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하나님나라
2011-07-22 00:45:42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그의 사역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부활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그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 증명되었고 그의 죽음은 대속적 죽음이라는 진리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복음의 내용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사건인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부활을 기대하는 소망의 근거이다. 뿐만 아니라 부활사건은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증거하는 결정적 사건이기도 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육신의 부활이며 동시에 이 땅과 역사가운데 일어난 부활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아직은 죽을 몸을 가지고 있고 육신의 부활을 누리기까지는 죽음이라는 터널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날은 아직 우리에게 미래에 일어날 사건으로 남아있지만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실재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계시한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책의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라면 예수의 부활은 죄의 결과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건인 것이다.
아담의 범죄이후 인간에게 임한 하나님의 저주는 사망이었고 삶의 수고와 슬픔이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음의 권세아래 매여 있었다. 죽음의 권세 하에 있는 인간 삶의 실존은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것이었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전전긍긍하는 염려로 쉼이 없는 고단한 삶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이 자기의 사망으로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없이하시며 죽기를 두려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을 해방시키려 함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사건은 사망의 권세가 깨뜨려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결과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인간 실존의 문제가 해결되는 길이 열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의 부활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며,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데서 자유를 얻는 길이 주어진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 계명의 법정신이 자유와 해방이었듯이 이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예수의 부활사건으로 우리에게 열려진 것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이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임재한 하나님나라의 실재라면 부활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누릴 안식이야 말로 우리가 누려야 할 하나님나라의 복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나라의 복을 우리가 먼저 누리고 체험하게 될 때 그 안식의 복을 세상에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출애굽의 목적지이며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 끝나고 안식이 주어지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첫 전투인 여리고성 전투에서 보듯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약속을 따라 은혜로 그들에게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시고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합법적인 소유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모두 쫒아 내신 것이 아니라 조금 남겨두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남은 자들을 쫓아내고 실질적으로 약속된 땅의 소유를 누리도록 배려하신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주신 약속의 땅을 받았으므로 그 땅을 실제적으로 소유하는 일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땅을 실제적으로 소유하는 일도 그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함을 통하여만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사사시대의 어두운 시대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은 불순종함으로써 자신들이 이미 법적으로 소유한 약속의 땅을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남아있던 이방에게 압제를 당하여 자신들이 그 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고 종처럼 살았던 것이다. 성경은 그 원인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락된 안식을 불순종함으로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애굽에서처럼 종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사시대의 어두움을 깨치고 등장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 그리고 솔로몬 시대가 왔는데 이 때 이스라엘은 이방나라를 모두 복속시키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대하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황금기를 누렸던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증언하듯이 다윗과 솔로몬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역사는 내리막길로 치달아서 급기야는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서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이것 역시 성경이 증언하듯이 이스라엘의 전적인 불순종으로 기인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오늘날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이미 하나님나라는 예수의 부활사건으로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임하였고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나라의 실재를 깨닫고 그 나라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그 나라의 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그 나라의 복의 실존적 누림은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염려로 부터의 자유일 것이며 세상의 종노릇 하는 데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다. 이것이 구약에서 예언된 안식의 복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복의 실체인 안식의 복을 우리가 먼저 누리고 나아가 이 복을 세상을 향하여 선포하고 이 복으로 초대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부활사건으로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임한 하나님나라를 우리가 누리고 증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났듯이 이 하나님나라의 복을 누리고 그 나라의 실제를 증시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법의 법정신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였듯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역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일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함으로 그의 뜻과 법에 전심으로 순종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는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증시될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사사시대가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하나님에게 불순종한다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라고 할지라도 그 실재와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드러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나라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벽하게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그 때가 오기 이전에 우리에게 그 나라를 증시할 책임과 그 나라를 누려야 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이고. 이 권리를 누리고 그 책임을 다하는 길은 전적으로 우리의 순종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을 통하여 이 땅과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였고 궁극적으로 그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정오의 태양처럼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오기까지 그 나라가 그 나라 백성의 순종 여부를 통하여 이 땅과 역사 가운데 뚜렷하게 혹은 희미하게 증시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바로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시간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순종함으로 그 나라를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선명하고 힘 있게 증시하기를 고대하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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