경에서 교회의 기원은 구약의 성막제도에서 찾아야 할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성막제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제도가 바로 성막제도였다. 그래서 성막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지성소가 있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가 있었다. 그러니까 언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일상적으로 만나서 언약적 삶을 나누는 것이 성막제도였던 것이다. 

 

 성막제도에서 중요한 것이 제사제도였다. 제사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언약의 두 당사자간의 관계를 유지, 회복, 발전시키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언약의 약한 당사자인 사람으로 인하여 언약관계는 위기에 처할수 있기 때문에 제사제도는 성막제도에서 힝상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성막제도의 종교적 의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가시화한 것이다. 일종의 구약적 성육신인 셈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하나님이 사람가운데 오셔서 장막을 치는 것에 비견하였다. 그러나 성막에는 하나님의 임재만 있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람의 임재도 있으니 곧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인 것이다. 그러니까 두 언약당사자의 임재 그리고 만남,이것이 성막제도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성막제도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혁명적으로 바뀌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성전으로 지칭하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성전의 파괴와 다시 세움으로 비견하였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성막제도에서 지성소로 상징된 하나님의 임재가 현실화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막제도의 핵심에는 하나님의 임재만 있는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임재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음으로 신약의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민이 되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그런데 성막제도에서 두 언약당사자가 임재하는 목적은 서로 만나서 친밀한 언약적 삶을 함께 누리는 것이었고 이것을 위해 제사제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 만남과 친밀한 관계누림이 구약과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신자 개인과 공동체에 내주하시는 성령이다. 구약의 제사제도보다 더 탁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신자 공동체에 내주하심으로 신자 공동체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 신자공동체에 내주하심으로 언약의 두 당사자의 만남과 관계누림이 완벽하게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는 구약의 성막제도와 제사제도가 추구하던 바를 완전히 성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넉넉히 유추할 수 있다. 구약교회의 양대 기둥이 성막제도와 제사제도였고 그 목적은 언약당사자의 만남과 친밀한 관계누림이었는데 이것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임재로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성도의 임재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 두 임재의 만남과 관계누림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나 봉사등 그 어떤 활동이라도 교회의 이 본질과 목표를 이루는 일에 기여하여야 하며 이것을 떠나서는 무의미할 것이다.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그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그 문들위에 써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안에는 성전이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친히 성전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상 언급한 교회의 본질과 목표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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