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소고

이신칭의 무엇인가?

이신칭의 무엇인가?

2014-10-22 01:30:40


 

  종교개혁의 신학적 슬로건이며 오늘날까지 개신교의 중심적 구원론인 이신칭의란 무엇인가? 이신칭의란 말 그대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뜻인데 우리는 여기서 믿음이란 무엇이며 또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말을 강조할 때 반드시 전제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혹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말은 믿음이란 허공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주어지고 그 약속이 성취될 것에 대한 확신, 나아가 약속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 이것이 믿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약속은 하나님 편에서 먼저 주어지고 아무 조건없이 주어진다는 면에서 언제나 은혜인 것이다. 성경은 이신칭의를 말하면서 이신칭의의 대표적 사례로서 아브라함을 드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고, 믿을 수 없는 현실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신 약속은 아브라함의 공로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면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그런데 의로 여겼다는 뜻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의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관계를 전제하고 있는데 관계를 가진 쌍방이 상대방을 향하여 그 관계에서 요구되는 관계적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의롭다 여기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의무를 다 했음을 하나님이 인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는데 약속이란 당연히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에 대한 정당한 반응으로서 믿음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은 아브라함 편에서 하나님을 향한 관계적 의무를 다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다.

 

   바울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과연 무엇인가? 이미 말했듯이 의란 상대방을 향하여 관계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향하여 약속을 지키심으로 하나님 편에서 관계적 의무를 다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바대로 때가 되면  메시아를 보내어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구원의 약속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메시야를 통해 나타난 소식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당연히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믿는 것은 사람편에서 하나님을 향한 관계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이 바로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길인 것이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면 복음을 믿는 믿음에는 사람의 의가 나타난 것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 편에서 언약적 의무를 다하신 것, 즉 언약에 신실하신 것이라면 복음을 믿는 믿음에 나타난 사람의 의는 사람편에서 언약적 의무를 다한 것 즉 언약에 신실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근본적으로 미래적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렇다면 약속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사람의 믿음도 당연히 미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약속과 함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미래적이라는 말은  믿음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망으로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믿음은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의롭다함을 받는 것, 곧 칭의 역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칭의는 과거의 단회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진행되며 종말론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하며 선 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말론적 구원관  (1) 2023.05.07
역대기의 신학  (0) 2023.05.07
성경이 말하는 "의"의 개념  (0) 2023.05.07
왕정기- 솔로몬과 분열 왕국  (0) 2023.05.06
사사제도와 왕정제도  (0) 202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