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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십계명의 신학

십계명의 신학

2014-07-21 01:08:26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구약의 의식법, 절기법등은 신약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폐지되었지만 도덕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며 특히 십계명을 신약의 신자들이 그대로 준수하여야 할 계명으로 존중한다. 그래서 소요리 문답에서는 십계명을 하나 하나 들어서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십계명에 대하여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삽계명의 근본적인 정신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본다. 그래서 첫번째 4개 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으로 두번째 6개 계명은 사람 사랑에 대한 계명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십계명의 모든 계명이 관계적 계명이라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규율하는 계명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규율하는 계명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정의라는 말로 번역되는 "체다카"가 관계적 정의를 의미하는 것에 상응한다. 체다카는 언약관계를 가진 상대방이 언약 상대방을 향하여 언약적 의무를 다함으로써 바른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 십계명에서도 바로 체다카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규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십계명이 하나님과 출애굽 이스라엘 공동체가 시내산에서 공적인 언약을 맺은 이후에 주어진 것을 보아도 더욱 그러하다.

 

십계명에서 가장 먼저 주어진 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이스라엘이 자기 앞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일신으로 계시된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이 취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계명이다. 이 계명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며 나아가 유일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 자체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신명기의 "쉐마" 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 즉 유일하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한 분 즉 유일하다는 것은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뿐이시라는 관계적 유일의 의미이므로 이 본문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반대하는 본문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할 점은 하나님과의 사람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이어지는 2-4 계명과 이 1 계명과의 관계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각각의 계명을 독립적인 계명으로 간주하여 왔지만 그것은 계명간의 긴밀한 관계를 간과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두번째 계명인 형상을 만들어 예배하지 말라는 계명,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3계명, 그리고  이어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4계명은 모두 첫번째 계명과 긴밀하게 관련되는 것이다. 결국 2-4계명은 1계명에 대한 구체적인 계명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1계명은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계명인데 이 계명을 어떻게 실제 삶에서 적용할 것인가를 제시한 것이 2-4계명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법적 측면으로 볼 때 1계명이 총론이라면 2-4계명은 각론이 되는 셈이다.

 

모든 법은 준수 가능해야 한다. 이 말은 법은 추상적이거나 일방적이면 안되고 그 준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성을 가져야하고 특별히 법이 기능하는 시대적, 환경을 고려하여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이 근본법이 구체적으로 준수 가능한 방식으로 제시된 것이 2-4계명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2계명은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인데, 당시에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신을 섬기는 방식은 반드시 새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었다. 고대 근동에서 이것은 거의 예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신을 섬기는 방식과 구별되어야 만 하는 것이다. 이런 구별된 예배방식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었다.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하는 것인데 이 계명 역시 1계명을 구체화한 것으로서 당시 이방인들이 자기들이 만든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예배 방식을 금함으로써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이방신들과 구별하여 섬기게 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그 다음에 안식일 계명인 4계명을 살펴보면 안식일 계명의 요점은 제 칠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일하지 않는 날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방인들은 매일 매일을 고된 노동 가운데 살아야만 했을 것이고 그렇게 고되게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먹고사는 문제에 매여있는 이방인들에게 하루를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 칠일을 정하여 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이 섬기는 이방신들과 구별되는 유일신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방인들은 죽어라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지만 이스라엘은 매주 하루를 일하지 않아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에게 알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방신과 구별되는 유일신이심을 알게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2-4계명이 1계명과 구별되어 독립적으로 주어진 계명이 아니라 1계명을 구체적으로 그 시대의 상황속에서 적용한 구체적인 법이라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십계명을 그대로 우리 시대로 가져오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십계명의 법정신을 가져오되 그것을 우리 시대의 환경에 맞추어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중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