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 롯의 선택
Tolle Rege/창세기
2011-05-05 13:57:48
롯은 아브람과 여러면에서 비교가 되는 존재이다. 아브람이 믿음에 성공한 사람이라면 롯은 믿음에 실패한 사람이다. 성경은 롯을 통해서 아브람과 동일한 출발을 하였을지라도 결국 믿음의 여정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잇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롯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눈에 보이는 물이 넉넉한, 그래서 양과 소를 기를 수 있는 요단들을 택한 것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마음에 이해가 되는 그런 결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불순종의 길인 것을 롯의 경우는 잘 보여준다.
그러나 롯에 대한 아브람의 제안, 즉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현실, 자기 생각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겠다는 아브람의 믿음을 보여준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나라의 약속을 확인하여 주신다. 곧 씨의 약속과 땅의 약속이 그것이다. 이후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바 이 두가지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고 그것이 이루어 지기 위하여는 계속적인 순종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순종에 실패하여 땅을 잃어 버리고 겨우 그루터기처럼 남은 소수의 씨만 보존할 뿐이다. 이렇게 아무 희망이 없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메시아를 대망하였고 그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인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종함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는 이 진리는 창조시부터 불변하는 영원한 진리인 것이다.
13장을 통해서 믿음과 순종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순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삶의 현실 가운데 순종없이는 믿음은 단지 망상일 수 있는 것이다. 순종없는 믿음이 거짓이듯이 믿음 없는 순종은 위선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라는 야고보의 가르침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 율법과 행위의 이원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추기 2011. 11. 19
롯이 아브람을 떠난 이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의 약속과 씨의 약속을 해주셨는데 이는 12장에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위대한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신 것이다. 이는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2가지 요소인 하나님나라의 백성과 하나님나라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나라의 이 두가지 필수요소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브람의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을 하셨지만 이것은 아브람의 믿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지 아브람의 믿음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맏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며 더 본질적으로는 약속을 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인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악과 금령을 통해서 아담에게 가르치려고 하셨던 것인데 이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순종의 의미를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씨의 약속과 땅의 약속을 하신 이유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목적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하시고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는데 이것은 아브람에게 하신 씨의 약속과 땅의 약속과 일치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은 다른 것이 아니라 창조목적의 회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실패한 것은 씨의 문제도 아니고 땅의 문제도 아니었다. 인간은 실패한 이후에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만물을 다스리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 번성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만물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제 아브람에게 가르치시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담이 선아과 금령을 통하여 배워야 했던 교훈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나라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신 것이고 이브람은 그 가르침을 잘 받아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추기 2014. 4. 11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단번에 거부가 되었지만 애굽에 머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니의 약속은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지지 애굽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으로 돌아와서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아브라함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체였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롯도 복을 받았고 그의 소유도 많아졌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치 못하였다고 말한다. 결국 롯은 아브라함을 떠났고 그 결과 하나님의 복으로부터 멀어졌다. 왜냐하면 롯은 하나님의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을 떠났기 때문이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그가 믿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면 아브라함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요단들을 택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금 약속을 상키시켜 주신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땅의 소유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땅을 채울 아브라함의 후손도 티끌과 같이 많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헤브론에 머물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다.
창세기 13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0:48:59
창세기 13장
롯이 아브람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도록 하나님은 정하셨는데 롯이 아브람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복을 떠나는 것이었다. 롯은 요단지역의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고 그 땅을 택했지만 아브람은 아무것도 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풍요로운 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롯이 아브람을 떠나 후에 아브람에게 다시금 약속을 상기시키신다. 비록 지금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서 우거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보이는 땅을 아브람과 그 후손에게 주신다는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의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신다는 약속도 해주신다. 그러나 아브람이 이런 약속을 들을 때에 그에게는 땅 한 뙈기도 자식 한 명도 없던 때였다. 그런 상황 속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약속을 하신 것이다. 사실 아브람이 아비 데라가 가나안으로 오려다 포기하고 눌러앉은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온 것도 하나님께 때한 엄청난 믿음이 요구되는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앞이 보이지 않는 낯선 땅에서 힘겨운 삶 가운데 다시 확인시켜준 하나님의 약속은 더 큰 믿음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믿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성취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언 피조세계에 성취되는 것이 바로 창조목적이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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