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나사로를 살리심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23 23:57:40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베다니에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그들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살고 있었다.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로서 예수님을 지극하게 따르는 여자로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나사로가 병든 소식은 즉시 예수님에게 전하여졌을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사로의 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하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베다니로 가기 위해서는 유대 지방을 거쳐야 했는데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류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때가낮이므로 자신이 아버지의 일을 하여야 할 때임을 강조하신다. 사람들이 낮에 다니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않지만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안에 없는 고로 실족한다고 한 말씀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당신이 아직은 그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할 때임을 의미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곧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매인 사망의 굴레를 깨뜨리시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계시하는 사건이었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을 때 마르다는 마지막 부활 때에는 다시 살 줄을 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즉시 당신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니 당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마르다는 이 말씀을 듣고 주는 메시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는다고 대답하였지만 나사로가 즉시 살아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사로가 장사된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을 때 마르다는 죽은지 이미 나흘이 되어서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이다. 주는 메시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마르다는 고백하였지만 그의 신앙은 헛된 신앙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사건이고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증거하신 사건이었다.
이렇게 예수님은 표적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메시야 이심을 증거하셨지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이런 표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따를 것이고 결국 로마인들이 와서 자신들의 당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염려하였다;. 이러한 염려에 대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제안은 결국 예수를 죽여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야바의 악한 꾀는 역설적으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죽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가야바의 말이 스스로 함이 아니고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 날부터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빛이 어둠에 비추었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한 것이며 오히려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나아오지 않았으니 인간이 처한 어둠은 그렇게 깊고 절망적이었다.
[추기] 2019-11-06 17:34:40
요한복음 11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6번째 표적이면서 마지막 표적이다. 그동안의 표적들이 모두 메시아 예수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 곧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였듯이 나사로를 살린 표적도 마찬가지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계속적인 이방의 압제 아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죽은 나사로와 마찬가지로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분명히 전격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표적이었고 이것은 메시아 예수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지 않고 그가 죽기까지 기다리신 것이다.(6절) 그렇기에 예수는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신다.(4절)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을 때(23절) 마르다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날 주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24절) 당시 1세기 유대인들은 마지막 날에 몸의 부활을 믿었던 것 같다. 비록 마르다는 예수가 메시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지만(27절) 그가 기대한 메시아는 죽은 자들 살릴 수 있는 그런 메시아는 아니었다, 그래서 마르다는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의 말에 죽은지가 이미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난다고 말한 것이다.(38-39절) 그러나 예수는 네가 믿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가시적으로 찬란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죽은 자를 살리는 신적인 기적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메사아 예수를 통해 찬란하게 드러나는 표적이었다. 바로 이 사실이 이미 요한복음의 서론에서 이렇게 진술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장14절) 나사로를 살린 이 표적을 보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아직 그들은 예수가 누구신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의 표적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 마지막 표적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내린 결론은 예수를 죽이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는 이스라엘을 위험에 빠뜨리는 자이므로 그를 죽여야만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50절) 요한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이 말을 중의적으로 해석하여 예수가 민족을 위하고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죽으실 것을 가야바가 부지불식간에 말한 것이라고 중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51-52절) 마지막 표적을 보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내린 결론은 예수를 죽여야 겠다는 결의였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장 18-19절) 이것이 바로 이들을 가리켜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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