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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요한복음

요한복음 8장 세상의 빛

요한복음 8장 세상의 빛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19 16:40:37


  초막절이 끝나도 예수님은 계속 예루살렘에 머무시며 성전에서 가르치신 듯하다.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코너로 몰아 고발한 조건을 얻고자 하였다.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면 유대인이 사형을 집행하는 것을 금하는 로마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모세 율법을 범하는 것이므로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시다가 일어나 "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촌철살인의 말씀을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 물론 모든 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누구도 여인을 돌로 치지 못하고 다 떠나가고 말았다. 예수님의 촌철살인의 말씀에서 우리는 다시금 율법의 근본정신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판단하고 회개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빼고 형제의 눈속의 티를 빼라고 하신 것이다. 간음한 여인을 고발하던 종교 권력자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선덩어리이고 하나님앞에 가증한 죄인인줄 자각하였을까? 모세 율법을 운운하는 그들이 사실은 밥먹듯이 모세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 아닌가? 예수님은 여인을 고발하는 그들의 죄악을 고발하신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둠가운데 다니는 자들이고 사망가운데 누운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세상이 얼마나 어둠가운데 있고 사망가운데 있는지를 고발하시는 동시에 세상의 어둠과 사망을 이기실 분은 오직 생명이요 빛되신 예수님 뿐임을 계시하는 말씀이다. 종교 권력자들이 합동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을 때 예수님은 무엇을 땅에 쓰고 계셨던 것일까?  원래 모세의 율법은 모세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특히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은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써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자신이 바로 모세 율법을 써주신 율법의 주인이심을 나타내시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적반하장격으로 율법을 범한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율법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한 셈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라고 하자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하는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증언이 참되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고 증언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은 알지 못하면서 예수님의 증언이 참되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도 자기를 위하여 증언하시므로 자기 증언은 더욱 참되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예수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성경을 신봉하지만 정작 구약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늘 성경을 앞세우지만 정작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인 예수님도 알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라고 자신의 신적 존재를 말씀하시며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매우 당혹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이 누구냐고 예수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 자신을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라고 대답하신 것은 자신이 창세로 부터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말씀과 행동으로 계시해 오신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예수님은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판단하실 것이 많으시지만 그는 참되신 아버지에게 들은 그것만을 세상에 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자신의 신적권위를 주장하시면서도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말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이가 항상 함께 하시며 자신이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혼자 두지 아니히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이런 태도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다고 하였으나 그들의 믿음은 거짓이었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예수님이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하시자 그들은 즉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를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고 반발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이 죄의 종이므로 아들인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침한 신세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지적이 그들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결국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아신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시지만 그들은 그들의 아비 마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그들에게 말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아비 마귀가 행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아비 마귀는 처음 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로서 늘 진리를 대적한 자였듯이 그들 역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대적하고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마귀의 자식이므로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나와서 왔고 아버지께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의 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말을 들을 귀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하건만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고 욕하고 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를 공경하며,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신다. 예수님이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을 하시니 오히려 그들은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하니 예수가 정녕 귀신이 들렸다고 공격하였다. 아무리 진리를 말해도 그들은 귀머거리라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진리의 빛을 비추지만 소경이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네가 누구냐고 또 묻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그렇게 분명히 반복하여 자신이 누구이신지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귀머거리 소경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다시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며 그 분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신다. 너희는 그 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를 알고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  이렇게 더 할 수 없이 선명하고 확실하게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었지만 귀머거리요 소경인 그들은 진리가 그들속에 없으므로 오히려 돌을 들어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추기] 2019-11-06 17:33:00

 

요한복음 8장

음행중에 잡힌 여자 이야기(1-11절) 이후에 등장하는 예수와 유대인들 간의 논쟁(12-59절)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예수와 유대인들과의 논쟁의 핵심은 예수가 누구신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간음한 여자 이야기도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간음한 여자 에피소드를 통해 예수가 누구이신가에 대한 계시가 주어진 것이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그 여자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는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다. 율법은 여자를 정죄하지만 예수는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모세의 윱법을 능가하는 분이심을 암시한다. 예수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쓴 것은 예수가 율법을 능가하는 자이며 나아가 율법을 제정하신 분이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예수의 이런 행동은 돌판에 손가락으로 율법을 써주신 하나님의 행동을 반영함으로써(출31장 18절) 예수가 율법의 제정자임을 암시한다. 간음한 여자 에피소드를  이렇게 보면 이어지는 유대인과 예수의 논쟁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던 여자를 예수는 살려주었으니 그 여자에게 예수는 생명의 빛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며 그러므로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12절)  예수는 자신에 대한 이런 증언이 참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이 예수를 위하여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수를 통해 나타난 표적들은 모두 예수가 누구이신가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예수도 알았을 것이다.(19절)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믿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 들은 그것을 말하며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말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예수와 항상 함께 하시며 예수는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예수를 반대한다. 예수는 이런 유대인들이 죄에 사로잡힌 종이며(34절) 그들의 아비는 마귀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이며 하나님이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예수를 사랑해야 마땅하다.(42절)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아비는 마귀라고 규정한다. 유대인들은 그 아비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기 때문에 진리를 믿지 못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다. 유대인들이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서 속했기 때문이다. (47절)  그래서 아무리 논쟁을 해도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다만 귀신들린 자요(52절) 돌로 쳐서 죽일 자였다.(59절)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