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0편 주는 대대에 우리 거처가
Tolle Rege/시편
2013-12-03 15:54:24
이 시는 특이하게도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라는 표제어가 붙어있다.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다는 고백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동거에 대한 표현이다. 하나님이 늘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과 동거하는 언약관계를 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그 분은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시인은 여기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대대로 이스라엘의 거처가 되시는 분이 바로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지으시기 전부터 영원히 하나님이신 분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길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시고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니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이 되어 풀이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는 것 처럼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도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게 되며 주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이스라엘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으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평생이 순식간에 다 지나가 버리게 하셨다. 그래서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와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고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말한다. 시인은 인간 존재의 허무함의 근원이 하나님의 진노이듯이 이스라엘이 당하는 허무함도 하나님의 진노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인간은 절대 허무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자가 누구인가? 그래서 시인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결국 관건은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스스로 돌아오시는 길 밖에는 없다. 하나님의 진노를 해결하는 일에 이스라엘은 무능할 뿐이다. 이 원리는 동일하게 인간 일반에게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허무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진노를 돌이키시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노하시는 이유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지음받음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돌아오시면 이스라엘은 주의 인자하심으로 만족하며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살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이스라엘이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주께서는 행하신 일들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은총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고 이스라엘이 손으로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시인이 하나님께 기대한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동일한 기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신약의 언약백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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