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정신
2014-10-29 16:03:09
쉬임없이 일해야만 했던 고대세계에서 히브리 민족이 간직하고 있던 안식일 규례는 다신교 세상에서 유일신 사상을 고수하던 것 만큼이나 이스라엘의 독특성을 보여준다. 다른 계명과 달리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안식하셨으니까 이스라엘도 안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식일이 창조의 질서로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안식하신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도 안식을 누려야 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안식일 계명을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경륜을 이루는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안식은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과 만물의 안식으로 아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은 안식년과 희년 정신으로 확대되고 사람의 안식뿐 아니라 동물과 땅의 안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안식일계명의 근거가 출애굽기와 달라진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명의 근거가 달라졌거나 추가된 것이라기 보다는 안식일을 지켜야하는 동일한 근거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경험한 후에 새롭게 해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식일 계명이 창조질서로 주어진 것은 변함이 없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 역사를 경험한 후에는 그 창조질서의 의미가 애굽에서의 구원으로 해석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아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운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에도 구속될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지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신 것이다. 이렁게 보면 창조와 구원은 분리되지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인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실뿐 아니라 창조하신 만물을 보돈하시고 인도하신다. 이것이 섭리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바로 창조하신만물을 보전하시고 다스리는 섭리인것이다. 성경은 창조와 무관한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구원의 목적은 곧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구원이 창조와 분리될 때 그것은 우상이 된다. 창조와 구원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안식일의 정신이다.
안식일의 법정신
2015-05-13 19:27:20
안식일 계명을 중심으로 구약의 법 정신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4계명으로 주어진 안식일 계명은 일주일중의 하루를 특별한 날로 정하고 그 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으로서 아무일도 하지말라고 명한다. 그런데 그 날에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은 물론 종이나 가축 심지어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 계명은 자신이 쉬는 것뿐 아니라 남에게도 일로 부터 해방을 시켜주는 날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 계명이 도덕법이 아니라 사회법인 것을 알 수 있다. 안식일 계명의 근거로는 두가지가 주어지는데, 출애굽기에서는 창조시에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이,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일이 그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니까 안식일 계명은 초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에,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역사에 뿌리밖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창조계획이나 이스라엘 역사 나아가 인류 역사의 지향점이 바로 안식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출애굽기 21장에 나타난 히브리 종에 대한 규례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히브리 사람이 종으로 팔렸을 경우에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브리 사람은 종으로 팔렸어도 영원히 종이 될 수 없고 제7년인 안식년에는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식일 계명의 근거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출애굽기 23장에 나타난 구약의 3대 절기 규례도 안식일 계명의 법정신에 근거하고 있는 바, 구약의 3대 절기는 출애굽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의 지향점이 안식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레위기 23장에는 안식년 규례가 나타나는데, 제7년에는 파종하거나 경작하지 말고 땅도 쉬어 안식하게 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안식년에는 저절로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종들, 품꾼들, 거류자들 그리고 가축과 들짐승들의 식물로 삼으라고 명한다. 여기서 안식일 정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며 그들에게 경제적인 해방을 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안식일 계명은 희년규례로 까지 발전하는데, 이것은 일곱 안식년 곧 매 49년 다음해인 매50년을 희년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희년에는 그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가 공포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팔았던 땅을 되찾고)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된다.(종에서 해방되어 자유민이 된다) 희년은 또한 안식년이므로 팔았던 땅을 되찾고 종에서 해방된 자들이 그 해는 남의 밭에서 난 소출로 살아갈 수 있으며 그 다음 해에는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식년중의 안식년인 희년은 사회법이요 경제법인 셈이다.
구약의 십계명이 신약에도 유효하다면 신약에서 안식일의 법정신을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 것인가? 안식일의 근본적인 정신은 해방 그리고 자유이다. 그렇다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모든 것들로 부터 해방시키며 자유를 주는 일이 안식일 계명을 구현하는 근본 프레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시급한 것이 경제 영역이다. 산업 자본주의는 갈수록 경제적 불평등을 심롸시키며 가난한 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기회를 박탈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제사회적 구조에서 가난한 자들을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일이야 말로 안식일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두번째는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독재 권력에 반대하여야 하며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여야 한다. 이런 경제,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교회는 반대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먼저 안식일의 정신이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라-느헤미야의 신학 (0) | 2023.05.07 |
---|---|
바울이 말하는 믿음과 은혜 (0) | 2023.05.07 |
종말론적 구원관 (1) | 2023.05.07 |
역대기의 신학 (0) | 2023.05.07 |
이신칭의 무엇인가? (0) | 2023.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