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하나님
2012-11-18 21:19:25
인간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시이시므로 우리의 존재 전부가 그 분에게 의존하여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한 이 점에는 아무런 의심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이유이며 존재의 목적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 자신의 안팍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리 존재의 이유를 발견할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이 가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 것은 영원한 진리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가? 하나님은 자존하시며 전능하신 분으로 설명하는 사변적 신학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없이 존재하시며 우리 없이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이렇게 계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사변적으로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구체적인 역사 가운데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한다. 먼저 성경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지으셨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내용을 설명하는데 여기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목적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중에서 특별한 행동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지으신 일이었다. 왜 그 일이 특별한가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을 따라 특별한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특별한 존재로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강조해서 말한다면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라게 하시기 위하여 천지를 지으셨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떠나서 역사의 의미나 천지의 존재이유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사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닮은 인간을 통하여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길 기뻐하신 것이다. 이것이 천지창조의 목적이며 인간창조의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직접 다스리지 않으시고 굳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의문은 사변적인 것이며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직접적인 답변을 주지 않는다. 그 답변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깊은 신비에 속한 것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런 방법을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이 사변적인 질문에 굳이 사변적으로 답변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방법이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 보다 인간을 통하여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는 답변은 비록 사변적이기는 하지만 성경의 사상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중심 사상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자존하지 않으시다든지 전능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경륜상 그러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바른 신관의 기초를 놓을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균형잡힌 인간관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인간이 또한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진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존귀함과 진정한 존재의미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독특하고 고귀한 지위가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그 독특한 궨세와 지위가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임하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권세를 사용하는 일에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그 뜻대로 만물을 다스려려야 할 책임을 갖게된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선악과 금령이었다. 선악과 금령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만물을 다스려야 할 존재이면 만일 불순종하다면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의 길을 택하였고 이것은 인류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아담의 범죄를 막지 않으셨는가? 뱀이라는 교활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는 왜 만드셨는가? 전지하신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할 것을 미리 아셨을 터인데 왜 굳이 인간을 만드시는 위험한 일을 하셨는가? 등등 사변적인 질문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사변적인 질문에는 언제나 사변적인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변적 대답이란 성경이 직접 대답하지 않는 답변이라는 의미이지 성경의 사상을 반영하지 않는 대답은 아닌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할 것을 미리 아셨을 것이고 그 범죄를 막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예 아담이 범죄하지 않도록 악한 존재를 만들지 않을 실 수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아담 자체를 아예 범죄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 대답역시 천지창조의 목적과 동일하게 그것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더욱 잘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대답이 인간 범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가 하나님앞에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범죄는 인간 자유의지로 저질러진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할 것을 미리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짓는 일이 얼마나 위험스런 일인가를 보여주며 동시에 그렇게 지어진 인간은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셨고 그런 위험스런 인간 창조 행위를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되심을 찬란하게 드러내실 것을 작정하신 것이다. 이렇게 창조시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필요로 하신 것이다.
아벨의 죽임이후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셋을 주시고 셋의 후예가운데 노아가 나와 홍수 이후의 인간 역사를 이어간 것이나 특별히 노아의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을 부르신 일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형성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등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는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통하여 작정하신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신 것이다. 그리고 이 경륜의 절정이 역사 가운데 찬란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역 그리고 부활사건인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역사의 의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위한 모판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역사와 민족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단순히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려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이해인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과 그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인간을 통하여 작정하신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내려온 일관된 행동인 것이지 단순히 인간 개개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려면 그 창조목적을 이룰 인간이 필요한데 문제는 그 인간이 아담의 범죄이후로 사망의 굴레아래 종살이를 하느라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룰 수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문제를 전격적으로 해결하시는 방법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 사역, 그리고 부활사건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것이고 자기 아들을 인간으로 보내어 인간을 짓누르는 죄의 권세를 십자가로 깨뜨리고 부활로 사망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방과 자유를 얻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어서 천당갈 생각만 하면서 이 세상을 도피하여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 세상도 천당만 못하지만 돈과 권력만 있으면 나름 살만하다고 세상에 낙을 구하면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자기 형상으로 지으시고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찬란히 드러내도록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고 동시에 우리의 존재 이유와 목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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