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
2013-10-13 21:33:48
1. 최초의 죄
성경이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 기독교만큼 죄에 대하여 많이 말하는 종교는 없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죄는 아담의 죄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 최초의 범죄이며 신학적으로는 인간의 타락이라고 말한다. 아담이 범한 죄는 흔히 선악과를 따먹은 죄라고 하는데 사실 선악과를 따먹은 그 행위 자체가 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 행위가 죄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행위를 금하셨기 때문이다. 이 이유 외에는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가 죄가 되는 이유를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죄의 개념이 무엇인지 보게된다. 그것은 죄란 어떤 행위가 아니라 관계적 개념이란 것이다. 즉 하나님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관계에서 죄라는 개념이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라는 개념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지 인간 외에 어떤 존재에게도 죄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인간을 윤리적 혹은 도덕적 존재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표현은 죄의 개념을 윤리나 도덕의 차원으로 축소시키기 쉽다., 사실 윤리나 도덕이라는 것도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모두 관계적 개념이고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이 가진 관계에서 출발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인간이 가진 특별한 관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존재의 출발이 다른 존재와 다르다는데서 발견이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다른 피조물과는 확연히 다르게 지으셨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인간되게 하며 다른 피조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유일한 기준은 바로 이것이다. 이것외에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절대적인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인간은 영장류나 고등동물 정도로 분류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 특별한 관계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이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그 다스림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통치권이었다. 선악과 금령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주신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하여야 할 존재이며 그 순종을 통하여 만물을 다스려야 할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선악과 금령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납득이 되지않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이성으로는 발견될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이 금지하셨다는 그 이유외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이 자신의 이성적 납득에 기초한 조건적 순종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순종은 명령하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신뢰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순종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신 것은 이런 측면에서 선악과 금령과 매우 흡사하다. 납득할 수 없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과활 수 있었던 것이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든 세대에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무조건적 신뢰이며 전적인 순종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성경이 말하는 죄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존재인 인간이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순종의 뿌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 곧 불신앙인 것이다. 결국 죄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죄의 결과
하나님은 선악과 금령을 명하시면서 만일 금령을 범할 경우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 경고는 범죄에 대한 형벌이라기 보다는 범죄의 결과인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이 자연스런 자연법칙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은 비참한 결과임을 말하고 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임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 즉 죄의 댓가는 사망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창조질서가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창조질서가 깨뜨려진 것이다.
죄의 결과가 사망으로 나타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함을 통하여 만물을 다스려야 할 존재이고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인데 이제 순종을 하지 않았으므로 인간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인한 인류의 멸절은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대 사건이다.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인간이 사망의 권세에 지배를 받는 처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간은 사는 동안에도 여러가지 불의와 악을 자행하는데 그것이 소위 도덕적 혹은 사회적인 악이다. 그런 악행은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 죄의 결과로 나타난 죄의 증상들인 것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거두게 되는 악한 열매가 바로 그것들이다. 세상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악행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된 실존에서 나오는 죄의 열매요 죄의 증상들인 것이다.
3. 죄와 구원
죄의 개념을 떠나서 구원의 개념도 성립되지 않는다. 구원은 죄로 부터의 구원이다. 죄 그 자체로 부터의 구원이고 죄의 열매로 부터의 구원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죽어서 심판을 면하고 천당에 들어간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최초의 죄가 보여주듯이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목적을 떠난 것이다. 마땅히 순종함으로 만물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자신의 사명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죄는 인간이 하나님께 빚을 진 것과 같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특별한 지음을 받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인간이 자신이 받은 것을 다 낭비하고 훼손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께 특별하게 받은 것에 마땅히 정당하게 반응해야 할 책임과 의미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은 특별한 관계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단순히 죄의 용서를 받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하나님앞에 마땅히 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서 그 사명을 수행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구원인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목적에서 떠난 것이 죄이므로 구원은 창조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서는 것이다.
4. 죄와 복음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다. 왜 기쁜 소식인가하면 인간을 구원한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죄로 부터 구원하는 소식,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두가지 구성요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속적 죽음이라고 알고 있다. 대속적 죽음이란 단순히 대신 죽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값을 지불한 죽음이란 의미이다. 대속이란 개념은 노예제도를 배경으로한 그림 언어이다. 스스로 노예신분에서 풀려날 길이 없는 노예를 그 값을 대신 지불하고 해방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대속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값을 지불한 죽음, 즉 대속적 죽음인 것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인간의 죄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갚을 수없는 빚을 진 처지에 놓인 상태에 있다. 인간이 스스로 갚을 수 없는 빚을 하나님 앞에 진 자인데 그 빚을 대신 갚아주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그 빚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는 빚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연적인 것이다. 이 길외에 다른 길은 없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어 죽으시는 길 , 이 길외에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다. 만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만으로는 복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인간의 죄의 문제는 반만 해결된 것이다. 인간의 죄의 값은 지불되었을지 모르지만 아직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주어진 것이다. 사망은 죄의 결과이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사망의 권세에 억매이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을 짓누르던 사망의 권세가 깨어진 것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이제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5.죄와 하나님 나라
하나님나라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맞지만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충분히 반영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이미 창세기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이 인긴의 순종을 통하여 다스리는 나라라고 말하여야 한다. 다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나라란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란 바로 창조목적이 실현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인간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히 말한다면 인간은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 주인공이며 하나님의 동역자인 셈이다. 죄, 곧 불순종이란 바로 이 일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는 순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로부터의 구원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러므로 구원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나라이며 창조목적의 실현인 것이다. 하나님나라와 창조목적을 떠난 것이 죄이듯이 하나님나라와 창조목적을 떠난 구원도 없는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2014-06-17 09:18:17
성경 계시의 핵심적인 내용중의 하나가 죄일 것이다. 특히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는 경우에는 죄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왜나하면 구속사적 관점은 성경의 계시가 바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보기 때문이다. 죄가 인간이 처한 모든 문제의 원인이므로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 문제는 어느 하나도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언되고 신약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사역도 바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죄의 뿌리는 선악과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죄라는 말은 가인의 살인사건이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처음 등장한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업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7) 여기서 특이한 점은 죄가 사람이 짓는 어떤 행동이 아니라, 사람을 지배하려고 문 앞에 업드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어떤 세력으로 표현된 것이다. 과연 죄는 인간을 지배하였고 사람이 번성함에 따라 사람의 죄악은 세상에 가득차게 되었다.(창세기 6:5)
세상에 죄악이 가득찬 이유는 사람의 마음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을 하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급기야 하나님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신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은 육츅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를 지은 것도 한탄하시며 그것들도 함께 쓸어버리신다고 말씀하셨다.
도대체 죄가 무엇이길래 하나님은 이렇게 한탄하고 근심하신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비롯한 만물을 쓸어버리신다고 하신 것일까?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죄의 원천이 되었던 선악과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선악과 사건은 단순히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 나아가 모든 창조목적을 거스린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사람을 지으셨는데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려면 마땅히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 선악과 금령은 바로 이것을 명하고 가르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금령을 범하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거스린 것이요 결국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에게 죽음이 선고된 것이다. 죽음은 인간 존재가 의미를 상실했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의 죄에 대하여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신 것은 죄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을 다스릴 인간의 소멸은 동시에 인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할 만물의 존재 의미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뿐 아니라 인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할 피조물도 함께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결국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무릇 생명의 기식있는 육체가 멸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간, 모든 만물을 다 쓸어버리신 것이 아니라 노아의 식구와 짐승들을 남겨두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있어야 하고 인간의 다스림을 받을 짐승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의 죄악이 아무리 관영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창조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따라서 창조목적을 이룰 주인공인 인간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보게된다. 홍수사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노아와 일부 짐승들을 보면 사람의 죄악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결국은 거스리지 못한다는 놀라운 계시를 발견하게 된다.
노아 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사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고 그들에게 계명을 주시고 순종을 끊임없이 요구하신 것은 바로 인간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니, 이는 선악과 금령을 통해 첫 사람 아담에게 요구하셨던 순종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도 아담과 마찬가지고 불순종의 역사를 거듭하였고 급기야 약속의 땅에서 내어쫒기다가 로마의 식민지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준비히신 메시야를 보내셨으니, 바로 예수라는 이름의 그리스도였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였다. 아담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죄에 압도되고 지배되었다. 노아 사건은 일견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도 함께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심판과 구원은 노아 사건의 양면을 이루는데 그 목적은 결국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성육신, 죽으심, 부활과 승천으로 요약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도 심판과 구원의 양면이 있는 것이다. 믿고 회개하는 자는 노아처럼 구원을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노아 사건의 목적이 그러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도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에 국한시켜서는 안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고 오신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구원의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구원은 우상화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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