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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속죄[贖罪]와 대속[代贖]의 의미

속죄[贖罪]와 대속[代贖]의 의미

2014-11-16 18:16:14


 

  속[贖]한다는 말의 원래 의미는 포로나 노예가 된 사람을 그 주인에게 대가를 치르고 다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말은 종이나 노예를 다시 사기 위한 '몸 값'과 관계가 있으며, 또한 '자유를 준다', '해방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영어로는 redemption 이라고 하는데 되찾는다. 다시 무른다. 다시 사들인다 도로 찾는다. 회복한다, 이런 의미이다. 비슷한 뜻으로 atonement 란 단어도 사용하는데 이것은 보상하다. 댓가를 치르다. 배상하다. 이런 의미이다.  고대에는 전쟁으로 포로로 잡히면 노예로 팔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에 몸 값을 배상해야만 노예에서 풀러나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오늘날도 법을 어기면 범법자나 범죄자가 되어 그에 상응한 벌금이나 형벌을 받아야만 풀려날 수 있는데 여기서 죄에 상응한 댓가를 치르고 자유를 얻는 것이 바로 죄를 속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속죄 [贖罪: redemption] 란  죄를 속하는 일 즉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하여 그 댓가를 치르고 그 책임이나 속박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일을 말한다. 죄를 속하기 전에는 즉 죄에 상응한 댓가를 지불하기 전에는 그 죄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속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속죄를 이야기 할 때는 이미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죄의 속박아래 놓여 있다는 근본적인 전제가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범죄하였고 죄인이며 죄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예외없이 모든 인간은 속죄가 필요하다.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이다. 

 

 대속[代贖, atonement redemption] 이란 말의 의미는 "속죄"를 하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속죄를 하는 것이다.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자기 몸값을 지불하고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예나 포로는 스스로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누군가 그를 대신해서 몸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누군가 대신 그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속죄하는 것을 "대속"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속죄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인간은 그 죄를 스스로 속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은 대단히 절망적인 인간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속죄의 유일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쁜 소식, 복음이다.

 

  복음은 죄인이지만 스스로 속죄할 수 없는 절망적인 인간에게 속죄의 길을 제시하므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복음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스스로 속할 수 없는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속죄하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여기서 대속[代贖,]의 개념이 발생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준비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이고 이것이 바로 절망적 인간에게 임하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두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대속적 죽음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당해야 하는 죄의 댓가를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으로 대신 치루셧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의 댓가는 죽음인데 그 죽음을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값을 치루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속죄를 그리스도의 죽음에만 국한시켜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은 속죄의 의미를 죄의 용서라는 좁은 범주로 보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속죄는 죄에 상응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고 그 다음은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의 결과로 모든 인간에게 임한 죄의 지배인 죽음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것 처럼 그리스도는 대속적 부활을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우리의 죄값이 대신 치루어졌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적 부활로 우리는 사망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망의 권세를 이긴 것이고 그 권세에서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된 것 처럼 그의 부활에도 연합된다고 말하며 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고 말한다. 대속적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된 것이며 대속적 부활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죄를 말할 때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속죄란 단순히 죄의 댓가를 지불한 것만이 아니라 죄의 지배와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을 함께 의미히기 때문이다. 성찬 예식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며 그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찬 예식에서 떡과 포도주로 상징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우리가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우리가 참여함을 기념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대로 성찬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도 함께 기념하는 것이어야 한다.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뿐 아니라 또한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은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죄의 지배로 부터의 해방이요 자유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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