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총체성 -씨의 복음과 땅의 복음
2013-09-25 11:48:18
1. 아브라함에게 하신 두가지 약속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가지 약속을 하셨다. 그것은 씨와 땅의 약속이었다. 두 약속의 공통점은 아브라함의 현실을 볼 때 매우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란 점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실현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 여기셨다.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신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다. 믿음이란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이 없다면 믿음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두가지 약속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이 두가지 약속이 대한 믿음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믿음이 상호 작용하는 역사가 이스라엘의 역사인 것이다. 믿음은 약속에 기초하고 있고 약속은 믿음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므로 약속이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으며 믿음이 없이는 약속은 성취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약속이지 맏음과 상관없이 일방적이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이 아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을 만든 목적도 동일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지으신 천지를 다스리시길 의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핵심적 요소는 순종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 요체라는 것이다. 약속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주어졌고 그 뜻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구체적 행동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며 사변일 뿐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씨도 땅도 없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씨와 땅의 약속을 하신 것은 단지 아브라함을 불쌍히 여기시어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씨와 땅이 없는 사람이 아브라함뿐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또 단지 그런 이유라면 굳이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까지 부르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아브라함의 본향인 갈대아 우르에서도 얼마든지 씨와 땅을 주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브라함은 이미 자기의 본향에서는 땅을 가진 사람이었을 터인데 그 땅을 버리고 온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씨와 땅의 약속은 결국 아브라함 개인에 대한 복이 아니라 나라를 약속하신 것이다.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민족이 형성되고 그 민족이 거주할 땅이 약속된다는 것은 곧 나라를 약속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이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나라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나라를 약속하신 것이며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 것인가? 당시에 수많은 고대 국가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라는 그런 나라들과 어떻개 다른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창조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등장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라를 약속하신 것인데 앞의 두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창세기 11장 이전의 계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셨고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의도하셨다. 이것이 인간 창조와 천지 창조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아담은 이 일에 실패하였고 이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노아를 제외한 당시의 인류가 멸절한 것은 하나님의 칭조목적을 떠난 인간 존재의 의미는 없다는 준엄한 계시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후손으로서 등장한 것이다. 아브라함 당시에 수많은 고대국가들이 있었지만 문제는 창조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지는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라를 약속하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약속하신 것이고이것은 그 나라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그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얼에세 주어진 율법은 바로 이스라엘이 순종하여야 할 하나님의 뜻인 것이며 이스라엘이 그 뜻에 순종할 때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나라의 역사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단순히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혹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가 아니라 인간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나라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목적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씨와 땅의 약속은 하나님나라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록 하나님나라의 역사였지만 결국은 실패로 끝난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가나안 땅에 국한 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났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새롭게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제 가나안 땅에 국한 되지 않고 우주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이제 인간 왕이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며 그 분의 통치는 단순힌 외적 통치가 아니라 성령으로 인간 안에서 다스리시는 내적인 통치로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된 것이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약속의 성취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관건은 약속에 대한 믿음이고 순종인 것이다. 성령은 바로 우리의 순종을 도우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이신 것이다. 우리가 이 왕에게 순종하여 그 인도를 받아나아갈 때 우리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 질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신약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 처럼 오늘날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오늘날 신자들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 약속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떤 약속을 하신 것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동일하게 하나님나라를 약속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나라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듯이 오늘날 신자들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동일하게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들은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한 것이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신약 신자들의 믿음과 동일하다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처음하신 말씀 그리고 세례 요한이 외친 말도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나라가 가까왔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요구였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하나님나라의 도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 역사의 연장선 속에서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삽가가와 부활 그리고 재림의 모든 사역은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나라의 성취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생각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오신 분이시며 하나님나라는 바로 창조목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구약적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최초의 약속인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곧 씨와 땅의 두가지 약속에 바추어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두가지 약속은 사실 한가지 약속인데 곧 하나님나라의 약속이었다. 그러니까 씨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땅을 다스릴 때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약속인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동적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씨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위험한 출애굽을 감행하여야 했고 광야길을 행하며 시내산 언약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땅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가나안 전쟁을 수앵하여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민수기의 정탐꾼 사건은 불순종의 시건인 것이며 이 일로 말미암아 출애굽 1세대가 광야애서 소멸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하는 언약 백성은 존재할 이유를 상실한다는 엄중한 진리의 교훈이었다. 그리고 다시 출애굽 2세대 준비되는 40년이라는 긴 세월은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순종하는 백성이 준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변치않는 진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땅의 약속은 단순히 땅이라는 물리적이고 지역적인 공간의 확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들을 그 땅에서 쫒아내시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결국 씨와 땅의 약속은 씨가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곧 하나님의 나라 약속인 것이다. 씨와 땅의 성취도 이스라엘의 순종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듯이 그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순종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두가지 약속 곧 씨와 땅의 약속이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씨의 약속은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형성된다는 약속일 것이다. 과연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은 죄사함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이스라엘을 넘어 천하민만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전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워졌으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 주로 전파되는 복음이 죄사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씨의 복음에 주로 국한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가지 약속중의 한가지일 뿐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두가지 약속중 궁극적인 것은 땅의 약속일 것이다. 왜냐하면 씨의 약속은 결국 그 준비된 씨가 땅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땅의 복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의 약속뿐만 아니라 땅의 약속도 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씨의 약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씨와 땅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씨의 복음에 국한된 현 시대의 복음전파는 하나님나라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씨와 땅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복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땅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서 하나님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땅의 약속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가나안은 어디인가? 사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의 실체는 가나안아라는 지역적 물리적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실체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삶이었다. 그곳이 가나안 땅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가 어디이든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뽑아 버리신 것이다. 약속의 땅은 순종하는 삶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며 불순종하는 삶에 더이상 약속의 땅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땅의 약속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자리 그 자체를 말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삶은 개인적인 것이기 이전에 공동체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공동체적 삶을 전제하지 않고 땅의 약속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시대의 가나안은 신자들의 공동체일 것이며 가나안 땅에서의 율법적 삶은 신자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자리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틑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땅의 약속이다. 신자들에게 주어진 성령을 양자의 영이라 부르고 신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땅의 약속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법적 상속자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하신 대사명( The Great Commission)도 씨와 땅의 약속에 대한 사상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사명의 명령에는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삼위하나님의 이름안으로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으라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씨의 약속과 관련이 될 것이다. 두번째는 예수님의 교훈을 가르치고 지키게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땅의 약속과 관련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씨의 약속은 땅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듯이 천하만민을 세례주고 제자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위한 것이다. 씨와 땅의 복음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복음이고 총제적 복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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