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와 진실- 헤세드와 에메트
2013-11-18 19:12:15
시편 108편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라고 노래한다. chesed(인자,자비,긍휼,은혜)와 emet(진실,공의,진리,신실)은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계시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에게 인자와 진리를 베푸시는 분으로 계시한다. 인자와 진리는 언약의 원리로서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을 이 언약 원리에 따라서 대하신다. 여기서 인자란 하나님이 언약 백성의 죄를 사하시는 것으로 나타나며 진실은 언약 백성의 잘못을 징계하시거나 혹 언약 백성의 충성에 보상하시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렇게 인자와 진리는 언약적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는 인자와 진리라는 언약의 원리를 따라서 진행되어 왔다.
그렇다면 왜 인자와 진리가 언약의 원리가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창조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계시하였는데 이런 조물주 사상은 다른 종교에도 있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생래적으로 심어져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소개하는 하나님은 단순한 조물주가 아니라 인간을 짓되,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신 분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다른 만물은 물론이고 인간을 지으시되 특별히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신 분이시다. 이것이 성경이 소개하는 기독교의 독특한 신관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이 계시로 부터 성경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성경은 이 계시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인간은 누구인가를 인간 역사의 기나긴 서사(narrative)를 통하여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면 인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인간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이 지적한대로 이 두가지 지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계시에 기초하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신 분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존재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이렇게 인간은 다른 피조물이 하나님과 가진 관계와는 비교될 수 없는 탁월한 관계를 가졌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절대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오직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는 이 계시만이 인간과 다른 피조물을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기준인 것이다. 역사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간의 이 특별한 관계를 기초로 하여 출발하였고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 특별한 관계를 규율하는 원리가 바로 인자와 진리이다. 그러니까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 비로서 등장한 언약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적 존재인 인간사이의 특별한 관계로 부터 출발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제시한 선악과 금령은 이런 진리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에게만 선악과 금령을 주셨는데 그것은 이미 말했듯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선악과 금령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존재이고 그 순종은 자발적이어야 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통치권의 기초는 바로 자발적 순종임을 가르친 것이었다.
선악과 금령에는 만일 불순종할 경우 반드시 죽는다는 엄중한 경고가 덧붙여졌는데 이는 위협이 아니라 불순종 하는 인간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과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이 정하신 사망의 형벌이 어김없이 부과되었고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에게 사망은 피할 수 없는 굴레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실(emet)이다. 인간의 범죄와 잘못에 대하여 정하신 대로 엄격하게 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진실이다. 물론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부정적인 것 만이 아니다. 진실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만일 아담이 순종을 하였다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약속하신 영생과 통치권을 확고하게 하셨을 것인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진실하심이다. 한편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즉각 죽게하지 않으시고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셨으며 벌거벗은 수치를 알게 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나아가 그를 파멸에 빠뜨린 악한 존재를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chesed)이다. 인간의 범죄와 잘못을 용서하시거나 형벌을 완화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궁극적으로 회복시켜주시는 것이 바로 인자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자와 진실로 인간을 대하시는데 그 이유는 오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며 따라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관계를 떠나서 인자와 진실을 논할 수 없으며 다른 피조물에게는 이런 원리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교통을 하시는 분이실뿐만 아니라 인간과 특수한 관계를 가지신 분이심을 전제하고 있다. 이 관계를 떠나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가 없고 동시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 가 없다.
창조시에 시작된 하나님과 인간의 이 특별한 관계가 역사 가운데 펼쳐진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그 가운데 언약이 나타났다.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가진 이 특수한 관계는 어그러지고 훼손되었는데( 말살된 것은 아니다) 그 특수한 관계를 역사 가운데 다시 펼쳐보인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형성하셨으며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타나는 언약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간에 이미 존재하는 특수한 관계의 역사적 반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원리가 바로 자비와 진실이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바로 이 언약원리에 의하여 진행되었으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와 진리의 최고봉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갑자기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언약 역사 가운데 준비되었던 분이며 언약 원리를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나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 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chesde)와 진리(emet)가 충만하더라" 라고 말한 것이다. 사도가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본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은혜와 진리의 최고봉으로 역사 가운데 등장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의 언약백성이 된 모든 신자들과 하나님의 관계도 동일하게 언약 원리인 인자와 자비를 따라서 진행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나 구약의 이스라엘이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동일하다. 다만 아담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형상이고 구약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아브라함과 혈통으로 연합된 자손이었다면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으로 연합된 자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매우 특수한 관계이지만 그것은 전부가 아니고 어떤 목적을 향하여 가기 위한 출발이라고 보아야 한다. 궁극적 목표는 인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삼위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적 존재인 인간이 도달하여야 할 목적지이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을 만드신 창조목적이다. 그리고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졌듯이 하나님과 연합한 인간 역시 동일한 권세를 누릴 것이데 그 때는 더 이상 선악과 금령이 필요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인간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불순종하는 일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삼위일체인가? (0) | 2023.05.01 |
---|---|
구원의 목적 (0) | 2023.05.01 |
성경이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 (0) | 2023.05.01 |
아브라함 언약의 실체 (0) | 2023.05.01 |
아브라함의 믿음 (0) | 2023.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