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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배교의 시대(The Time of Apostasy) - 박순용

배교의 시대(The Time of Apostasy) - 박순용

2013-05-04 15:13:10


1. 역사속의 배교와 그 배경

2.배교를 부추키는 세상

3.진리왜곡의 포문- 계몽주의

4.진리왜곡의 보편화- 포스트모더니즘

5.심리학의 진리왜곡

6.실용주의의 진리왜곡

 

7.신비주의의 진리왜곡- 플라톤 철학과 에로스의 추구

 신비주의의 정체를 규명하려면 먼저 플라톤의 철학사상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신비주의의 뿌리가 바로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사상이기 때문이다. 골로새 교회를 미혹했던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적 기반중의 하나가 바로 플라톤의 이런 사상이다. 골로새 2장 8절에서는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그리스도인들을 노락하는 자들'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온갖 초자연적인 현상을 추구하며 주관적인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들,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려는  영적인 갈구를 신앙의 궁극적인 경지인듯 여기는 모습들은 모두 상승사상에 물든 결과이다. 신비주의의 뿌리는 헬라철학이라는 세상정신이기에 기독교 안에서의 신비주의의 확장은 세상정신의 유입인 것이다. 요컨데 신비주의는 헬라철학을 수용하서 하나님과 하나였던 영혼이 물질적인 육체를 넘어 영혼의 근원인 하나님과 결국 합일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플라톤의 철학사상이 기독교에 끼친 위해성을 우리가 쉽게 간파하지 못하는 것은 그 철학이 너무나 일찍이 교회안에 들어와 기독교화했기 때문이다. 교회로 들어와 신비주의로 발전한 플라톤철학은 구체적으로 이원론과 상승사상이다.  플라톤의 이원론으로 무장한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에 초기 기독교는 사도들의 지도하여 잘 대응을 하였지만 속사도 시대인 주후 200년경에는 결국 이원론적 사상을 수용해 버리게 된다. 여기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누스이다. 플로티누스는 주후 200년대 플라톤의 이원론을 교회에서 수용할만하게 다듬었고 정교해진 이 사상은 교회안에서 신비주의로 발전한다.  플라톤의 이원론은 세계를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두가지로 나누며 정신세계가 물질세계보다 우월하며 영혼, 신성, 신적인 것은 정신세계에 속한다고 가르친다. 이 두개의 세계는 사로 독립적인데 인간안에는 이 두세계가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안에서 영혼이라는 정신세계와 육체, 감각, 이성이라는 물질세계가 끊입없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세계가 열등한 물질세계에서 벗어나려고 갈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땅에서 살고있는 인간의 영혼은 자신의 근원인 영원한 존재와 결합하기를 동경하고 신성과 영원한 존재를 향하여 나아가는 성향을 드러낸다. 플라톤의 이원론에 따르면 영혼만이 참된  실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힘을 소유하기 때문에 영혼은 끊임없이 감각을 통한 세계에서 더 높은 실재의 세계로 상승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상승을 방해하는 물질세계에 속한 것들, 육체와 정욕같은 것들을 경시한다. 이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그럴듯하게 들렸고 그래서 그들은 플라톤 사상을 근거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나누는 이원론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른 상승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 이는 신비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신비주의는 낭만주의, 초탈주의, 심리학, 실존주의, 그리고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계속 변신하면서 발전하였다. 결국 우리는 더욱 발전하고 교묘해진 플라톤 철학의 영향권아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수많은 신비로 가득차 있다. 성경은 신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신비주의 자체가 아니라 왜곡된 신비주의이다. 교회안에 들어와 형성된 신비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신비가 아니라 플라톤의 이원론에 가초한 상승이론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왜곡된 신비이다. 즉 성경이 말하지 않는 신비를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왜곡하는 신비주의를 배교의 한 단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사상은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미혹과 초기 개종자들의 자발적인 수용으로 교회안에 들어왔다. 속사도 시대에 저스틴 마터는 본격저긍로 플라톤 사상을 기독교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3세기 무렵 글레멘트, 오리겐 같은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을 플라톤 사상의 체계로 해석하였다. 이들의 영향으로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골로새 3장 5절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사막에 기둥을 세우고 지내며, 동굴속에  들어가 금욕적인 시도를 하였는데 사막교부들이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 플로티누스로 말미암아 플라톤 사상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발전하여 이른바 신플라톤주의가 일어나는데 이후 신비주의는 신플라톤 주의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여  신비주의의 기본틀을 만든다. 플라톤 사상에 의한 기독교의 진리 왜곡은 이때 부터 매우 심화되는데 플로티누스는 관상의 중요성과 관상 생활에서 얻는 신과 인간의 영혼합일을 강조하며 감각과 욕망과 모든 허망한 일을 버릴 때 신지식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플로티누스는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이시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신비주의자들의 침묵기도, 관상기도가 발원한다.  주후 500년대에 아레오바고의 디오니시우스는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기독교 안으로 끌어들여서 체계화했는데 그가 세운 신비주의의 틀은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1500년대까지 중세 수도원과 여러 신비주의 종파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주의를 수용한 디오니시우스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에 대한 언어의 한계를 말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인 언어를 경시하는 성향을 하나님을 추구하는 신앙행위와 기도에 적용하였다. 그 결과 말로하는 기도는 수준 낮은 기도로 여겼고 그 대신 관상이나 침묵을 강조하게 되었다.  침묵 기도나 관상기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영혼이 합일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진술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의 사상적 배후에는 저급한 것의 부정을 통해  지고의 존재로 올라가야 한다는 상승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13세기 독일의 유명한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와 그의 제자 타울러가 신비주의 체계를 더욱  발전시킨다. 특히 에크하르트는 신비주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사상의 특이한 점은 플라톤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씨앗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속사람을 하나님의 씨앗으로 보고 그 씨앗이 자라서 하나님이 된다고 한다. 결국 에크하르트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 신의 탄생을 말하기까지 이른다. 에크하르트가 주장한 신비주의 이론은 궁극적을 하나님을 사람의 한 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에 범신론의 문제를 야기한다. 1250년부터 1500년 사이를 기독교 신비주의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일어난 신비주의는 범신론으로 많이 흘렀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히 높은 신앙의 경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 속에서 신성을 경험하려는 범신론에 불과하다.

 

  루터도 이런 신비주의의 토양속에서 하나님에게 이르고자 각고의 노력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로마서를 통해 얻은 해답은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상승 신학이 아닌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십자가 신학이었습니다. 이후 루터는 중세교회의 타락상과 신비주의가 왜곡한  기독교 신앙의 실상을 밝히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하지만 종교개혁 운동을 통해서도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은 쉽게 제거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오랜 신비주의의 전통속에서 싱승 신학과 영광 신학은 그 기반이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타파를 위해 개혁을 해온 개신교 조차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난 독일에서 타울러의 설교에 심취한 쉬뱅크펠트와 그 뒤를 이은 프랑크 그리고 요한 아른트를 배경으로 한 야곱 뵈메로 이어지는 신비주의는 종교개혁이후에도 계속 세력을 확장했고 이후 독일에서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에 계승된다. 이렇게 플라톤의 이원론이 개혁교회 안에서 꾸준히 발전한 것이다. 독일의  경건주의는 신비주의 전통이 종교개혁과 섞이면서 나타난 운동이다.경건주의는 루터파 정통주의의 메마른 영성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운동으로 경건한 삶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러나 경건주의 운동은 사실 개혁주의를 신비주의로 흐르게 한 주범이었다. 경건주의자들은 신비주의 전통안에서 이성을 경시하고 개인의 신앙감정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우를 범함으로 개혁교회가 신비주의의 옷을 입는데 크게 기여하고 말았다.  결국 경건주의 운동을 통해 플라톤의 이원론이 거부감 없이 개혁교회안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영국은 청교도 운동으로 신비주의의 흔적을 많이 제거했지만 청교도들이 대추방되는 17세기에 후반에는 존 폭스로 말미암아 내면의 빛을 추구하는 신비주의가 주목을 받게된다. 그 결과 형성된 그룹이 퀘이커 교도들이다. 18세기에는 경건주의 사상이 영국의 윌리엄 로와 웨슬리에게 영향을 미침으로 개혁교회안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존 웨슬리가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을 토대로 체계를 세운 신학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교리이다. 이후 신비주의는 웨슬리를 통해 미국에 영향을 미치는데 케직 사경회 그룹과 성결운동 그룹이 그것이다. 찰스 피니 역시 그 반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시 펜 루이스, 워치만 니, 토레이도 같은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오순절 운동과 뒤이은 은사주의 운동 역시  이 계보를 타고 폭발적으로 발전하였다.

 

  웨치만 니는 케직 사경회를 통해 유명해진 인물로 그의 영적 생활론은 플라톤의 이원론에 기초한 것으로 플라톤적인 상승 사상의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워치만 니는 인간을 영, 혼, 육으로 나누고 그 중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는 것은 영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를 구분하거나 차이점을 분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영이 해방되려면 자아 혹은 혼이 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자아파쇄론을 내세우게 되었다. 성경이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을강조하지만 그 하나됨은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 존재하는 연합이다. 또한 성경은 우리 자아의 죄악된 성향을 버리라고 가르치지만 그 어디에도 자아 자체를 거부하고 파쇄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참된 싱앙은 본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안에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모두 헛된 것이다. 신비주의를 추구하면 범신론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다. 신비주의의 기반인 헬라 철학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하나님을 범신론적으로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 철학은 중세시대에도 배교를 부추키는 주요한 사상이었고 지금도 개신교안에 다시 일어나는 신비주의의 배후에서 진리 왜곡을 부추키고 있다.

 

 

8.신비주의의 진리왜곡- 제2의 복 체험 추구

9.포스트 모더니즘 영성의 진리왜곡

10. 종교다원주의의 진리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