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소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2014-06-18 21:54:49


사무엘상 24

 

사울은 블레셋을 좇다가 돌아오자마자 다윗을 잡으러 간다사울은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이 있는 엔게디 광야로 간다온 이스라엘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다윗이 가는 곳 마다 그의 거처를 알려주므로 다윗은 숨을 곳이 없는 절박한 지경이다.

여기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다윗의 부하들은 이 기회는 여호와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신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고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한다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었는데 이 행위도 다윗에게는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전혀 다른 해석의 문제를 만난다다윗의 부하들의 해석과 다윗의 해석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다윗의 부하들의 해석은 상황에 충실한 해석이었다다윗을 까닭 없이 죽이려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은 하나님이 그를 다윗의 손에 넘긴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그러나 다윗의 해석은 매우 원리적이었다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사울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다윗은 눈에 보이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따라서 판단한 것이다다윗의 부하들이 자기 소견대로 행하였다면 다윗은 자기 소견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자기 소견대로 행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 보이는 상황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고 그 상황 자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을 정의하길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으로 행하는 것이라 한 것이 아닐까?

그동안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고 하나님이 뜻을 보이시면 즉시 순종하였다그는 자신이 억울하게 쫓겨 다니고 있지만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구하였던 것으로 보아서 다윗의 자기가 받는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그러므로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다윗이 사울에게 한 말 같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하여 사울에게 보복하시려니와 자신의 손으로는 왕을 해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베어낸 사울의 겉 옷자락을 내 보이며 자신에게 악이나 죄과가 없음을 증명하려고 하였다자기는 결코 사울 왕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호소하였다그러나 다윗이 궁극적으로 의지한 것은 이런 자신의 호소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시어 자신의 사정을 살피고 억울함을 풀어주시며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시길 간구하였다.

다윗의 호소에 대한 사울의 반응은 그 후의 행동으로 보아서 일시적이었지만 그의 말에서 보듯이 사울은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 나라가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설 것을 인정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권력욕이란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게 된다.

 

 

사무엘상 25

 

사무엘의 죽음은 간단히 언급되지만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의 죽음은 다윗의 등장과 함께 사사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본격적인 왕정시대가 전개되는 신호탄인 것이다.

다윗이 여전히 사울에게 쫓기는 가운데 나발이라는 자에게 식물을 구하였는데 오히려 모욕을 당한 사건으로 다윗은 나발의 집안을 진멸하려는 복수를 하려고 하였다그러나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로 말미암아 나발의 집안은 진멸 당함을 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이야기의 중간에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가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이 에피소드를 통하여 사무엘서의 기자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발이 다윗이 베푼 은혜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모독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으며 다윗이 나발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것은 일견 정당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아비가일의 말에서 보듯이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는 일을 막으신 것이다여기서 아비가일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다윗에게 하는데 이는 아바가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릴 정도로 매우 원리적이다아비가일은 나발의 악행을 용서해주기를 다윗에게 청하면서 용서의 근거는 다윗이 싸우는 싸움이 인간적 복수의 싸움이 아닌 여호와를 위한 여호와의 싸움이라는 것이었다그렇게 다윗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울 때 하나님은 반드시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며 그의 생명을 지키실 것이다다윗은 아비가일의 이 말을 듣고 즉시 그녀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였다.

다윗이 나발에게 복수하려고 한 것은 일견 정당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자기 소견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었다다윗이 가진 무력은 이런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을 위한 것이었다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이 가진 무력을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 되며 특별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무력 사용은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사울이 개인적인 권력욕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무력을 남용하는 것처럼 다윗은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교훈하신 것이다다윗은 잘못을 깨닫고 아비가일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즉각 순종한다이점이 언제나 다윗의 탁월한 부분이다나발의 죽음은 다윗을 모독한 나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으며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아내가 된 것은 다윗에게 주어진 선물일 것이다.

 

사무엘상 26

 

나발사건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시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이야기로 돌아간다어디에 숨든지 이스라엘 안에서는 다윗의 은신처는 즉각 사울에게 보고될 정도로 다윗은 오갈데 없는 절박한 싱황이 계속된다.

 

사울은 택한 자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을 추격하여 십 광야로 내려가 하길라 산 길가에 진을 쳤다사울과 그의 군대가 진영안에서 잠든 가운데 다윗과 아비새가 진에 들어가 본즉 사울은 진영 가운데 누워자고 창은 머리 옆 땅에 꽃혀있었다.

 

지난번 엔디게 광야의 한 굴에서 일어난 것과 동일하게 사울은 무방비로 누워 자고 있었다이 상황을 본 아비새는 역시 지난번과 동일하게 하나님이 오늘 다윗의 원수를 다윗의 손에 넘긴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를 죽이길 청하였지만 다윗은 역시 사울 해치기를 금하는데 그 이유는 이전과 동일하게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으 자를 치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다윗은 덧붙이기를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재판장이신 여호와의 손에 판결을 맡겼다. 그래서 그들은 사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갔다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진 깊숙히 들어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다윗에게 사울을 넘겨준 듯한 상황을 만드신 셈인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이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교훈을 주시려는 것이라고 보인다왜냐하면 왕으로서 가장 주요한 덕목은 상황을 보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다윗은 이 두 번의 사건을 통하여 사울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훈련되고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다시 한 번 사울에게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였지만 그것은 사울에게 어떤 기대를 한 것이 아니라 사울이 자신을 해하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며 저주를 받을 것임을 분명히 선포한 것이었다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사울의 생명을 중히 여긴 것 같이 여호와께서도 자신의 생명을 중히 여기시어 모든 환난에서 구하여 내시길 간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