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의 신학
2014-10-24 18:25:34
역대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그 날들에 일어난 일"이다. 역대기는 히브리 성경의 성문서(케투빔)에 속하며 맨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다. 역대기가 히브리성경 맨 마지막에 위치한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역대기는 주전 5세기 중업에서 4세기초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아마도 느헤미야가 귀환한 시대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당시 귀환공동체는 아주 미약하고 보잘 것이 없었지만 이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역사관이나 기대가 역대기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 당시는 이미 열왕기가 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귀환 공동체가 다른 역사서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담으로 부터 시작되어 길게 9장까지 이어지는 역대기의 족보 이야기는 인상깊다. 족보 이야기에는 야곱의 12자파의 족보를 중심으로 되어이는데 여기서 스불론과 단 지파가 제외된 것이 흥미롭다. 아마도 이 시대에는 미약한 이 두 지파는 다른 지파로 흡수되었을지 모른다. 유다와 레위 지파에 대한 기록이 많은 것으로 보아 다윗과 성전이란 주제가 족보 이야기의 신학적 촛점인 듯 하다. 9장 부터는 귀환 공동체의 명단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결국 앞의 긴 족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귀환 공동체의 뿌리를 말하려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족보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아브라함과 아담인데 이는 귀환공동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거슬러 올라가 온 인류의, 대표인 아담을 잇는 정통성을 가진 공동체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긴 족보 이야기가 끝난 후 바로 왕정기의 시작을 언급하면서 사울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다윗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울의 실패를 통하여 다윗통치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11장부터 다윗의 통치를 말하면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열왕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분명 다윗의 통치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역사 서술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열왕기의 기록이 사실에 근접할 것이고 역대기는 특정한 목적으로 사료들을 선별하고 연결한 것이리라. 역대기는 북왕국의 역사를 생략하고 남왕국이 역사만 다르면서 남왕국의 출발인 다윗의 통치가 온 이스라엘에 미쳤다고 말함으로써 귀환 공동체가 다윗의 통치를 계승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역대기의 신학은 귀한 공동체의 뿌리인 유대왕국의 역사를 온 이스라엘, 온 인류의 역사의 중심으로 보려는 것인 듯하다. 역대기 기자는 사무엘과 열왕기의 역사를 당시 귀환 공동체의 기대와 소망을 반영하는 관점으로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통치에 대한 기록은 11장 부터 시작하여 21장까지 길게 기록되고 있는데 그 기록의 대부분을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긴 일과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일에 할애하고 있다. 21장의 다윗의 인구조사 사건에 대한 기록도 사무엘하의 그것과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역대기는 다윗의 범죄와 그 결과에 대하여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성전터를 준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인구조사 사건은 22장부터 29장을 거쳐 역대하 7장까지 이어지는 성전 건축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다윗의 통치에 대한 이야기의 중심도 결국 성전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이어지는 역대상 22장부터 역대하 7장까지는 전부 성전 건축의 준비 및 건축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역대기가 원래 상하로 구분되어있지 않은 한권의 책임을 감안한다면 결국 역대기의 가운데에 성전 이야기가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은 역대기 신학의 중심주제가 성전이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성전에 대한 묘사도 열왕기보다 훨씬 자세하다.
성전 이야기가 끝나는 역대하 10장부터는 남유다 열왕들의 통치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신속하게 진행된다. 역대기에서는 남유다 왕들을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특히 열왕기와 달리 산당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열왕기에서 악의 상징이었던 므낫세 왕의 회개 사건을 언급한 것도 특이하다. 유대인들이 전기 예언서로 분류한 여호수아, 사무엘서, 사사기, 열왕기서를 보통 신명기 역사서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역사서들이 신명기적 관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신명기 역사서와 달리 역대기나 에스라 느헤미야는 신명기 역사서와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역대기적 역사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구약 역사에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의 두가지 역사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열왕기가 6세기 중엽에서 후기에 기록되었다면 이는 포로기중이거나 포로기 직후일 것이다. 열왕기는 지난 역사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하면서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과거청산인 셈이다. 이 시기가 포로귀환 직후라고 본다면 재건에 집중해야 할 귀환공동체가 과거청산부터 먼저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포로 귀환 당시에는 포로로 안끌려가고 팔레스타인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귀환공동체간에 갈등이 있었다.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인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아 모두 귀환공동체의 정통성을 강조하지 남아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없다. 에스라 느헤미야 개혁에서 남아있던 자들이 배제되면서 이들이 개혁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에스라보다 13년이나 지나서 느헤미아가 귀환할 때도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에스라의 개혁이 많은 방해를 받아 지지부진 했음을 짐작케 한다. 에스라 이전의 학개, 스룹바벨의 시기에도 개혁의 흔적이 별로 없는 것이 이런 이유일 것라면 귀환공동체는 재건은 결코 쉽지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환공동체는 과거를 청산하고 남아있던 자들을 재건활동에서 배제하면서 어려운 길을 갔으니 이것은 당시 귀환공동체의 무서운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열왕기와는 다른 역대기라는 역사기록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열왕기가 과거 청산을 목적으로 하였다면 역대기는 역사의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회복하고 돌아갈 지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역대기가 제시한 그 지점이 바로 성전이 중심이 된 공동체 곧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였던 것이다.
[추기] 2014. 11. 10
아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대기의 족보는 창세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아마도 창세기를 의식하고 이 족보를 기록하였을 것이다. 창세기가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듯이 역대기 족보도 귀환한 이스리엘의 기원과 그 정통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역대기의 강조점은 성전이다. 그래서 북왕국의 역사는 언급하지 않는다. 성전의 관점에서 북왕국의 역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기는 온 이스라엘이란 말을 언급하면서 역대기의 관심이 분열왕국이 아니라 통일왕국임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유대와 베냐민을 중심으로한 귀환 공동체가 남조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계승한 공동체라는 의미이다. 역대기는 뚜렷한 역사관을 가진 역사서술이다. 그래서 사료를 사관에 따라서 편집하고 배열한다. 신명기계 역사서가 언약체계에서 응보를 보여준다면 역대기는 인과관계적 응보사상을 보여준다.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는 왕의 덕목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역대기 20장 20절 "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는 말은 역대기 신학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 아만 동사는 사역형으로 쓰면 "신뢰하다"라는 의미가 되고 재귀형으로 쓰면 "견고하다"는 의미가 된다. 신뢰하다와 견고하다는 두 의미가 동일한 동사에서 나온 것이다.
역대기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로 이스라엘 공동체는 예배, 신앙공동체로 묘사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과 제사제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귀환 공동체가 왕이 없는 피지배국으로 살아가야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역대기는 정치적 통치자로서의 왕권을 강조하지 않고 성전과 제의를 강조한다. 왕 없는 시대를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 삶의 비전을 역대기는 제시하고 있다. 역대기의 시대는 제2성전 시대(2nd temple period)이다.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 혹은 후기 유대교 시기(Late Judaism period)라고도 하는데 이런 표현은 편향적 표현이다. 제1성전인 솔로몬 성전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제2성전은 주전 538년에 돌아온 1차 귀환공동체가 주전 516년에 완공하였는데 주후 4년경 헤롯대왕이 대규모 증개축을 하고 다시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된다. 비로 이 시기를 제2성전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역대기는 제2성전기의 신학적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이 시기는 귀환을 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시대, 절망과 실망의 시대이며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좁아진 일상의 생존만 남은 시대였다. 이 시대와 씨름한 신학적 작업이 역대기, 제2이사야, 소선지서이다. 다윗 솔로몬을 예배 인도자로 묘사한 것은 왕이 없던 광야 시대처럼 살자는 것이고 야훼 예배가 중심이 된 공동체에서 소망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역대기는 신학이 현실에 대한 대답이며 현실의 도전에 대한 신앙적 응답임을 잘 보여준다.
'나의 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식일의 정신 (1) | 2023.05.07 |
---|---|
종말론적 구원관 (1) | 2023.05.07 |
이신칭의 무엇인가? (0) | 2023.05.07 |
성경이 말하는 "의"의 개념 (0) | 2023.05.07 |
왕정기- 솔로몬과 분열 왕국 (0) | 2023.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