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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신학과 신앙

신학과 신앙

2013-07-31 10:44:12


  신앙이 추진력이라면 신학은 방향키로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이  없는 신학은 무능한 공론일 것이요 신학이 없는 신앙은 무지한 맹목일 것이다. 이렇게 신학과 신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신학에 기초하여야 하고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야 한다. 바른 신학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바른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신학은 무익한 사변이 될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언제나 누구에게나 자명한 것이 아니라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해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서 인간의 신학적 작업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가와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이해하는  주체는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신학작업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교회사의 위대한 역사인 종교개혁은 바로 새로운 신학적 작업으로 부터 나타난 것이다. 루터를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작업은 신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고 종교개혁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탄생시켯던 것이다. 16세기는 종교적 열심과 관심으로 가득찬 시대였다. 바로 이 준비된 신앙에 신학은 불을 지폈던 것이다. 이렇게 신학은 신앙을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지만 그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신학은 절대적이지 않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지만 신학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역사적 존재인 인간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적으로 새롭고 풍부하게 해명되어야 하고 시대와 상황을 따라서 우리에게 계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학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신학적 산물인 교리는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고 통일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만 교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다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겸손하여야 한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업드려 그 말씀으로 교정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역사상 어떤 신학도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다 발견하고 해명한 신학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신학의 교만이고 전통의 맹목적 고수이다. 신학적 틀에 성경을 끼워 맞추려 하거나 교리의 잣대로 성경을 재단하려는 태도는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작업은 위대하였지만  그것을 절대화하게 될 때 우리는 신학적 우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신앙의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신학적 전통은 존중해야 하지만 그것을 절대화하고 안주하려고 할 때 그 전통은 오히려 우상이 될 것이다. 인간의 산물인 신학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번 개혁된 교회는 계속하여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주의 사상의 근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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